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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상 Jan 17. 2021

김연수 -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인간의 '마음'과 '마음'은 거대한 설산으로 막혀있는 국경과 같지 않을까

1.

 글의 시작은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 각주에 대한 내용이다. 해석본을 집필한 '나'는 122행 앞 세 글자가 빠져있으므로 이를 해석한다. 이 부분은 건타라국에 대한 내용으로, 120행은 '땅은 보리와 밀에 알맞고, 기장 조 벼는 하나도 없다'라는 문장으로 추리는 시작된다. 121행 마지막 글자 蒲(포)에서 시작하고 123행 蔗(자)자를 고려한다. 蒲 다음으로 올 글자로 나는 挑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포로 시작하는 작물은 포도가 맞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각주를 '그'가 읽고 있다. 그는 시선을 옮겨 몇행 앞을 바라본다. '대발률은 원래 소발률의 왕이 머물던 곳이었는데, 토번이 내침하자 소발률로 도망친 왕은 거기에 눌러앉아버렸다. 수령과 백성들은 대발률에서 따라오지 않았다.'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 소발률과 대발률, 인도 북부에서 파키스탄 북부까지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맥으로 막혀있는 이 지역은 세계의 끝이었다. 

 그는 여정을 떠나며 모든 것을 수첩에 옮겨 적는다. 위도 경도 고도, 시간, 의문, 고민, 풍경, 씹던 껌까지. 그리고 그는 수첩에 적는다. 소발률의 그 왕은 어디로? 시간이 나면 물어볼 것. 이라는 문장을. 그리고 다시 그는 책을 읽는다. 216행, '여기서부터 동쪽은 모두 당나라의 경계 안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히 아는 곳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곳엔 각주가 달려있다. '이 문장에 悉(실)자는 이제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게 됐다는 뜻을 담는다. 그러니 이곳이 혜초의 여행이 실질적으로 끝나게 된 부분이다.'라고

 2.

 이야기는 과거로 돌어간다. 그의 여자친구는 자살했다. 다리에서 떨어지는 방법으로. 유서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부모님, 그리고 학우 여러분! 용기가 없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야만의 시대에 더이상 회색인이나 방관자로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후회는 없어"라고. 

 '그'는 여자친구의 유서에 자신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에 자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음이라 생각 그 후 그는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다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다. 복학의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 책을 다 읽었기 때문. 그는 도서관에 앉아 오로지 책만 읽었다. 5만권 이상의 책을 모두 읽어버리겠다는 집념 하에.

 언젠가 그는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발견하고 도서대출카드에 서명을 하기위해 펼쳤을 때, 단 한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음을 알게된다. 그녀의 죽은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빌려본 책이 이 책이었다. 내가 집필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해석본. 그 카드를 본 이후, 그는 책 읽기를 중단하고, 여자친구와 '그'가 나오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대학에 들어와 산악부 활동을 했기에, 그는 등반일지 작성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설을 쓴다는 행위 자체는 다른 문제였다. 소설 안 모든 문장은 서로 인가관계에서 단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었고, 개개의 문장은 모든 문장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 그 어떤 문장도 외따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무려 아홉 달, 그는 겨우 소설을 완성하고, 이를 왕오천축국전을 옮기고 주석을 단 '나'에게 소설을 우송하기로 한다. 그리고 히말라야로 고줌바캉 원정대원에 도전한다. 소설에 쓰지 않은 나머지 일들을 모두 히말라야로 가져갈 작정으로, 사실은 그곳에서 자살하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는 고줌바캉 원정대원 선발에 떨어진다. 

 한편 나는 그의 소설을 출판사 편집장에게 보여준다. 편집장은 소설이 마음에 들어 그에게 연락을 한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출판할 계획따윈 없으니 소설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나와 그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만나고, 술자리를 가진다. 나는 그에게 왜 그 소설을 자신에게 보냈는지 물어보고, 그는 그의 여자친구가 왜 자살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당신이 책이니, 죽기 전 그녀가 무슨 마음이었는가 알지 않느냐 묻는다. 나는 그의 뺨을 두 손으로 잡고 입을 맞춘다.

 3.

 시간은 다시 1988년으로 돌아간다. 그는 1988 한국 낭가파르바트 원정대 대원으로서 파키스탄으로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등반일지를 꾸준히 적었다. 고소 증세를 시작으로 험난한 여정이 이어진다. 1988올림픽을 준비하며 원정대장은 사활을 걸었다. 4주에 걸쳐서 베이스캠프에서 위로, 그러다 다시 아래로, 다시 위로, 다시 아래로. 화이트 아웃과 눈보라, 눈사태는 그의 앞길을 막아선다. 

 그곳에서 책을 읽을 수 없었기에, 그는 다시 왕오천축국전의 문장을 떠올린다. '惣無蒲{桃}OO{甘}蔗' 그러다가 그는 죽은 여자친구의 유서를 떠올린다. 나는 이를 생각하며, 여자친구가 유서를 쓰는 모습을 상상하는 그와 글에 각주를 달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나, 둘 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원정대장은 6월 등반을 목표로 삼았고, 지금은 6월 26일이었다. 그는 3캠프에 대기 중이었고, 정상공격조에 이름을 올렸으나 상태가 좋지 못했다. 미친듯이 웃기도 했으며, 커다란 그림자로 느껴지는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이트 아웃은 그들의 정신과 육체의 의지를 앗아갔다. 며칠을 기다리고 하산하려는 찰나, 그는 불현듯 4캠프에서 정상공격을 위해 홀로 오르고 있을 대원을 기억해냈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는 홀로 4캠프로 떠났다. 

 6월 30일, 그는 4캠프에서 마지막 등반일지를 썼다. 그는 이렇게 썼다. '여기는 수정의 니르바나다. 검은 그림자의 이 친구는 걸핏하면 나를 보고 웃는다. 갈증이 심하다고 말하면 이 친구는 내게 한없이 솟구치는 맑은 샘물을 보여준다. 심심하다가 말하면 하늘로 울긋불긋한 불꽃을 터뜨린다. 이 친구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잠이다. 자고 싶다고 말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금방 손이 얼어버리기 때문에 그 이상 쓸 수는 없었다.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란 문장은 70행에서 71행에 걸쳐 있다. '又一月程過雪山' 그 이후 혜초는 설산을 넘어가면 나오는 나라에 대해 기술한다. 기본적 기술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따라서 혜초는 설산을 넘지 않고 들은 이야기를 쓴 것이다. '대당서역기'에 나오는 문헌에는 '설산을 넘으면 동녀국, 즉 여자가 왕인 나라가 나온다'고 쓰여있다. 혜초는 가보지 못했으므로 '女國'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남기지 않은 문장은 무엇일까. 나는 이를 상상한다. 검은 그림자 친구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낭가파르바트 정상으로 걸어가고 있는 그를.




 

 김연수의 글은 약간 어려운 편이라 생각하기에 잘 안 읽는데, 최근 소설 쓰려고 안나푸르나를 검색하다가 알게 되어 한 번 읽었다. 그리고 또 읽고, 필사를 했다.

 필사한 소설 중 가장 힘든 소설이었다. 일단 한문에는 잼병이라 1차로 힘들었고, 글이 길어서 2차로 힘들었고, 나는 왜 이런 글을 못 쓰는가 좌절감에 3차로 힘들었다. 후. 


 필사 후에 한번 글을 줄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용과 내용을 엮어서 보기 쉽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에 그랬다. 그러나 글을 축약하기에너무 많은 정보가 있기에 쉽지 않았다. 완벽히 담지도 못하고, 뭘 줄이고 뭘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원래 줄이는 것에 약한 나지만, 이 소설을 축약하는 것은 고통일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

 이렇게 잘 짜여진 글을 나는 언제 써볼 수 있을까. 옛 문헌에서, 그것도 몇 행 되지 않는 문장들에서 중편소설 하나를 뽑아내는 능력이란. 떡밥을 던지고 던지고 또 던지고 덩어리로 던졌는데, 커다란 잉어가 그걸 다 주워먹고 저절로 내 발 앞으로 올라왔다고 해야하나. 하나 아쉬운 문장 없다.

 그의 죽음을 나는 담담하게 설명한다. 독자인 '나'는 생각한다. 작중의 '나'는 그를 진정 사랑했는가에 대해서. 시간이 지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작중의 내가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작중의 '나'가 그를 사랑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연민'을 느꼈을 뿐이라고. 

 여기서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그의 여자친구는 그를 진정 사랑했는가. 유서를 쓸 때 그녀는 그를 생각하고 있었는가. 후회는 없어. 이 문장에 그를 담았는가. 혹은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인가. 

 결론은 '절대 넘지 못할 산'이 '절대 알지 못하는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닐까.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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