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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여행가K Feb 09. 2021

새로운 감각들이 더해져
영상처럼 남은 기억의 공간

09. 여행에서의 하늘 in 다시 만난 런던

사실은 출장이었지만 처음 만난 유럽이었던 런던에 4년 뒤에 다시 갔었다. 내 기억 속 런던의 절반은 밤의 풍경이었고, 절반은 전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만남이 아쉬워 40일간의 유럽 여행 중 마지막 일주일 정도를 런던에서 지냈다.


출장 기간 동안에는 아는 일행과 함께 다녔었기 때문에 사실 방문지들이 어딘지, 가는 길에 봤던 곳들은 어디였는지 잘 몰랐었다. 함께 했었던 동기는 영국에서 몇 개월을 지냈던 적이 있었고, 출장 기간 동안 만났던 선배들은 런던에서 몇 년을 지내셨던 분들이었다. 그랬었기 때문에 다시 만난 런던에서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찾아다니면서 보는 풍경들에 기분이 묘해졌다.



런던아이와 올드 트루먼 브루어리 근처에서는 '그때 거기가 어디였지?' 생각하며 첫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고, 지난번에는 못 봤던 곳까지 보며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출장으로 왔을 때에는 일행과 거의 항상 함께여서 잘 느끼지 못했던 것도,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 혼자 있으니 여행의 기분까지 더해져 크게 느껴졌었다. 지난번과는 다른 시간대에 다른 감각으로 보니 이전의 기억을 가진 공간에 새로운 감각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런던과의 첫 만남에서 밤하늘을 많이 봤었기 때문일까. 다시 만난 런던에서의 기억들을 떠올리면 주로 쨍하게 파란 하늘이거나 만들어낸 그래픽 이미지 같은 구름들이 함께 떠오른다.


재생건축에 관심이 많아 이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테이트 모던에 혼자 찾아간 날. 밀레니엄 교를 건너기 전부터 보았던 풍경인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파랗게 쨍한 하늘도 새로운 감각이었다. 해가 높게 떠있을 때 테이트 모던 앞에 도착해서 높다란 탑을 올려다본 순간, 건물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던 느낌도.



테이트 모던의 공간과 전시를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마주한 장면도 새로운 감각으로 더해졌다. 여전히 각자의 길을 가고 있던 사람들 위로 펼쳐진 구름은 페인팅 나이프에 흰 물감을 묻혀 파란 종이 위에 슥슥 그어댄 것 같았고, 건너편의 건물은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따뜻한 노란빛을 머금고 있었다. 테이트 모던 가든에서 하고 있던 버스킹을 들으며 그 연속된 장면들과 공간에서 느꼈던 감각들을 마음에 담았다.



가고 싶었던 호텔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오랜 친구와 배를 타러 가며 보았던 하늘엔, 날아가는 거대한 새들 같았던 구름이 함께 했다. 그 구름들은 하늘이 짙고 깊은 푸른색이 될 때까지 보랏빛이 섞인 잿빛으로 계속해서 형태가 변했다.



배 위에서 보았던 색색의 건물 빛은 수면에 반사되어 번지며 떠다니는 느낌이었고, 40일간의 유럽에서 마지막 숙소였던 로열 닥스의 굿 호텔 런던까지 따라왔다. 이동하며 만났던 강가의 풍경을 배 안에서의 시선으로 계속 함께 한 것이다.



다음날 눈을 떠서 처음으로 본 풍경은 그날의 하늘과 하늘빛을 머금은 강물, 강가를 따라 늘어선 박공지붕의 집들이 었다. 하얀 이불의 침대에 누워 하늘하늘 흔들리는 하얀 커튼 사이로 잔뜩 구름 꼈던 하늘과 탁한 물빛을 보았었는데, 이십여분 뒤 반쯤 드러난 파란 하늘과 하늘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변한 강물을 본 것이다.



다시 만난 런던에서 일주일 가량을 보내며, 감각들이 버무려진 기억 속 공간 '런던'에 새로운 감각들이 연속적인 장면으로 더해졌다. 시간이 지난 지금, 런던에서의 시간들은 나에게 감각들의 영상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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