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Mar 26. 2021

낭만적인 의미부여가 취미이자 특기인 사람

다른 말로 부여한 의미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뭘 잘하느냐 묻는다면, 의미부여를 특출나게 잘한다고 말해야겠다. 여기서 의미부여는 작은 일도 심각하게 받아들여 자신을 좀먹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변 사람의 장점이나 호의에 긍정적인 해석을 과하게 덧붙이려는 습관에 가깝다. 시쳇말로 ‘갖다 붙이기’에 재능이 있는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항상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에도 늘 이유를 찾곤 했는데, 특히 사람을 좋아할 때는 ‘그냥 너라서 좋다’는 표현은 최대한 아끼려 했다. 어쩌면 내 진심을 가장 담백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색다른 표현을 찾아내려는 수고로움과 성의를 덜어낸 간편한 방식이라 여겼다. 기왕이면 나에게 너는 어떤 의미인지 상세히 나열해 말해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가끔 멍 때리는 너의 습관도, 모르는 건 꼭 검색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갑자기 터무니없는 공상을 펼치는 맥락 없음도 마냥 특별해 보이고, 생각이 깊은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색달라서 같이 있으면 내 세계가 넓어진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 사회에 ‘오글거려’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좀 더 거리낌 없이 마음을 전했을 텐데! 어쩐지 이전보다 속으로 삼키는 말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내 속은 더한 의미들로 가득한데, 상대에게 무해하고 담백하게 표현하기란 늘 어렵다.



그래도 감성과 주접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내 의미부여에 대한 진심을 친구들도 아는지, 선물을 줄 때도 구태여 의미를 붙여주곤 했다. ‘널 보면 시트러스 향이 떠오른다’며 직접 향수를 제조해 이름까지 붙여줬던 친구, ‘브랜드 이념을 보는데 네 생각이 나서 그 집 향수를 사 왔다’는 친구, ‘네가 좋아하는 프리다 칼로의 신념을 늘 같이 새기라’며 그의 책을 선물해준 친구, 얼른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오라며 해바라기 씨앗을 선물해준 친구 그리고 ‘부적처럼 언제나 지켜보고 지켜주겠다’며 눈동자 모양의 은반지를 만들어준 친구까지.



쓰다 보니 자랑처럼 됐는데, 사람 말고는 자랑할 게 없는지라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떠벌려도 될 것만 같다. 하여튼 색조 화장품에는 흥미가 없던 내 선물을 고르느라, ‘그냥’이라는 말을 아끼느라 매년 머리를 부여잡았을 친구들아, 진심으로 고맙다!



덕분에 내 주변은 내가 부여한, 혹은 누군가 부여해준 의미들로 가득하다. 나는 의미부여가 습관인 사람 중에서도 유독 감성적인 의미를 덧붙이기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것들이 알고 보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는 것을 안다. ‘색조 화장품은 유해하고 해바라기 씨앗은 유용해.’라는 좋고 싫음에 기반한 나의 의미가 사실 얼마나 ‘나에게만’ 유효한 일이던가. 



그러니 ‘나’의 의미를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의미를 잃었을 때 따라오는 감정을 책임지는 것도 본인의 몫이기에, 내가 붙인 의미의 상실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 참으로 까다롭지만, 그래도 의미도 기대도 없는 삭막한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의미부여가 나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면야,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생산해내도 괜찮다. 낭만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일상과 관계에 생명력을 더하고, 때때로 그 의미의 덧없음을 인지하며 언젠가 다가올 의미의 상실을 대비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 이 정도의 책임을 다한다면 의미부여가 취미이고 특기인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지금 당장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자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