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 플레이리스트에 꼭 추가해야 할 노래들
묽은 농도처럼 뭐든 끊이지 않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정도가 적당하니 좋았는데 그래도 역시 모든 찐득한 것들이 사라진 세상은 상상하기 싫다. 저마다 불쾌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는 끈적임과 진한 단내를 감수하면서까지 닦아내지 않는 찐득한 것이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사랑이 그렇다.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사랑 아니던가. 그 대상은 신이나 사람, 반려동물이나 자연물, 혹은 다른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되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든 사랑하는 것과 함께하는 시간은 마치 한 곡의 아름다운 연주곡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종종 그 안에서 음표가 미끄러지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엇박자와 요상한 화음은 사랑의 또 다른 묘미다.
진하게 사랑했던 기억은 종종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는다. 가끔 그토록 아련하고 애틋했던 느낌을 떠올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당시의 기분 좋은 순간을 상기시켜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노래가 있다. 어느덧 대세로 떠오른 밴드 ADOY(아도이)는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의 변주를 부드럽게 속삭이듯 노래한다.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 그들의 음악에는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섬세하게 담아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있으면 새하얀 꿈속을 천천히 유영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새벽 공기, 풀 냄새, 시원한 바람, 파도, 그리고 달콤한 낮잠 같은 것들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앨범 커버에 그려진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만 보고는 이들이 정말 사랑을 노래하는 게 맞는 걸까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비밀스럽고 의미심장한 얼굴은 청춘의 불완전함 그리고 불안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처음에는 바로 이 오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직관적인 그림에 마냥 끌렸다. 그렇게 단순히 앨범 커버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아도이 앨범을 집어 들었다.
She was at the red light,
she seemed far away
Quiet like a bonsai on a sunny day
In his mind, he was hers
In her blue room in Jericho
She was a new yellow balloon
He was a boy out there
Just a boy out there
ADOY - <Balloon> 일부
아도이의 노래는 대체로 과하다 싶을 정도의 리버브를 사용해 몽환적인 느낌과 여운을 선사한다. 그래서 <Balloon> 을 들으면 영어로 된 가사를 해석하지 않고 전체적인 사운드만 듣고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마음이 전달되는 듯 하다. 어쩐지 사랑에 빠진 소년이 소녀를 그리는 풋풋한 장면이 연상된다.
사랑에 빠져 흩날리는 벚꽃 잎을 붙잡으며 희망을 걸고, 보고 듣는 모든 것에 한 사람을 투영시켰던 순간들. 노래는 그 모든 사랑이 가득한 시간을 훑는다.
There may be a shooting star for Eden’s May
손을 잡고 누워봐요 그리고 에덴을 향해 떨어지는 별을 봐요
There’s no need to go back, and so we lay
돌아갈 필요는 없어요
Is this feeling just my dreaming, we would never know
꿈인지 아닌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Let me take you away to cities you would never go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당신을 데려갈게요
ADOY - <Young> 일부
그러다 둘 마음의 주파수가 일치한다면 서로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서로 조금씩 맞춰가던 시간의 축적을 우리는 아마 사랑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 둘이 만나 어느 순간 같은 곳을 바라보고 향하는 것. <Young>은 그 기적과도 같은 황홀한 순간을 그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탓에 가끔은 꿈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지금은 그저 끝나지 않을 이 순간의 사랑을 노래할 뿐이다.
If this time is the last drive out in the haze
Take me in for the last time into your eyes
Yes, I know we shouldn’t go that far
But I could wonder
Gimme a feeling
Slowly in a deja vu
Gimme a feeling
Do you wanna feel it too
ADOY - <Wonder> 일부
하지만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숱한 반복은 종종 우리의 사랑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Wonder>는 이처럼 알고 있지만, 막상 받아들이긴 힘든 당연한 순환을 슬프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시간이 지나면 정해진 순리처럼 서로 떠나거나 보내주는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은 언제나 갑작스럽고 짧다. 노래에는 바로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이별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에 보내는 애틋한 신호가 담겨있다.
I feel that I can’t be feelin’ lonely
ever again
Cuz I know I always was
dreaming of a day like today
Why don’t you tell me
you’re breaking away?
Why don’t you tell me
this cannot replay?
So tell me where to go
ADOY - <Grace> 일부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날들이 있다. 열정적이었지만 미숙했던 지난날은 현재에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씁쓸함을 남긴다. 이 곡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예민한 감정선을 정확히 그려낸다. 그것도 아주 나른하지만 간절한 목소리로.
그 특유의 담백함에는 감히 과거의 기억이 자신을 잠식시키지 않게 하면서도 현재를 긍정하게 만드는 힘이 깃들여있다. 몽환적인 멜로디와 기교의 적당한 완급조절은 젊은 날에 도무지 숨길 수 없었던 외로움, 투정, 실수, 그리고 버릇마저 덤덤히 인정하게 만든다.
위에서 소개한 곡들은 사랑에 관한 한 편의 서사로 이어진다. 결이 같은 그들의 노래는 마냥 사랑을 외치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랑 뒤편 이야기들, 즉 사랑이 동반하는 일련의 과정과 감정을 시적인 언어와 여운을 남기는 사운드로 섬세하게 되짚는다. 그러니 마냥 애틋하고 순수했던 청춘시절 기억을 더듬고 싶다면 각기 다른 시기의 사랑을 노래하는 아도이의 노래를 찬찬히 들어보는 게 어떨까.
* 아트인사이트(2019년 4월 14일)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