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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Apr 04. 2021

일상적인 편견의 기록

05 | 여성혐오란 이런 거더군요



1

서비스직의 용모단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단정한 차림새와 친절함이 유독 요구됐던 공연장과 전시장에서 일하면서 매뉴얼화된 용모단정 기준은 늘 의문이었다. ‘남성에게는 강요하지 않는 색조 화장이 왜 여성에게는 용모단정함의 기준이 될까?’ 어떤 색깔의 립스틱을 발라야 하는지도 상세히 적혀있었는데, 바르지 않은 날엔 ‘창백해 보인다’며 ‘어서 바르고 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오늘따라 다크써클이 심해 보인다’는 말은 덤으로 안부처럼 건네지곤 했다.


‘바로 옆에 미처 밀지 못한 거뭇한 수염을 자랑하는 남성 스탭은 늘 그래왔다는 듯 당당히 서 있던데…’

상사가 나를 싫어해서 그런 말을 건넨 게 아니라는 것과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애꿎은 사람을 향한 분노와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화장하지 않아도, 렌즈 대신 안경을 껴도 나의 서비스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내려고 오기를 부려보기도 했지만, 일 잘한다는 평판과는 별개로 외모 품평과 꾸밈 노동의 은근한 강요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얘 꾸미면 꽤 괜찮은데…”




2

“여자가 매니저 할 수 있겠어?”

30명 남짓한 알바생들과 공연장에서 안내원으로 일했을 적, 그 사이에서는 꽤 당연한 인식이었다. 이 무슨 젠더감수성 결여된 발언인가 싶지만, 2~3년 전만 해도, 어쩌면 지금도 유효한 인식일지 모르겠다. 모두 대학생이었던 또래가 모여 비슷한 일을 했고, 오래 일한 사람에게는 다른 안내원을 지휘하고 관람객의 컴플레인을 더 자주 대처해야 하는 매니저라는 직위가 부여됐다. 그리고 그 자리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전유랬다.


눈물이 많고 강하지 못해 컴플레인에 상처받을 거라며, 여자를 만만하게 보는 손님들이 많다며, 걱정을 빙자한 여성들의 업무 능력 평가 절하가 만연했다. 어쩌면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한 데이터에 의존해 실로 그런 편협한 결론을 내렸을지 모르지만, 가장 안타까운 건 실제로 그런 인식이 여성 동료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충분한 능력과 연차가 쌓였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자신 없어 하는 언니들을 신입이었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라고 뭐 다를 게 있었을까.


지도자 남성이 일을  하면 바로  다른 남성을 앉힐  다른 성별로 대체해야겠다는 발상은  하지만, 겨우 기회가 생긴 여성  명이 실패하면 다른 여성을 물색하는 것이 아니라 곧장 다른 성별로 대체되곤 했다. 역시 여자인  문제라며. 그래서 누군가는 지위를 얻고서도 ‘최초 ‘소수라는 타이틀의 무게를 배로 견뎌야 하며 편견에 저항하고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세상에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많은 삶이 특권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중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인성적으로 모남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그랬듯 선함을 가장한 무지는 의도치 않게 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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