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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May 09. 2021

완벽하지 않은 투박함이 주는 위안

파울라 모더존-베커,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



“나는 이런 사람에게 끌려”하고 말할 때 ‘이런’에 들어가는 기준이 성격이나 취향, 얼굴이나 몸매 같은 거라면 차라리 분명하지, 꼭 ‘느낌’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나였다. 느낌이 좋다는 게 뭘까. 이상형을 빗나가는 것인데도 단숨에 나를 끄는 매력이 있는 것들일까.






파울라 모더존-베커,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 1906년, 캔버스에 유채, 61×50.2㎝,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그만의 고유한 매력이 돋보이는 걸 좋아한다. 발견하고픈 미지의 매력들을 하나로 퉁쳐서 얘기하기에 ‘느낌’만큼 간편한 단어가 없다. 그 유일한 매력의 실체를 기어코 알아야겠다며 더욱이 몰입하다 진짜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들. 내겐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작품들이 그랬다. 특히 대학교 1학년 때 작품집을 넘기다 발견한 보물 같던 그림,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이 바로 그 이상형을 빗나갔음에도 첫 느낌이 좋았던 작품이다.



대체로 정교한 게 좋았다. 피에타상이나 다비드상과 같이 사실적으로 조각된 작품처럼, 흉내 낼 엄두도 못 낼 만한 절대적 아름다움이 좋았다. 그런데도 여성 누드화는 싫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쟁점을 떠나 몇백 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늘 비슷한 자리에 물건처럼 배치된 여성을 보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미를 탐구할 때 단편적인 호불호를 들이미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라 배웠어도 사람인지라 마냥 배제하고 보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이 그림엔 내가 좋아하던 정교함이 없다. 대신 뭉툭하고 투박하다. 게다가 여성 누드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누드화와의 다른 점이라면,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농염한 여성으로 그려내려는 제3자의 관음적인 시선이 빠졌기 때문일까. 그도 그럴 것이 파울라는 여성으로서 최초로 자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화가랬다.




파울라 모더존-베커, <호박 목걸이를 한 자화상>(부분).



만인의 연인이 되기 위해 사랑스러운 체하던 나의 모습을 나는 안다. 그래서인지 판별도 쉬웠다. 타인의 행위가 사랑받기 위한 인위적인 모습인지, 진정 자신의 모습인지. 오만한 판단일지라도, 이 모습은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는 몸짓과 표정이 아니었다. 억지스러운 기쁨에 차 있지도, 애써 센 인상을 주려 하지도 않는다. 작품 속 여성은 본연의 모습답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투박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뿌리에서 비롯된 자기 긍정, 건강한 활기, 자연스러운 생동감 같은 것들. '느낌이 좋다'는 표현에서 바로 그 '느낌'을 이루는 것들이었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여자가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기 어려웠고, 화가가 되었더라도 나체를 그리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여성의 나체란 무릇 남성 화가가 남성 컬렉터를 위해 그렸던 자본주의적 소재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작품은 그가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 나간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aula Modersohn Becker, Reclining Mother and Child II, 1906, Kunsthalle Bremen, Germany.




하지만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전반적인 가치관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모성애의 신화가 드러나는 다른 작품을 보면 자연주의에 기초한 그의 여성관은 현대적 사고에서는 옛것으로 치부되기 좋은 가치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중요한 건 그가 지독한 탄압 속에서도 한 자아로서 주체적인 사고를 했다는 거다. 당대 흔치 않았던 여성 직업으로 작가를 선택하고 짧은 생애 전반을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 나간 것에 썼던 그의 삶을 단편적인 작품만 보고 쉽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서른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 작가로서 활동한 지는 10년이 채 안 된 그의 삶을 톺아보면 아쉬울 노릇이다. 오죽하면 그 자신도 마지막에 ‘아, 아쉬워라’하고 남기며 떠났을까. 조금 더 살았더라면, 그 짧은 생에도 몇백 점 이상의 유화와 드로잉을 남겼던 작가로서의 열정 그리고 미화된 세계에 염증을 느끼며 사실적인 세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탐구하던 인간으로서의 자세가 농축된 작품 세계를 조금 더 엿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도 하릴없이 남겨진 작품들로 마음을 달랜다. 특히 밝은 생기가 넘쳐 흐르는  자화상을 보면 괜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여태껏 이토록 나를 긍정해  적이 있었던가, 나의 노란 살갗과 두꺼운 손가락과 마른 입술을 사랑해  적이 있었던가 하고서는. 타인이 찍어준 나의 사진을 미워하고, 창에 비친  모습에 인상 찌푸리던 날들이 부끄러워지는 그림이다. 그리곤 다시 용기 내어 새삼 거울 앞에서 있는 그대로도 좋을  것의 나를 보듬어 보게 되는 . 완벽하지 않은 투박함이 나에게 주는 위안이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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