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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Mar 03. 2021

아는 만큼 보인다? 잘 몰라도 보이는 미술 작품 감상법

인생작품을 찾고 싶은 미술 초심자를 위한 작품 감상법


영화관은  달에  번꼴로 찾으면서 미술관으로는  쉽게 발길이 닿지 않을까. 근처에 없기 때문일까 싶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다. 국내 미술관은 무려 300 개가 넘게 있고 기업에서도 문화예술후원프로젝트로 시각 예술 전시를 종종 선보이고 있어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미술 작품을 접할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KT&G 문화예술공헌사업 중심에는 KT&G 상상마당이 자리하고 있다. 홍대 거리를 거닐면서  번쯤 지나쳤을 법한 KT&G 상상마당은 비주류 문화예술의 소통을 지원하고 대중화에 기여하고 는 대표적인 복합 문화예술공간이다.


이미지 출처 : KT&G상상마당 홈페이지


그런데도 유독 미술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미술을 배우고 있음에도 전시장에서 작품을 만날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회화 작품은 영화나 뮤지컬보다 불친절하다고 느껴지기 일쑤다. 영화  시간 내내 인물의 서사를 막힘없이 전개하기에 관객이 눈으로나마 따라갈  있지만, 회화 작품을 감상할 때는  폭짜리 그림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주제 의식, 작가의 의도, 그리고 상징적 요소를 발견하고 고민하는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성심성의껏  쓰고 마음 써서 작품을 보지 않으면, 작품이 주는 감동을 오롯이 느끼기 어렵다.




미술을 배우면서도 작품과 친해지고 그에 감동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얻은 작품  가치는 때때로 삶을 지탱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방대한 배경지식을 공부하기 버겁다며 아름다움을 탐닉할 권리를 저버리기엔 아깝지 않은가. 단순히 미술로써 교양을 쌓고 싶은  아니라, 그저 작품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감이라도 잡고 싶고 미술로써 삶의 깊이를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과는 별개로 고유의 감상법과 감상을 적절히 표현할  있는 나만의 언어를 찾아내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덕분에  명작인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 마냥 끌리는 작품 앞에서도 '멋있다'라는 다소 싱거운 감상평만 내놓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꾸 뜯어보고 생각하려는 의도적인 습관 덕에 작품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됐다. 훈련이 안목을 만든다! 그래서 전시는 보러 가고 싶지만, 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크게 느껴지는 미술 초심자를 위해 다소 개인적인 미술 작품 감상 과정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감상법 1


단순하게 접근하기, 발견할수록 몰입이 깊어진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왼쪽).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오른쪽).


사람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볼 때도 첫인상이 중요하다. 일단 첫인상이 좋아야 작품 속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의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 작품의 그랬다. <감자 먹는 사람들>(왼쪽)은 대중적으로 유명한 고흐의 작품-이를테면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오른쪽)-처럼 밝은 색채가 쓰인 것도 아닌데, 어둠 속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선명한 눈빛, 깊게 팬 주름살, 그리고 감자를 권하는 투박하지만 사려 깊은 손길까지. ‘얼마나 힘든 노동을 했기에 손이 저리 거칠까?’ 잠시 부모님의 손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동의 대가로 얻은 감자로 구성된 한 끼 식사에는 어쩐지 그만의 정직함이 담겨있는 듯했다. 희미한 램프 아래 비친 이들의 식사에서는 허례허식을 걷어낸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처음에 나는 단순히 그런 소소한 따뜻함에 매료되었다.




감상법 2


작품을 두고 마음껏 상상하기, 감상에 재미를 더하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캔버스에 유채, 81cm x 114cm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부분).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의 표정, 행동, 그리고 공간을 찬찬히 살펴보며 몰입할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면, 다음으로 작품을 두고 다양한 상상을 해보며 감상에 재미를 더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감자 먹는 사람들>의 경우 고흐가 인상파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그린 그림이라 짙은 채색을 주로 사용했지만, ‘만약 작품의 명암과 채색을 달리했다면 어땠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에 집중한 인상주의라는 미술 사조와 위 작품이 인상파 이전에 그린 그림임을 몰랐더라도 충분히 해볼 수 있을 법한 상상이다. 보통은 먼저 작품을 공부한 뒤에 감상할 것을 추천하지만, 선 감상, 후 공부 그리고 또 감상도 괜찮은 선택이다. ‘감자를 건네는 제스처가 없었다면?’ 혹은 ‘작품의 인물 배치가 바뀐다면?’ 등의 물음을 가지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리며 마음껏 상상해 보는 거다. 그럼 어떤 작품을 만나던 작품이 전달하는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작가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예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감상법 3


한 작품 자세히 파고들기, 지식의 확장은 곧 비평의 확장이다.



실컷 상상하며 작품 감상에 흥을 돋웠다면, 다음은 조금 진지한 태도로 작가가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하지만 작품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주제가 그냥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캠벨 수프 통조림을 무한 복제한 앤디 워홀의 작품처럼 개념이 함축된 현대미술 작품은 더욱이 작품만 보고 파고들기 쉽지 않다. 작가와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역사적 배경지식이 뒷받침되어야 작품을 더욱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작품을 통해 세계, 역사,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을 통찰할 수 있다면 꽤 가성비 있게 시야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다면 <감자 먹는 사람들>이 반영한 시대적 배경은 무엇일까?
고흐는 왜 하필 감자 먹는 모습을 그린 걸까?



작품이 그려질 당시 유럽 지역의 감자는 맛이 없고, 모양이 나병 환자의 상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천하게 여겨진 작물이었다. 감자를 먹는 사람은 하층민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도 천박하다는 평을 면치 못했다. 무엇보다 작품은 유럽의 19세기를 반영한다.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해 곧 부르주아 문화로 이어졌지만, 민중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고흐는 단순히 한 가족의 따뜻한 저녁 식사만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하층민의 고된 삶을 마냥 낭만적인 필터를 입히지 않은 채 꾸밈없이 화폭에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마구간 그림이 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훌륭하다고 해야겠지. 바로 그게 마구간이니까.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 냄새, 비료 냄새, 거름 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더 그렇다.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 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 냄새가 나서는 안 된다.

-1885년 4월 30일 자 편지에서.



고흐는 자신을 농민 화가라고 부르며 농민의 삶에 누구보다 밀접하게 다가섰고, 그들의 삶을 환상에 젖어 표현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여유롭고 낭만적인 시골의 풍경이 아니라, 고되고 힘든 있는 그대로의 농촌을 그리고자 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와 대비되는 농촌은 겉보기에 남루해 보일지라도, 고흐에게는 숭고한 노동의 가치와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감상에 젖지 않고 진실하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 세계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작품은 도무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래도 미술 작품 감상이 필요한 이유



간결하고 짧은 제작물에 익숙한 세상에서 진득하게 한 작품 앞에 서 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작품을 두고 치열하게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한 게 아닐까. 정보의 비대칭, 가짜뉴스가 난무한 미디어 시장은 어쩌면 자신의 취향과 사상을 서서히 지배하며 진실과는 더욱이 멀게 만드는 중일지도 모른다.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사람들의 시야와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미술은 관객이 더욱 능동적인 위치에서 세상을 발견하고 뜯어보도록 도와주는 도구와 다름없다. 불친절한 작품 앞에서 한동안 뭐가 보이는지 찾아내고,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주제까지 파악하기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묵묵히 견디며 예술을 삶에 접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이다 보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에 한발 다가설 수도, 깨닫지 못했던 자신만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아트인사이트(2019년 3월 13일)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0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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