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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학엄마 Apr 04. 2022

2년 만의 외식-크론병과 살아가기

딸의 크론병 이야기 31

  2020년 4월에 민지가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민지가 중3이던 때. 코로나 첫 해로 3월에 학교를 못 가던 민지는 코로나가 아닌 설사와 복통으로 인해 몸무게도 많이 빠지는 고통으로 등교를 못 하던 3월 한 달을 보냈다. 코로나가 걱정되어 2월부터 장염 증상으로 아프던 민지를 코 앞에 있는 큰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었다. 장염인 줄 알았던 2월 말부터 3월 한 달 동안 아프다는 아이에게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러니 좀 움직여 보자고 했던 것이 어찌나 후회가 되던지...

  아무튼 그렇게 2020년 민지의 중3이 지나가고 2021년 작년 고1도 지나갔다. 고1 여름방학부터 시작한 레미케이드는 이번에 7회 차였다. 다행히도 레미케이드 치료는 민지에게 빠졌던 몸무게를 되찾아주었고 힘이 없던 몸에 활기도 어느 정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먹는 것도 아직은 조심하고 운동도 PT를 일주일에 1회씩 꾸준히 하면서 근육을 키우려고 노력 중이다.

  외식.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예전 같았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먹었을 텐데 민지가 크론병을 진단받은 후로는 그것이 어렵다. 오히려 민지는 배가 살짝 불편할 때 자신이 먹지는 못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들을 주문한다. 짜장면, 짬뽕, 피자, 매운 음식들을 주로 주문한다. 애매한 음식들 - 가령 튀기지 않고 구워서 나오는 치킨, ㅅㅂ웨이 샌드위치 등은 먹고 탈 나지 않았던 음식들이라 이럴 때는 시키지 않는다. 눈앞에 있으면 먹고 싶으니까.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점심시간에 친정 엄마와 신랑, 나 이렇게 셋이 집 앞에 있는 스테이크 집에서 채끝 등심을 먹었다. 어랏. 이 정도는 민지도 먹을 수 있겠는데? 식전 빵으로는 고구마 스틱 구운 것과 부드러운 누룽지가 나왔고 부드러운 스테이크는 집에서도 가끔 소고기 안심 부위로 먹곤 했었다. 감자 으깬 것, 브로콜리, 양송이 집에서 해 준 조합과 유사하지만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고 나니 더 맛있었다. 딱히 조미료가 많이 들어갈 음식도 없고 괜찮을 것 같았다. 중간고사를 한 달 앞두고 있어서 조심하느라 중간고사 끝나고 간다고 할 줄 알았는데 민지도 언제 가냐며 좋아한다.

  금요일. 매주 금요일은 방과 후에 바로 운동을 가는 날이다. 한 시간 운동을 하고 집에 와서 엘리멘탈을 반포 마시고 스테이크 집으로 향하기로 전날 계획을 세웠다. 아.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동안 변을 보면서 피가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거의 10개월 만에 변을 보면서 피가 보인다. 아 예전에 생겼던 치루가 좀 다시 안 좋아진 걸까. 다행히 바로 그날이 민지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학교 가기 전에 피검사를 하고 변검 사는 이미 2주 정도 전에 제출해 놓은 상태였다. 그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피검사나 변검사 수치가 좋지 않으면 외식도 물 건너가는 건데... 민지가 많이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진료 시간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피검사 결과 정상, 지난번에 좀 올랐던 변검사(칼프로텍틴) 수치도 살짝 내려간 수치였다. 아침에 변에서 피가 보였다는 것을 말씀드리니 좌욕을 열심히 시키라고 하셨다. 좌욕 열심히 해서 항문에 큰 이상이 없고 지금처럼 수치가 유지되면 원래는 여름방학에 해야 하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겨울방학으로 미뤄 주시겠다는 당근을 주셨다. 학교 수업 때문에 함께 오지 못한 민지에게 카톡으로 검사 결과를 남기고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했더니 좋아서 날뛰는 이모티콘을 날린다. 

  2년 만의 4 식구 모두 함께 하는 외식. 그동안은 둘째와 아빠만 주로 나가서 둘째가 먹고 싶은 걸 먹고 온다던가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나와 신랑 둘이서 가서 먹고 온다거나만 가능했다. 민지까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외식을 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직도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지만 2020년 한 해 보다 2021년이 좀 더 나아졌고. 2021년 한 해 보다는 2022년이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작은 소망은 민지가 대학에 갈 즈음에는 대학교 식당의 학식은 골라서라도 먹을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자주는 외식을 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민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외식이 가능한 식당을 많이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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