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있을 때 내 여행 스타일은 동행이 가자고 하는 곳을 군말없이 따라다니는 것이다. 너무 피곤하거나, 동행이 가자고 하는 곳이 너무나 내 스타일이 아닐 경우만 빼고, 어디든 쫄래쫄래 잘 따라다닌다.
그렇다고 난 아무데나 좋다며 계획을 하나도 세우지 않는 건 동행을 짜증나게 하기에 그래도 몇 곳 가고 싶은 곳을 정해두긴 한다. 그렇게 내가 정한 몇 곳과 동행이 정한 몇 곳을 잘 버무리며 여행을 다니면 딱 좋다.
오늘은 저녁 때 레베카 솔닛 강연 듣는 일정만 있던 터라, 오후엔 윤땡땡 대표님을 따라 호스(HOWTH)에 갔다. 더블린에서 기차를 타고 40분 정도 가면 있는 바닷가 마을.
등대를 향해 걸어가보고, 해안가 절벽 트레킹 코스도 걸었다.
트래킹을 할 땐 그간 본 아일랜드 영화가 생각났다.
시얼샤 로넌이 나온 <브루클린>, 작년에 본 <이니셰린의 밴시> 등등.
날씨는 흐리고, 바람은 불고, 그러다가 비를 만나고,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길을 터주고, 그렇게 걷다가 가만히 서서 바다를 보고, 동행의 사진을 찍어준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는데도 지루하지 않는 건 지금 이 장소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또 동행과의 대화가 편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편집자님들과 나누는 대화를 좋아한다.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도 출판계에 대해, 특정 책에 대해, 어느 작가에 대해, 그리고 글쓰기와 독서에 대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대표님과 걸으면서도 내가 더블린에 오기 전까지 읽던 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고(대표님은 다 읽었다며 나에게 스포를 했다), 또 얼마 전에 읽은 존 쿳시의 <폴란드인>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두 책의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죽기 전 찾아온 사랑을 놓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노인의 욕망, 노인의 사랑.
왜 두 거장은 사랑을 이야기하는가. 사람은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랑을 해야 하는가.
답 없는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책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런 관계는 흔치 않기에, 만나는 모든 편집자님들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호스에 갔다와서 호텔에서 쉬다가, 저녁에 다시 길을 나섰다.
메리언 스퀘어에서 레베카 솔닛의 강연이 있기 때문.
나는 강연을 듣기 전부터 레베카 솔닛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을 걸 알았고, 실제로 그랬다.
뜨문뜨문 몇 문장 알아듣기도 했지만, 그 문장 몇 개로 맥을 짚을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럼에도 레베카 솔닛이 하는 이야기의 방대함과 크기는 알 수 있었고, 레베카 솔닛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토록 많은 사람 앞에서 이렇게 큰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힘의 근원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에 대해서도.
또, 나와 같이 앉아있는 수백명의 아일랜드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내 앞에 앉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세대 구분 없이 온 연령의 사람들이 매년 열리는 문학 축제에 참여해 세계적인 작가가 하는 커다란 이야기를 집중해 듣는 것.
기후 위기, 페미니즘, 트럼프, 일론 머스크, 더 중요한 가치, 낙관, 희망.
이 시간이 갖는 힘과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사인 줄에 섰다.
내 앞에 섰던 대표님이 레베카 솔닛에게 말을 걸었고, 레베카 솔닛은 대표님이 한국에서 온 걸 알고는 크게 기뻐하며 우리가 지난 몇 개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다 보았노라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전 세계인의 귀감이 되었다고 말하며 손을 들었고, 두 사람은 내 앞에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세계의 움직임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멋진 작가!
그 작가에게 나도 사인을 받았고, 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공원에서 맥주도 한잔 마셨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맥주 한 잔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오는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