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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엔 언니와 영어를

by 황보름

두 달 전부터인가. 언니가 목요일 아침마다 온다. 나랑 한 30분 영어로 말하기 위해서. 언니는 지난 몇 년 영어를 공부했다. 이유는, 이제 열짤인 아들이 영어 공부를 힘들어할 때 길을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엄마도 마흔이 넘도록 영어로 말을 못 했는데, 뒤늦게 공부해서 이젠 어디 가서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됐어, 그러니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면 엄마가 알려줄게.


몇 년 영어 문장을 외우고 외우던 언니는 이제 조금 더 본격적으로 스피킹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여러 군데 알아보기도 했는데 마음에 딱 드는 데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삼십 분. 주제하나 정해놓고 미리 준비해 와서 말해보자. 나도 작년부터 영어 공부 다시 해야 하는데...,라고 수도 없이 생각해 왔던 터라 바로 오케이 했고, 그렇게 시작된 언니와의 영어 대화.


언니가 오기 전 40분 정도 준비를 한다. 챗지피티를 열어 앞으로 내가 쓰는 한국어 문장을 다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말해 놓은 뒤, 한국말을 쓴다. 지피티가 말해준 영어 문장을 바로 외울 때도 있고, 여기에 왜 이 단어가 들어가는지 물어보며 새롭게 단어의 쓰임새를 익히기도 하고, 또 똑똑한 지피티를 활용해 문장을 조금 더 친근하거나 쉽게 바꾸기도 한다. (챗지피티로 하는 번역은 구글 번역을 이용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므로, 여러분에게도 추천합니다. 지피티에게는 상황을 설명한 뒤 이 상황에선 뭐라고 말하면 돼?라고 물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문장을 하나씩 외우다가 지피티에게 말한다. 지금까지 알려준 거 한 번에 다 나열해 줘. 그러면 지피티는 숫자를 하나하나 매겨 문장을 나열해주기도 하고, 때론 숫자를 뺀 채 나열해주기도 한다. 그렇게 나열된 문장을 외우다가 중간에 새로운 문장을 넣고 싶으면 지피티에게 말만 하면 된다. 세 번째 문장 뒤에 다음 문장을 번역한 문장을 넣어줘. 그러면 지피티는 기존의 문장들에 새로운 문장을 딱 끼워 넣어주고, 나는 다시 그걸 외운다.


이제 외운 영어를 술술 말할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언니가 온다. 우리는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짧게 수다를 떨고 나서, 영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언니가 먼저 준비한 말을 하면 내가 질문하고 언니가 대답한다. 언니는 말을 하다가 자꾸 "그리고"같은 한국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영어 단어와 단어를 이어 어떻게든 하고자 하는 말을 한다(얼마나 큰 발전인가!). 이제는 나의 차례. 나도 외운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입 밖으로 뱉는데, 자꾸 내용을 까먹어 오늘부터는 한국말을 보면서 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기억력 테스트를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준비한 말을 다 하면 언니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한다. 이렇게 몇 번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 보면 삼십 분이 휙 지나간다. 이후에는 내가 밥을 차려 같이 점심을 먹는 시간!


목요일만 이럴 게 아니고, 월-금을 이렇게 하면 영어가 많이 늘 텐데.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라도 써 놓으면 하루라도 더 공부를 하지 싶어서. 정말이지 나는 '다음 주'부터 매일 30분씩 영어 공부를 할 것이다. 막상 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잘 가는데, 시작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가. 어디 가서 강연을 할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영어로 막힘없이 스몰 토크 정도는 하고 싶은데, 이 바람은 왜 이렇게 이루어지기 힘든가. 하루에 삼십 분. 그리고 몇 년. 나는 내가 이 정도는 나에게 투자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과연 나에게 이런 일을 해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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