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würztraminer 게뷔르츠트라미너
어떤 와인을 최초로 마셨는지는 오래되어서 사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은 나의 와인 스승은 형수님이었다는 사실과 SNS 어딘가에 와인에 대한 시음기를 기록해두었는데 통째로 날아가버려 더 이상 접근이 안되다는 것.
형수님은 고기, 치즈류를 먹지 않는 선택적 채식주의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퀄리티의 맛집들 탐방을 자주 다니며, 고기나 치즈가 들어간 요리 또한 수준급으로 해내는 모습이 우리 집안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아무튼 그런 묘한 미각과 재주를 갖춘 분이 나에게 와인이라는 술을 소개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와인이라는 것은 한국에서 거품이 잔뜩 낀 멋진 주류라는 인식이 많았고, 그마저도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영역에 있었다. 그렇지만 수입사 및 유통업계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한국인의 술에 대한 부심이 절묘하게 맞물려 시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나도 와인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져 관련된 대학 수업도 들어보고, 책도 읽어보며 아주 초보적인 지식만을 탑재한 채 우쭐대던 때가 있었다. 정말 무지한 친구들이 와인에 대해 물어보면 답해줄 정도는 되긴 했으나 기껏 해봐야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허접한 지식으로 입을 놀린 나 자신이 부끄러워 기억을 삭제하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잃어버린 와인기록과 기억들 속 당시 꽤 임팩트가 컸던지 기억이 나는 포도 품종이 있는데 바로 게뷔르츠트라미너다. 이름도 어렵고 독특해서 기억에 남은 것도 있겠지만 맛 또한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질의 것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기에서도 아니었을까.
게뷔르츠트라미너는 독일,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화이트 포도품종이다. 그리고 생소한 이름만큼이나 맛도 꽤나 개성있는 편인데, 마치 후추를 갈아넣은 듯 알싸한 향신료 내음과 이국적으로 달큼한 열대과일--그중에서도 특히 리치--향의 조합은 정말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실제로는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향신료라는 것에 관심도 많고 또 거부감도 없는 편이라 해외의 각 나라에 갈 때마다 최대한 그 나라의 음식을 있는 그대로 즐기려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와인이라는 것, 특히나 이렇게 개성강한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만나게 되면 즐겁기 그지없다. 아마도 그런 이유덕에 잊지 않았던 거겠지.
마지막으로 알자스 지방, 독일의 리슬링 또는 게뷔르츠트리미너 와인들은 병 모양이 보르도 또는 부르고뉴 병보다 훨씬 더 각이 없이 부드럽게 빠지며 지름도 더 작아 늘씬해 보인다.
그나저나 오래간만에 다시 게뷔르츠트라미너를 마시면 잃어버린 옛 기억이 되살아날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