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첫인상은 와인에도 있다

Sylvain Pataille, 실방 파타이

와인의 기초 강좌나 글을 읽어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챕터는 "와인 마시는 법"이다.


와인은 보고, 맡고, 마신 뒤 총평을 내리는 단계로 보통 안내를 하고 있다. 본다는 것은 와인의 색상을 비롯하여 잔에 흘러내리는 형태나 점성 등을 파악하는 일. 맡는다는 것은 와인의 향에서 무엇이 느껴지는 지와 산소와의 결합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변화를 감지해 보는 것. 마신다는 것은 혀 끝에 닿아 느껴지는 모든 맛 (짠맛, 쓴맛, 단맛, 신맛 등)을 감지해 보고, 입 안에 닿는 텍스쳐와 무게감 등을 골고루 느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를 적절히 음미하며 거친 뒤, 본인만의 최종 평가를 내려보라는 것이 소위 말하는 교과서적인 와인 마시는 법이다.


하지만 뭔가 늘어놓긴 했지만 우리가 떡볶이를 먹을 때 거치는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그 순간부터 소스의 색이나 풍겨 나오는 매콤한 향으로부터 여러가지 정보를 얻고, 참을성 없는 손놀림으로 입속에 넣은 떡볶이를 오물오물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하는 일은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흐름이 아니던가.


와인도 똑같다. 그리고 그 단계의 과정이 한차례 끝나는 순간 첫인상에 대한 결정이 난다. 물론 와인을 오픈하기도 전에 라벨만으로 이미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적어도 맛까지 봐야 내 마음을 줄지 말지를 정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와인은 조금 달랐다. 와인 보틀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흘러나와 와인글라스 바닥을 서서히 채워가는 반투명의 루비색을 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콩깍지가 무서운 건 비단 이성과의 관계만이 아닌 듯하다. 그 뒤로 향과 맛에도 반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이렇게까지 마음에 드는 와인을 만나면 간사한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아 더 사놓을 걸...'



Sylvain Pataille Bourgogne 2021

실반 파타이 (또는 실뱅 파타이유, 실방 파타유 등등으로 불림)


프랑스 부르고뉴 꼬뜨 드 뉘의 최북단에 위치한 막사네 마을에서 천재소리 좀 듣는 생산자.








작가의 이전글 청소가 싫으면 와인 시음회를 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