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집중하는 것이 힘든 세상

와인마실 때만큼은 다를지도

요즘 핸드폰을 하면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같이 짧고 임팩트 있는 영상들을 휙휙 넘겨가며 시간을 그야말로 공중에 날려버린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니 참을성도 점점 줄어 한 가지에 집중하여 음미하는 일이 적어지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 공부했던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를 보면 웹사이트가 로딩되는 시간을 사람이 얼마나 기다릴 수 있는가에 대한 관찰 내용이 나온다. 몇 초 이내로 화면이 로딩되지 않으면 뒤로가기를 누르거나 다른 행동을 해버린다는 것. 하지만 그 관점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람의 기대치가 올라감에 따른 행동변화인 것이었지 이런 미디어 형태의 진화 --이걸 진화라 불러야 할지는 의문이지만--에 따른 피드백은 아니었다.


이제는 핸드폰이나 PC에서 어떤 것을 눌렀을 때, 빠른 로딩을 바랄 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의 핵심 내용마저도 빠르게 보여주길 원한다. 미괄식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소리다. 요즘 나오는 음악들은 시작하자마자 1절 가사가 튀어나온다. 그야말로 거의 시작하자마자다. 1절 가사로 이어지기 전까지의 분위기 조성을 위한 전주따윈 1초면 충분한 시대다.


이런 세상 탓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매사에 예전만큼 나의 관심을 밀도 있게 할애하고 집중할 수 있는 순간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아닌 사실일 것이다.



그나마 요즘 짧더라도 온전히 대상을 마주 보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와인을 마실 때 벌어진다. 와인을 마시는 데에는 비용이 들기도 하고, 잔을 준비한다던지, 와인배경에 대한 공부를 한다던지 등의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처음 만나는 와인, 특히 누군가 고심 끝에 가져온 와인이라면 더욱더 긴장하고 집중하게 된다. 그래도 함께 모인 이들과의 즐거운 자리에서까지 나만의 세계로 떠나버리는 초명상급의 집중력은 발휘하지 못하니 그 정도 사회성은 갖춘 모양이다.


오늘도 새로운 와인을 한 병 들고 귀가한다. 그리고 와인을 마실 테고, 그 순간을 남기려 애쓸 것이다. 이때의 나는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지루하고 느린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사진 속 와인 리스트

1. 돔 페리뇽 2010

2. 장 노엘 가냐르 바따르 몽라셰 그랑 크뤼 2006

3. 도멘 아르노 라쇼 뉘 쌩 죠르쥬 프리미에 크뤼 2012

4. 도멘 파스칼 라쇼 샹볼 뮈지니 프리미에 크뤼 2005

5. 도멘 푸리에 쥬브레 샹베르땡 오 에세조 비에이유 비뉴 1995

작가의 이전글 연예인 같은 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