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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남길 수 있어요?

비마프의 와인 시음회

비마프의 와인시음회에는 <와인, 남길 수 있어요?> 라는 별칭을 붙여놓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어떤 와인을 만났을 때 그 와인을 다 마시지 않고 남길 수 있는가. 즉, 버릴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다른 의미로는 방금 마신 와인에 대해 자신만의 표현을 남겨볼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그래서 시음회를 진행하면 펜과 종이를 내어주고, 시음해 본 와인에 대해 뭐라도 남기도록 권유했다. 단순히 맛있다, 없다, 모르겠다보다는 조금 더 살을 붙여보라는 설명과 함께.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한다. 해본 적이 없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혹시 정답이 있는데 나만 딴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기 때문이다. 이건 시험도 아니고, 실패한다고 해서 손해볼 것도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나한테는 좀 매운 것 같아. 그리고 국물이 너무 단 것 같네.’ 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쉬운데 왜 와인은 편하게 대하지 못할까. 와인도 음식의 한 종류일 뿐이다. 결국 내 입맛에 맞건 안맞건 그 이유가 각양각색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말이다. 


비마프 시음회 <와인, 남길 수 있어요?>


<신의 물방울> 이라는 이제는 조금 유행이 지난 만화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인쪽에서는 큰 영향을 미쳤던 이 작품의 한 주인공인 토미노 잇세는 이런 표현까지 한다. 



이 와인 너머에, 술의 신 바쿠스의 제단이 보여



실생활에서 이렇게 표현을 하면 아마 친구가 안생길 것 같다. 물론, 여전히 뭐라도 표현을 남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그리고 그에 대해 누군가와 토론까지 해본다면 그 기억은 상당히 오랫동안 남는다. 나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만난 와인들에게도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남기는 방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산미가 미디엄, 바디가 미디엄 플러스니 뭐니 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가 봐도 알 수 있도록 공통적인 기준에 의거하여 산출한 객관적인 지표로써 의미가 있다. 만약 ‘어릴 적 할아버지가 주신 과자의 고소한 맛' 이라고 말한다면, 나 이외에는 이 맛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와인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자연스럽게 죠스떡볶이와 신전떡볶이의 차이를 말하듯 표현해도 충분하다. 그렇게 와인에 대해 남기고 소통하다 보면 점점 와인과 더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와인 하나하나와 그 순간들이 오래 기억 속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마프 시음회는 <와인남길  있어요?>라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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