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워킹홀리데이 기록.
"두상이 큰 편이라 국내에서 승무원은 힘들겠어요.... 해외항공사 쪽으로 알아보는게 좋을것같아요"
큰맘 먹고 등록한 인기 승무원 강사의 원데이 클래스에서 들은 혹평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답변도 잘했고, 어디가서 얼굴로 빠지지도 않고, 인생에서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는데 어떻게 저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한 이유가 정말 두상크기, 즉 비율때문일까. 우울했다.
그 추운날의 그 코멘트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 중 하나가 됐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런 말을 들었다는것을.(지금까지도 나만 아는 비밀이다)
얼굴이 못생겼으면 성형수술을 하고, 뚱뚱하면 살을 빼겠지만
두상이 큰건 어떻게 해결이 안되었다. 나의 장점보다는 계속해서 그놈의 해결안되는 '비율'에 대해서만 꾸준히 생각했다. 그래도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포기가 안됐다. 가끔은 꿈에서 한번도 안해본 승무원으로서 비행을 했고, 비행기를 놓쳐서 아찔한 느낌의 꿈에 깨기도했다.
그래, 내가 여기서 안된다면 해외항공사를 노려보자.
꼭 꿈을 이루고 말겠다고 호언장담을 한 후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뒀다.
나를 붙잡는 모든 손을 뿌리쳤기에 난 꼭 해내야한다는 압박감도 사실은 존재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승무원을 꿈꿨기에 외국 항공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고민만 하다가 한달이 지났다.
11월에 호주로 떠난 친구는 하루가 멀다하고 나보고 호주를 오라며 꼬셔댔다. 살짝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때쯤, 떨어져가는 통장의 잔고들도 내겐 하나의 이유가 됐다. 또 잘 생각해보면 해외로 나가는 것이 한국에서 돈을 벌면서 승무원을 준비하는 것 보다 백배 가성비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럼에도 도무지 갈 엄두가 안났던 이유는 해외여행이라고는 2박3일 홍콩에 다녀온게 전부인 내가 호주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비행기도 갈아타야하고, 사실 나를 꼬셨던 친구도 다른 친구랑 같이 시작한 워홀이라 나만큼은 두렵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나날이 갔고 '시간은 흐르고 넌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 멍청아'라는 속에서 나오는 나를 향한 진심이 날이선 칼날이 되어 내 목을 겨누고 있었다.
햇빛이 좋고, 바람은 따뜻했다. 봄내음이 온 동네를 가득 채웠던 그날 아침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비자를 신청해버렸다. 하필 환율이 올랐던 날이라서 친구가 말했던 돈 보다 더 많은 금액이 청구됐고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