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ASD에 대한 오해 풀기
평소에도 DEI(다양성, 평등, 포용)에 관심이 많았고 신경다양성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경다양성의 핵심인 ASD(Autism Spectrum Disorder)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은 것 같아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오티즘을 소개하고 싶다.
(본 글에서는 이해를 위해 자폐라는 용어를 쓰지만, 자페는 스스로 닫혔다는 의미의 부정적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자폐는 원어 그대로 오티즘, 자폐 당사자는 오티스틱(Autistic)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더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자폐 진단에서 가장 큰 오류 중에 하나는 외형적 행동, 타인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폐는 신경다양성이므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다른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아니라 "내면적 고통,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 내면의 사고체계"를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 *자폐 진단 기준에 대한 글은 다음 글로 쓸 예정입니다*
내과나 다른 질환들처럼 a면 a, 이렇게 진단되는 게 아니라 굳이 진단명에 스펙트럼이 붙은 이유는 Autism Spectrum Disorder는 수백 가지 다른 특성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고유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필자는 Dimension이라는 용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펙트럼은 마치 프리즘처럼 다소 선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사실 ASD는 정말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도형적인 느낌에 가깝다.
사진처럼 누군가는 특정 항목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다른 항목에선 두각을 드러낼 수도 있고, 모든 ASD가 눈맞춤을 못하거나 공감 능력이 낮거나 심각한 멜트다운을 겪는 것은 아니다. ASD와 관련된 다양한 오해에 대해서는 글 아래부분에서 더 자세히 적었다.
이처럼 ASD는 고유한 특징이며, 누군가 전형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해서 그 사람을 ASD가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해외의 유명한 ASD 관련 말 중에 "자폐인 한 명을 만났다면, 당신은 오직 자폐인 한 명을 만난 것에 불과합니다"라는 말이다. 이 말을 명심하자.
여담으로 ASD들은 신경전형인들보다 시냅스 가지치기가 덜 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ASD는 MRI나 뇌 스캔을 통해 진단되지 않는다. 특정 유전자를 정확히 짚어낼 수도 없고 원인도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쨌든 신경학적으로 뇌가 뉴로티피컬과 다르며 그로 인하여 여러 가지 모습을 갖게 된다. 유추해 보건대 시냅스 가지치기가 덜 되어 있어서 수직적, 하향식 사고가 아니라 수평적, 상향식 사고에 더 유리하고 (모든 ASD가 그런 건 아니지만) 패턴을 찾아내거나 사물 간 연결고리를 찾는 데 용이하기도 하다.
ASD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이자 진단의 진입장벽이 되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풀배터리 검사가 자폐 진단에 쓰이는데 이중 WAIS 지능 검사도 포함되어 오해가 잦다.
일단 IQ와 자폐는 상관이 없다. 명문대를 가거나 석, 박사를 하거나 학업적 성취가 뛰어난 ASD도 많다. 학교의 안정적 구조에 적응하여 성적을 잘 얻는 경우도 많고, 관심 분야를 파고든다거나, 간혹 영재성(2e라고 부른다)이 있어 공부를 하지 않고도 성적을 잘 낸다거나, 학업 현장까지는 마스킹을 통해 어려움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등 매우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자폐도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지능 지수는 매우 다양하다. 지적장애가 동반된 경우도 있고, 우영우나 굿닥터처럼 서번트 증후군이 있고 IQ가 높은 경우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많은 케이스는 평균 범위의 지능 지수를 가진 ASD이다. 예를 들어 100~110대 IQ를 가진 ASD도 많이 존재한다. 그럼 이들은 영화 속 천재 같은 자폐인의 이미지에도 안 맞고 지적장애 대상자도 아닌데 ASD가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레인맨이나 우영우, 굿닥터는 자폐의 극히 일부만 다뤘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한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학업적 성취 때문인 경우도 꽤 많다. 가령 대학을 나오셨네요, 공부를 잘하셨네요, 석박사 학위가 있네요, ASD가 아니겠네요, 하는 잘못된 추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니다. 학업적 성취와 직업적 성공은 별개의 것이며, 지능 지수에 문제가 없고 지적 장애가 동반되어 있지 않다면 (굳이 영재가 아니더라도) 성적이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직업을 갖고 있는 ASD도 있다. 이들은 외형적 성취 때문에 자폐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라이프 히스토리를 통해 그들이 겪는 내면적 어려움을 질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단순 풀배터리나 IQ만이 아니라 신경심리학자와의 길고 긴 면담이나 각종 테스트를 실시한다. 그리고 설령 풀배터리를 참조할 때에도 전체 IQ 지수보다는 오히려 구체적 영역에서 고르지 않은 지능 프로필이 더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는 처리속도나 작업기억이 낮기도 하지만, 때로는 언어지능이 매우 높다거나, 혹은 지각추론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거나, 하는 등 불균형한 뇌 발달 양상을 보여준다. 그러니 IQ를 숫자만으로 보고 ASD의 핵심 진단 지표로 삼으면 오산이다.
이것도 아주 흔한 오해이다. 자폐인들이 높은 천재적 지능을 갖고 STEM 전공이나 수학, 과학, 법학 등에 매우 강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ASD 스펙트럼을 너무 좁게 본 것이다. 물론 위 내용에 강점을 보이는 ASD도 있지만 사실 ASD 중에서는 언어지능이 뛰어난 경우도 있고, 공감 능력이 과잉인 경우도 있으며, 수학이나 과학 등에 취약하기도 하고, 예술에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스펙트럼이다.
그러므로 ASD를 만났을 때 당연히 그들이 수학을 잘할 것이라 생각하거나, ASD가 수학적 이과적 사고에 취약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ASD가 아니라고 단정하지 말자. 특히 여성들의 경우 전형적인 STEM 베이스의 남성형 자폐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남성 내에서도 편차가 있다)
뿐만 아니라 패턴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ASD가 패턴 인식이나 추론에 능한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지각추론 쪽에 취약하고 패턴이나 논리적 사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또한 ASD라고 무조건 작업기억이나 처리속도가 낮은 것도 아니며, 지각추론 지수가 낮기도 하고 불균형한 지능 발달의 프로필을 보이기도 한다.
더불어 모든 ASD가 시공간적 사고에 강하거나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잘 알아보는 경우도 있고, 시공간적 사고에 약한 경우도 많다. 그러니 ASD는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이라는 점을 늘 기억하고, 미디어에서 본 편향된 모습만으로 ASD를 재단하지 말자.
자폐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이다. 자폐는 과연 공감능력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특히 여성 ASD들의 경우 EQ나 공감 능력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핵심은 '고르지 않은 공감 능력의 프로필'과 '인지적/정서적 공감의 차이'이다. 자세히 보자.
일단 자폐는 스펙트럼이므로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너무 과잉 공감해서 영화나 타인이나 동물의 슬픈 이야기조차 못 보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의 경우 많이 보인다. 이 경우 타인의 감정을 경계 없이 스펀지처럼 흡수해서 심적인 고통을 받기도 한다. 또는 주변인의 이야기에는 다소 무심한 듯 보이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의 공익광고나 혹은 영화를 보고 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들을 보면, 이것은 공감 능력이 고르지 않아서 발생하는 사례이다. 특히 과잉공감하는 Hyper-empathy autistic의 경우 사소한 내용에도 심적 고통이 너무 크거나 신체적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자극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외부와 고립시키기도 한다. 이것을 밖에서 보면 무심하다고 보이는 것이다.
또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도 정서적 공감에 무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인지적 공감이 부족하여 특정 상황에서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히 유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반대로 소시오패스의 경우 정서적 공감은 낮거나 없지만 인지적 공감은 높아서 속으로는 감정적 영향이 없음에도 추론을 통해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으므로 ASD 사람들보다 더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ASD가 공감 능력이 낮다고 하는 것은 매우 단면적인 발언이다. 그저 신경전형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의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다. 또한 Alexithymia라고 해서 감정표현불능증도 자폐 스펙트럼의 동반 질환으로 종종 나타난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 감정을 명명하고 인식하거나, 신체 감각과 감정을 분리하기 어려워하거나, 타인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알기 어렵거나, 외부의 설명 등이 있어야 감정을 명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ASD 중에서도 알렉시티미아가 있으면 공감에 더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이 없을 경우 공감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알렉시티미아와 ASD의 교차점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가끔 온라인을 보다 보면 ASD가 게으르거나,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라는 차별적 발언이 눈에 띈다. 심지어 자신만을 생각하는 남편이나 동료를 보고 그 사람을 ASD라 단정 짓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며 많은 ASD 분들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다.
일단 ASD와 성격장애는 다르다. 성격장애 중에서 자기애성,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있는데 전자가 흔히 말하는 나르시시시트이고 후자가 흔히 말하는 소시오패스 등을 포괄한다. 이러한 인격장애를 보고 ASD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격장애와 ASD는 다른 범주이다. 물론 여러 성격장애가 있으므로 살다가 ASD와 다양한 성격장애가 병존하게 되기도 하지만, ASD를 이기적이고 사회성 없는 존재로 낙인 찍으면 곤란하다.
앞서 말했듯이 ASD가 무조건 공감 능력이 없다는 것도 편견이며, 세상과 고립되어 자신만을 신경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도움이 될 법한 생각은 바로 ASD 등의 ND들은 관계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우정이나 사랑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NT(신경전형인)들은 연락이나 잡담, 상호적 표현의 빈도와 정도를 중요시 여긴다. 하지만 ASD는 잡담이나 스몰토크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연락을 굳이 먼저 하지 않아도 이러한 물리적 상호표현 여부와 관계 없이 내적 친밀감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몇 년간 연락이 끊어져도 다시 만났을 때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처럼 상대를 대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험을 공유하는 해외 커뮤니티의 ASD 분들을 보면 사례가 많아 놀라울 정도이다.
그리고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ASD 중에서는 플라토닉 관계와 로맨틱 사랑의 차이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감각 민감도 때문에 전통적 결혼이나 육체적 관계를 선호하지 않지만, 퀴어 플라토닉 관계라고 해서 동반자처럼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추구하는 분들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저 생각과 접근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이 그런 차이가 있을 뿐 타인에게 해악을 끼친다거나 자기 자신에게만 유리한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NPD나 APD의 경우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길 원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범하고 조종하기도 하지만 ASD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의미이다. (물론 NPD 중에서도 트라우마 때문에 과한 자기보호 및 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성격장애가 생기고, 이 때문에 내적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성격장애 또한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사회성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거나, 조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인간관계를 다르게 접근한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여기까지 자폐에 대한 흔한 오해들을 보았는데, 아래는 자폐 진단과 관련된 내용들을 더 담아 보았다.
아직까지도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저기능 자폐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하지만 이 용어는 그닥 바람직하지 않다. 일단 아스퍼거증후군, 비정형 자폐, 상세불명의 전반적 발달장애 모두 자폐 스펙트럼에 포괄되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겠다. (특히 아스퍼거는 아스피라는 용어로 전환되어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하고, 나치 시절의 잔재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고기능, 저기능으로 분류하는 것은 내면화된 장애인 차별을 유발하거나 자폐 스펙트럼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든다. 가령 저기능(LEVEL 2)이라고 해서 신발끈을 묶지 못하거나 위생 관리에 어려움을 겪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에 몰입해서 개발자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 고기능(LEVEL 1)이라고 해서 일상이나 학업은 어찌저찌 이어갔지만 직업 환경에서 무너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과연 고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해외에서는 더이상 이런 용어들을 쓰지 않고, ASD LEVEL 1, 2, 3로 분류한다. 그리고 이를 '기능'이 아니라 '지원 필요성'으로 보고 있다. 즉 사회복지적 및 의학적 지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또한 가끔 경미한 자폐, 중증 자폐라는 용어도 눈에 띄는데 일단 해외에서는 mild autism이라는 용어를 점점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자폐 스펙트럼은 있거나, 또는 없거나의 차이이다. 경계선에 있어요, autistic traits는 있지만 autism은 아니에요, mild하니 괜찮아요, 라는 표현은 의학적으로 잘못된 부분이다. 이는 자폐에 대한 내면화된 차별이나 낙인 때문에 의료진들이 진단을 꺼리는 경우에도 많이 발생하는데, 해외에서는 이런 표현들을 점차 쓰지 않고 있고 그저 asd가 있고, 없고로 판단하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level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단 기준을 질적으로 만족한다면 ASD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사실 DSM-5 등 진단기준도 백인 남아들을 기준으로 작성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해외에서도 성인,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미진단률이 매우 높다. 성인이면 아동기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이면 마스킹이 많이 되고 특별한 관심사가 다르단 이유로, LGBTQ와 유색인종은 그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진단 및 평가마저 거부되는 경우도 많고,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면 진단 및 평가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조차 어렵다.
그리고 설령 진단이 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후기 진단 ASD인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없다. 외국처럼 직장에서 편의 제공을 요청하거나 추후 교육 과정에서 지원을 받거나 장애인 수당을 받거나 등이 매우 어려운 것이다. 설령 아동기에 진단받는다 해도 지능 지수에 문제가 없거나 심각한 발달 지연이나 언어 지연, 외적인 기능손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으면 장애인 등록 심사가 거절되기도 한다.
즉 여전히 소위 말하는 경증 자폐(필자는 이 용어를 선호하지 않지만 편의상) 에 대한 지원은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오히려 민간 수준에서 낙인과 차별이 훨씬 만연하다. 그렇기에 ASD를 오픈하기도 어렵고, 의료진에게서 일부러 공식 진단명을 받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려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조기 개입이나 어렸을 때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이나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평생 동안 말 그대로 고장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기도 하고, 정신질환 때문에 고통받기도 하며, 사회적 오해에 시달리고 가면증후군을 겪고, 경제활동을 제대로 이어가거나 인간관계에서 나이대에 맞는 이정표를 달성할 수 없어 고통받는다.
그러므로 ASD라면 그 레벨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도 사회복지적 지원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더 나아가서 LEVEL 1이라서 국가에서 장애인 등록이 어렵다면 민간 차원에서라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꼭 장애인 등록 증명서나 F코드가 없어도 그들이 삶에서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해외에서도 적극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다.
무엇보다 ASD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신경다양성을 이해하는 정신과를 찾기가 힘들고, 위에서 말한 아동기 전형적 자폐가 아닐 경우의 ASD는 단지 눈맞춤이 되거나 지능지수가 높다거나 삶에서 이룬 것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단에 대한 요청마저 거부당한다.
하지만 ASD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그러므로 성인, 후기진단,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에 대한 ASD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 단순히 소아정신과만이 아니라 다른 일반 정신과, 임상심리학자 분들 등 많은 의료진의 연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해외에서는 신경심리학자나 임상심리학자가 진단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며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등이 모두 협진을 한다. 말 그대로 ASD는 삶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사고패턴과 양상, 그로 인한 어려움을 포괄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학제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ASD 진단이 늦어진 성인기에서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마스킹이다. 이것은 성장 과정에서 신경전형인처럼 행동하라는 외부적 압박과 고립되지 않기 위한 생존 기제 때문일 수도 있고, ASD가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마스킹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 경우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자기를 숨기고 과잉 억제를 하고, 타인의 기분에 맞춰 자신의 요구를 숨기고, 사람마다 그들에게 맞춘 다른 페르소나를 연기하거나, 지나친 people-pleasing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ASD가 사회적 스크립트를 외우기도 하며,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상황을 예행연습하거나, 상호작용이 끝나고 나서 자신의 상호작용 양상을 오래 점검하는 반추사고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데 특히 성인 여성의 경우 self-silencing, 즉 자신의 자아마저 숨길 정도로 타인에게만 포커싱이 된 극단적 마스킹이 많이 나타나서 진단이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마스킹은 매우 큰 후유증을 초래한다. 마스킹을 너무 오래 하다 보면 autistic burnout, 소위 말하는 자폐성 번아웃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 우울증으로 인한 일시적 번아웃과는 달리 심하면 몇 년 이상씩 가기도 한다. 단순히 휴식이나 여행 등으로 해결되지 않고 아예 환경을 바꾸거나, 사회적 고립을 통해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고, 자신의 특수한 관심사로 몰입해 감정적 자극을 완화하는 게 해결책이다. 그러므로 우울증의 해결 방법처럼 사회 참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시적인 회복으로 낫지 않는 것이 바로 자폐성 번아웃이며, 이것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오랜 기간 이어진 마스킹이다.
그래서 데본 프라이스 등 해외 자폐 심리학자들이 말했듯이, Unmasking Autism, 즉 마스크 벗기가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으로는 감각적 자극인 스티밍을 점차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것, 반추 사고나 내면적 반복 사고가 있을지라도 그러한 사고 패턴을 받아들이는 것, 사회의 다수에게 맞추려 하지 말고 정상적 사회성의 틀에 얽매이지도 말고 자신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소수의 친구들과 안전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 등이 있다. 한마디로 키워드는 자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는 것이다.
흔히 잘못된 오해 중에 자폐는 완치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선 자폐는 신경다양성에 속하는데, 이 말인즉슨 선천적으로 뇌가 신경학적으로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뇌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자폐에서는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꽤 위험한 발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거 트랜스젠더나 성소수자의 전환치료처럼 자폐적 특성을 모두 없애서 정상인처럼 살아가게 하겠다는 뜻인데, 이것은 많은 ASD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단 정상과 비정상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살면서 정상, 비정상을 나누는 것은 오직 사회적 산물에 불과하다. 그 낡은 틀을 답습할 필요가 없다. 무엇을 기준으로 정상을 나눈단 말인가.
그러므로 신경다양성의 관점에서 보고, 자페를 치료하고 없애야 할 '질환'이나 '질병'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자폐는 용어에서도 나오듯이 장애에 해당하는데, 신경다양성, 또는 장애는 평생 가지고 가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개선은 가능하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바로 환경 재설계를 하는 것이다. ASD의 모든 특징을 억누르라고 마스킹을 강요하는 것은 적절한 개선의 방식이 아니다. 여기서 ABA나 CBT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데, 물론 이것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도 있지만 실제로 해외의 많은 ASD는 ABA와 CBT의 부작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ABA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ABA는 아이들에게 ASD적 특성을 누르고 뉴로티피컬 아동들과 같이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이 주 목적이며 CBT는 인지행동치료로서 ASD 특유의 내면의 사고패턴을 바꿀 것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특히 ABA는 잘 행해질 경우 자해 등 행동을 막고 건강한 대처 기술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스티밍이나 ASD의 자극 추구 행동이나 몰입 등을 멈추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에 맞춰 행동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곳도 많다. 이것은 아이들이 가면을 일찍부터 쓰게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나중에는 중장기 트라우마로 이어지기도 한다.
CBT의 경우 NT 내담자에게 효과가 좋지만 ASD의 경우 ASD 자체가 말 그대로 사고체계의 차이를 포괄하기 때문에 DBT나 EMDR 등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해외 커뮤니티나 기사 등을 통해 실제로 ASD들이 ABA와 CBT나 Talk Therapy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자료를 참고하면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실제 목소리를 꼭 들어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래서 ASD에게 필요한 것은 행동 교정이나 인지 교정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수용적 테라피가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감정 표현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과 자극을 안전하게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주 동반되는 CPTSD의 경우 EMDR 등을 통해 트라우마와 그로 인한 영향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신경다양성 긍정 테라피스트들에 대한 수요가 높고, 실제로 ASD나 AuDHD를 가진 치료사들이 ND 내담자들을 돕고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ASD를 신경전형 아동들처럼 같은 교육과정, 같은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맞는 환경을 설계해 주어야 한다. 마스킹을 벗는 Unmaking Autism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사회적 프레임에 맞추지 않고, 그들에게 사회성을 억지로 강요하지도 않고, ASD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은 신체적, 정신적 웰빙이 최우선이라는 의미이다. 필자의 관심사도 이 부분인데, 앞으로 신경다양성을 억제하거나 고치는 질병이 아니라 ND, ASD의 웰빙을 가장 우선시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SD는 순수하게 ASD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동반질환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우울, 불안, CPTSD이다. 특히 진단이 늦어질수록 동반질환이 더 많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거부당하고 조직에 속하지 못하고 오해받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거절민감성(RSD)이 높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아직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ASD는 매우 다양한 학습장애와 공존하기도 한다. 단순히 지적장애만이 아니라 난독증, 난산증(계산 장애), 난서증(서예 장애), 운동실조증 등 매우 다양한 것들과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 모두 신경다양성의 범주에 속한다.
특히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AuDHD로서 ASD와 ADHD의 동반 여부이다. 물론 이마저도 아직 동반 진단이 원활하지는 않다. 아직도 ADHD는 눈에 띄는 과잉행동 위주로 진단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AuDHD는 ASD, ADHD만 있을 때와 달리 마치 제 3의 질환처럼 나타나는데, 서로가 서로를 마스킹해서 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리고 둘의 상충되는 특성이 공존하여 어려움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니 ASD보다 감각 민감이나 반복 행동이 적은 것 같지만 ASD의 핵심적 어려움을 갖고 있고, ADHD보다 과잉행동이나 충동성이 낮은 것 같지만 실행기능이나 일상 과업 수행에서 무너질 때 AuDHD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매우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로서 핵심만 언급하였다.
그리고 최근 영국에서는 ASD의 하위 유형 중 하나로 PDA(Pathological Demand Avoidance, or Persistent Drive for Autonomy) 자폐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하위유형이라 생각하는데, 병적인 요구 회피, 또는 지속적인 자율성에 대한 요구로서 자폐의 진단 기준 중 B2의 항목과도 연결되어 있다. 즉 타인의 요구나 외적인 압박에 따르지 못하고 자신의 의사대로 해야만 행동이 가능한 것인데, 이 또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령 식사나 위생 관리마저도 의무처럼 느껴져서 고통받기도 하고,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외부에서 정한 스케줄이나 직장생활 등에 적응이 매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생각보다 이 PDA Autism이 많다고 생각되어 이 개념도 한국에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어떤가? ASD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다. 그러니 우리가 아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ASD를 보지 말고 Neurodiversity의 관점에서 ASD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줄이고 그들이 자신의 모습대로 웰빙을 위해 노력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수용과 지원이 필요하다.
-> ASD의 DSM 진단 기준을 질적으로 해석하는 법에 대한 글로 이어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