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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 Jul 14. 2021

수줍소녀의 호주 한달살기

#2. 인사 하나에 벌벌 떨다

  호주에 온지 이틀차. 두 눈꺼풀이 N극과 S극인양 자동으로 떨어졌다. 8시간은 물론 10시간을 자도 아침에 눈뜨는게 힘겨웠던 나였지만 공기가 좋아선지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몸이 가벼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금방 씻고 나와 어학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청정육이 다양한 나라답게 아침을 소고기로 시작했다. 한국에서 귀한 소고기가 이곳에선 싸게 유통되기에 사다둔 이유도 있었다.


  걸어가는 동안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달랬다. 마치 중학생때 새로운 반에 처음 가야하는 날 같았다. 설렘 반, 긴장 반. 양념 반 후라이드 반도 아니고 왜이리 떨었나 싶다. 클라스 문에 다다른 순간, 몰래 숨어 투명한 유리창 너머를 바라봤다. 중국인 학생들과 선생님 뿐이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무슨 말을 하면서 들어가지? Hello? 안녕하세요? 심각한 수줍음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복도를 오고가는 학생들 눈치가 보여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Good morning."

"아! 안녕하세요."

  

  책에 열중하고 있던 선생님이 건넨말에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한국에서 하던 습관이 나와버렸다.나도 모르게  교장선생님께 하듯 꾸벅-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까지 덤으로. 그리 덥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까이 있던 중국인 학생들이 웃었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겠다. 그후로도 난 한동안 허리를 굽히며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라는 말은 더이상 하지 않았지만 인사만은 고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인사는 중요한 예의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는 인사부터 제대로 하라고 가르쳤고 그건 자신의 첫인상이 된다. 그렇게 교육받은 나는 항상 인사에 신경썼다. 힘을 주었고 어른을 만나면 바짝 긴장해 예의를 갖추려고 애썼다. 그런 내게 'Good morning' 이라는 짧고 가벼운 인사를 하라니. 그것도 어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양 친구들을 따라 막상 입밖으로 꺼내보자니 왠지 모를 무서움이 앞섰다. 내가 한국 사회에 너무 억눌려 살았던 것일까. 항상 나이가 우선시되던 사회를 보고 자란 탓일까. 선생님과 친숙하게 거리낌없이 지내는 서양 친구들을 보니 놀라웠다.

 

  선생님에게 "Hey, Jason."하며 아무 장벽없이 얘기하는 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놀라움 보다는 부러움이었다. 이곳이 학교가 아닌, 학원임을 감안하고 봐도 그들은 선생과 학생보다는 친구처럼 보였다. 권위로 찍어누르는 모습이 아닌, 그저 나이가 다른 친구. 우리나라에선 절대 현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문득 내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사견에 손을 들고 반대 의견을 낸 친구. 선생님의 시선은 곱지 않았고 순식간에 교실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 아이는 결국 말끝을 흐리며 그만두었고 선생님은 만족했단듯이 웃으며 계속 수업을 이어갔다. 그후, 그 수업에서는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고 일방적인 수업이 1년 내내 계속되었다.


   그저 단순한 인사 한마디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문화 차이였지만 그들의 자유로움과 여유가 부러웠다. 가지려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비록 일주일에 네번 가는 학원이었지만 매 아침마다 진득한 부러움을 겪어야했다.

 

  



  


  

  

  

호주 시드니대학교. 해리포터 호그와트의 영감대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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