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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 Aug 15. 2021

<엄지공주는 잊지 않아>-브런치X저작권위원회 공모전

안데르센 명작 동화 재해석-엄지공주 이야기

그리 덥지도, 그리 춥지도 않은 봄 저녁.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숲 속 한가운데, 한껏 신나는 파티의 장이 열렸다. 반딧불이를 조명 삼아 방아깨비들은 엉덩이로 드럼을 치고 풀들은 박혔던 뿌리를 드러내고 요란하게 춤을 춘다. 무당벌레는 개미들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꿀벌은 신상 꿀 홍보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댔다.  점박이 야광 버섯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불쑥 건넨 엄지공주의 한마디에 두꺼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 부부가 날 보기 시작했어.”


“헤엑. 그 말은 이제 네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두껍.”


개미상인에게서 둥지에 쓸 재료들을 고르던 제비가 날갯짓을 하며 이들에게 날아와 앉았다. 5월이 끝나가는 마당에 아주 잘됐어. 제비와 두꺼비가 눈빛을 교환한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끝났어. 농부의 밭에서 훔쳐온 노란 옥수수를 갉아먹던 들쥐와, 배춧잎으로 날개를 꾸미던 배추흰나비도 다가와 축하를 건넨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엄지공주는 기뻐하는 이들을 그저 멍한 얼굴로 바라만 보는 것이었다.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부부가 있었다. 마법사는  그런 부부를 바라보며 그저 빙긋 웃었다. 마법사의 정원에는 요정보다 작은 존재들이 각자가 담당한 씨앗을  매일 아침마다 닦아주고 추울때면 안아주고 품어주었다. 그러면 마법사가 하나의 씨앗을 골라 아기를 원하는 부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음음, 이번엔 엄지공주가 좋겠구나.”

 

마법사는 엄지공주가 돌보는 튤립 씨앗을 부부에게 건네주며 엄지공주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인간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부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엄지공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부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씨앗을 돌보았다.


부부의 사랑 속에서 튤립이 꽃을 피우자 엄지공주는 바깥으로 외출을 했다. 제비는 엄지공주를 등 위에 태우고 하늘에 대해 알려주었다. 항상 동경하던 구름이 포근함은 커녕 아무런 실체없이 하얗기만 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두꺼비는 엄지공주를 데리고 물가에 빠뜨리곤 했다. 흠뻑 젖은 엄지공주에게 물에 젖는게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나비 역시 엄지공주에게 틈만나면 꽃향기를 일러주었다. 그러면 엄지공주의 두 뺨은 발갛게 상기되곤 했다.


엄지공주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태양의 따스함과 바람의 시원함 모두 좋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원했다. 하지만 마음 한켠이 자꾸 그늘지는건 왜일까.


“대체 뭐가 문제야, 찍찍.”


흥겨운 분위기 속 풀이 죽어 있는 엄지공주가 신경쓰인 들쥐는 엄지공주를 살폈다. 네가 성공적으로 인간이 되어야 우리 숲도 활기를 띈단 말이야.


“우울한 이유를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찍찍.”


“..난 인간이 되고 싶기도 하고, 되고 싶지 않기도 해.”


세상에. 방금 저 얘기 들었어? 낮은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뗀 엄지공주의 말에 축제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번에도 우리 숲은 실패인가봐.”


지지배배. 제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부리 쪽 붉은색이 도깨비불 마냥 어지러이 춤을 춘다.


“난 저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단 말이야.”


엄지공주는 두꺼비의 등에 난 큰 흉터를 가리켰다. 하천 옆 길가에 산책을 나간 것이 화근인 흉터였다. 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 두꺼비는 피를 뚝뚝 흘렸다. 걸음마다 개미가 몰려들 정도였다. 생각보다 크게 난 상처였지만 풀들이 밤새도록 감싸준 덕에 피가 멎을 수 있었다.


“인간이 되면 너희들을 다 잊기 때문에 나도 너희들을 아프게 할지 모르잖아. 그게 싫어.”


부러졌던 제비의 다리, 한쪽 다리를 잃은 풍뎅이, 꼬리를 잘릴뻔한 들쥐까지. 엄지공주의 시선이 차례대로 닿았다.


 “내가 너희를 기억할 수 있다면 난 돌을 던지는 인간이 되지 않을거야.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을거고, 난 너희들을 품어줄거야.”


이 말을 들은 숲의 존재들은 기뻐하며 노래를 시작했고 엄지공주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공원에서 네 발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있다. 아이는 저만치 숲 속에서 무언가 폴짝 뛰어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로 뛰어갔다. 두꺼비 한마리가 아이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엄지공주, 잘 지냈어? 두껍.”


두꺼비와 잠시 눈을 맞추던 아이는 이내 두꺼비의 등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는 두꺼비의 상처를 바라보며 한참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아이는 작은 손을 뻗어 두꺼비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두꺼비야, 아프지마.”


엄지공주의 따스한 손길을 느낀 두꺼비는 환한 미소를 지었고 어느새 제비 한마리가 엄지공주의 머리 위로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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