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마음으로 20년 전 고교 동창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모 재벌의 사모님이 된 친구의 초대형식으로 그 친구네 호텔에 있는 꽤 괜찮은 식당에서의 점심식사. 만나는 친구들의 격(?)에 맞추어 나름대로의 성장을 하고 예의상 10분
전에 도착하였다. 시내 교통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손에 든 짐들을 핑계 삼아 그래도 차는 끌고 갔다.
발레파킹을 할까 직접 주차를 할까 잠시 갈등하면서. 하지만 그 갈등하는 순간 내 차는 이미 발레파킹을 할 수 없는 호텔 뒤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차선을 타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무슨 새삼스레 발레파킹이야? 평소 하던 대로 해야지 뭐....‘ “누구의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을까? ”멈칫하며 혼잣말하고 있는 순간, 호텔 직원이
“혹시 *** 고문님 예약 손님 이신가요?
”아~~~, 네”
‘아 그 친구의 공식 직함이 고문이구나. 사모님이 아니구나.’
약속 시간이 되자 모두들 모여 대화가 시작되었다. 대학 학장님, 연예인, 대기업의 고문, 그리고 고등학교 선생인 나. 만남을 추진하면서 절대 내가 밥값을 낼 일은 없겠다는 안도의 마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아니야, 나도 나 나름대로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는데~ ’라고 위로하였다.
식사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펼쳐진 수다 한마당. 근데 신기한 것은 가히 교육 공화국이라 할 만큼 교육열이 과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느 모임에서나 빠질 수 없는 주제인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어느 학원, 어느 과외 선생이 좋다더라 등등의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서로 서로에게 다 읽힌 것 같았다. 그 이야기는 이미 물 건너갔다. 대부분의 모임에서는 현직에 있는 나에게 많은 질문과 자문이랍시고 여러 가지 일들을 묻곤 해 곤혹스럽기까지 한데 이건 웬 걸 고마울 따름이지.
미혼의 여자, 이미 아이들 모두가 외국의 유수 대학에 유학 가 있는 학부형, 고3 학부형, 뒤늦게 늦둥이 아들을 둔 여자가 모두 여고 동창생들인 것이다. 친구들이 모여서 정말 우리 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이고 보니 또 다른 즐거움과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대화가 무르익어 갈수록
“피부 관리는 어디서 받니?”
“운동은 어디서 하니?”
“** 파이가 정말 맛있더라”
“머리는 어디서 하니?”
그런데 분명 그들이 쓰는 언어는 한국말과 영어를 간간이 쓰고 있는데 그중 내가 알아듣는 고유명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 나도 마리프랑스 등등은 들어서 알고는 있는 아주 무지렁이 촌놈은 아닌데 도대체 이건 서울 생활에서의 얘긴지 미국 땅 어느 곳에서의 체류 경험을 나누는 건지... 미스터 김, 미스 최가 아니라 토마스 선생 그 사람 괜찮더라.... 이런 식이었다. 존칭을 없애는 것이 서로 간의 격의를 없애고 가까워질 수 있는 히딩크식의 인적 관리 시스템이라는 누군가의 명쾌한 설명. 그래 그렇기도 하겠다. 어쨌든 그때는 김씨 박씨가 아니라 토마스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래 저 친구들 학교 다닐 때 공부 무지 잘했어. 대학도 엄청 잘 가고, 실력껏 능력껏 누리고 사는 거야. 그게 정당한 거지. 뭐. 왜 그리 생기기도 잘 생기고 분위기는 얼마나 우아하고 단아하던지. 거기다 인품까지. 친구끼리의 대화 속에서도 재벌가의 사모님, 대학 교수님의 분위기 등등으로 제각각의 면모가 풍겨 나왔다. 친구의 권유로 교회를 다닌다는 재벌집 사모님은 “그 친구가 자신을 위해 너무 열심히 기도를 해주어서 안 다닐수가 없다고”하였다. “너를 위한 기도가 뭔데?” 물을래다 주춤하였다.
‘아니야, 기도 제목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조금씩 모양만 다르다 뿐이겠지.’
다음 날 점심 직장 동료들과의 점심 식사 시간. 어제 모임은 즐거웠냐는 호기심 어린 질문에 “난 그대들이 있어서 행복해”라니까, 옆에 있던 동료가 “무슨 소리야?”라고 물었다. 아무 얘기나 해도 다 알아듣고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그대들. **설렁탕집이 국물이 진하고 고소하더라. 평소에는 우리의 표현을 빌자면 백화점에 누워있는 또는 기절한 옷만 사입다가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정도 백화점에 걸려있는 옷 한 벌 사고 뿌듯해하는 우리들.
며칠 전에 부슬부슬 비가 오고 있는 토요일 오후, 절친한 친구와 카페에 앉아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우리 학교에는 **선생도 있어야 돼. 우리 학교에는 @@선생도 있어야 돼.”
“그래 맞아!! 맞아!!!”
오늘의 결론은 칭찬합시다. 칭찬 릴레이 한번 해볼까?
“그대들이 있어서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