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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샘 Aug 15. 2023

눈물의 생(일)파(티)


언젠가 파를 손질해서 냉동고에 보관하기 위해 많은 양의 파를 다듬는데 파가 너무 메워서 눈물을 흘리면서 흑흑거렸다. 그때 작은 놈이 스키 탈 때 쓰는 고글을 가지고 나와서 고글 쓰고 하면 괜찮을 거라면서 건네주어 반신반의 눈물 반, 웃음 반으로 고글을 쓰고 일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 우수꽝스러운 장면이 사진으로도 남아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한동안 우리 집 주방에는 고글이 서랍에 주방도구로 자리 잡고 있었다.

며칠 전 큰 아이의 생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1년 12달이 늘 생일 같은, 나름은 행복한 나날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가족들의 생일을 크게 챙겼던 거 같지 않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고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심은 속상했던 일이 있었다. 수개월 전에 나의 생일 때의 일이다. 우리 가족은 내 생일 날짜를 매우 헷갈려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친정 부모님들이 사용했던 유물로 나는 결혼 전까지는 음력 생일을 지내고 살아왔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에서는 남편의 생일을 비롯하여 양력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헷갈리는 해마다 바뀌는 날짜, 점점 내 생일 하나 챙겨 받기도 어려워질 것 같았다. 그래, 이참에 나도 양력 생일로 바꿔 보자. 적어도 잊지는 않겠지. 

오 마이 갓!!! 내가 태어난 해의 양력 생일을 찾아보니 나는 내 양력 생일날 결혼을 했네!!! 이 무슨 운명의 장난???

‘4’와 ‘13’

죽을 “4”자와 13일의 금요일의 “13”, 동서양에서 골고루 기피하는 숫자끼리의 조합!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으니 그것도 다 부질없는 이야기!


음력으로 하자니 매년 헷갈리고, 양력으로 하자니 결혼기념일과 겹치고, 하기야 겹치면 뭐하나 싶지만 우왕좌왕하다 보니 우리 가족 모두가 내 생일은 여전히 헷갈려 한다. 남편은 4월은 모두 엄마 생일이라고 멋지게 선포했지만, ‘all’은 ‘nothing’과 비슷한 개념이 아닌지.

게다가 이번 해에는 코로나로 어수선하여 여행도 못 가는 분위기였고, 이렇게 내 생일은 생일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게 흘러가버렸다. 딸과 둘이만 오붓하게 호텔에서 조금 우아한 호캉스를 즐겼을 뿐.


그런데.

며칠 전, 우리 딸의 생일. 우리 딸이 스스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4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 코로나19가 2.5단계로 갑자기 격상되면서 분위기가 밖에서 외식하기에는 너무나 조심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리 가족 모두는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관계로 늘 조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스스로 마련한 자리라 예약을 취소하기가 좀 미안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이 분위기를 딸도 어쩔 수 없어서인지 예약을 취소했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 잘했다. 맘 편하게 집에서 먹자. 근데 뭘 먹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퇴근길에 일식집에서 회와 소라 무침, 매운탕 거리를 사가지고 갔다. 이걸로라도 저녁 상을 차려주어야지. 싱싱한 회와 맛깔스러운 소라 무침이 매우 좋았다. 거기에 시원한 지리 매운탕이 또 일품이었고. 여기에 곁들인 와인 한잔씩으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이때 아들놈이 자기 방에 들어갔다 오더니 선물을 가지고 나왔다. 케이크도 없고 분위기상 전혀 선물은 기대하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선물에 우리 모두는 잠시 당황하였다. 더구나 선물은 거금 32만 원짜리 이어폰. 내가 “누나 이거 있잖아?” 하니까 업그레이드된 모델이라나? 대학생인, 그것도 자기보다 8살이나 어려서 아직도 자기 눈에는 아기처럼 느껴질 텐데 그런 동생이 이런 거금의 선물을 사 온 것에 대해서 누나는 너무나 놀라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게다가 편지도 썼다고. 군대 이후에 첨 써보는 편지이고, 편지를 쓰면서 자기도 울었다고. 무슨 내용이길래? 남매간에만 공유되는 감정의 나눔인가? 성장한 후에는 어버이날에도 편지가 가뭄이더구먼.

이어서 짜잔. 누나도 자기 방에 들어갔다오더니 엄마 아빠에게 봉투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핑크, 블루 예쁜 봉투를. “그동안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면서 ‘오메나, 이런 감동! 본인의 생일에 부모님께 이렇게 감사의 금일봉을 전달하는 우리 딸! 정말 잘 컸구나. 잘 커줘서 고맙다.’

이 순간 나는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생각났다. 직장 나가는 나를 대신해서 우리 아이들을 지극정성 사랑으로 키워주신 할아버지 덕에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 컸구나 생각하면서. 우리 네 식구는 모두 모두 웃고 울면서 저녁을 마쳤다.

눈물의 생일파티의 밤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내 인생에서 생파로 인한 눈물은 이렇게 두 번의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한 번은 진짜 파로 인해 흘린 눈물이고, 또 한 번은 생일파티로 인한 감동의 눈물이고. 요즘 아이들은 줄임말을 좋아한다. 생일파티는 생파로. 세상에 이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세상적인 부귀영화 그 어느 것보다도 값진 우리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웠다.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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