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샘 Sep 05. 2023

FLEX

  핸드폰과 노트북을 구입할 때마다 경험하는 일이 있었다. 핸드폰을 권해주는 직원분들의 눈에는 나는 그저 동네 아줌마,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아줌마. 그분들께 나는 교사이고, 가끔은 외부 강의를 한다는 얘기를 안 한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닌듯하여 말하기가 꺼려진다. 그러니 그분들의 판매방식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분들은 나에게는 최신 버전의 상품을 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상은 쓰시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말과 함께 새로운 기능을 가진 모델을 권해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도 그 순간은 가성비를 생각하면서 그저 그런 상품을 사곤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에 비해서 ‘얼리 어댑터’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40여 년 전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 그 강사님의 한마디, “결코 기계는 망가지지 않으니까 무조건 해보라고”. 이 말만을 생각하면서 겁 없이 컴의 세계에 빠져들어갔다. 1990년에 대학원 논문을 쓸 때도 컴퓨터를 이용하여, 그때는 장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쓰면서 작업을 했었다. 지금의 문서 작업 프로그램과 비교하면 너무나 부족한 프로그램이라서 원하나 그리는데도 매우 어려웠었던 기억이 있다.

  

  올해는 나에게 독특한 금전 운을 경험하게 만든 한 해였다.  60 평생 안 하던 짓을 하여 연초에 1000만 원 가량을 날리더니, 후반기에는 생각지도 않던 이유로 500만 원 정도의 공돈 아닌 공돈을 갖게 되었다. 물론 원래부터 내 돈이었던. 근데 잊고 살았던 돈.

오랫동안 고민했다. 무엇을 할까? 정말 우스갯소리로 단돈 100만 원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농담 아닌 농담이 생각났다. 한 번 크게 질러볼까? 차를 바꿀까? 오래된 TV를 교체할까? 반지? 시계? 

돈 쓸 이유는 충분했다. 생일도 있고, 결혼기념일도 있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주는 상이라 해도 되고 등등. 그러나 모두 맘이 크게 내키질 않았다. 그거 사서 뭐해? 안 끼고 다닐 거고, 못 끼고 다닐 거고, 차는 아직 탈 만하고, TV도 볼 만하고.


  얼마 전부터 나는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나에게 숨겨져 있던 작은 취미를 찾아냈다. 글 쓰기와 글씨 쓰기. 캘.리.그.라.피.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평생 써 온 나의 글씨체를 버리고 새로운 글씨를 쓴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이렇게 써도 저렇게 써도 늘 그 글씨체. 그래도 재미있었다.

중학교때 어느 미술 선생님의 열정으로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하여, 대학교때도 지금의 자하문 언덕의 서방에 가서 붓글씨를 배웠던 기억이 있다. 생활기록부에 나의 특기, 취미를 적는 란에 나는 아마도 서예를 적었던 거 같다.

전한 자기만족!

글씨 못쓰는 사람이 연장 탓한다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난 집 근처 화방에 가서 이런저런 도구를 사 오는 것을 매우 즐거웠다. 학창 시절 써 본 붓과 펜, 그 외에도 다양한 도구들을 하나 둘 아낌없이 사재 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글로 쓰고 있다. 나의 38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서서히 마감하면서 내 얘기를 글로 정리하고픈 맘이 들었다. 선배 선생님의 권유를 받아 자신감을 얻어 하나 둘 쓰기 시작했다. 


  글샘. 글 쓰고,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선생님.

내가 지은 이름이다. 

나에게는 몇 년 전에 나의 존경하는 은사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아호가 있다. 소향, 추월.

나의 과거와 현재를 너무나 잘 아시는 50년 전 은사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 감사함이야 하늘 끝, 땅 끝까지 머리를 조아려도 부족할 정도의 사랑이시지만, 최근에 내가 지은 ‘글샘’ 또한 너무나 귀한 이름인 것 같아 자족한다. 선생님 죄송해요. 그동안 또 욕심이 생겨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게 되었네요. 이제 글과 글씨와 그림을 엮어 저만의 책을 하나 엮으려 해요. 

선생님 용서해주세요.

그래서 난,  ‘플렉스’했다. flex. 


나이 60에 환갑을 지나서 애들 말대로 난 앱둥이가 되었다. 평생을 한글과 윈도 버전으로만 작업하고 글을 써왔던 내가 새로운 운영체계에 과감히 도전했다. 20년 전에 내가 책을 한 권 출판했을 때도 난 여전히 ‘한글과 컴퓨터’로 책을 썼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익숙한 한글 프로그램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

사실은 원격 수업을 하면서 칠판에 판서하듯이 밑줄 긋고, 동그라미 강조 표시하고  등등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서, 좀 멋진 원격 수업을 하기 위해서 난 과감히 flex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 어디서든지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질렀다. 물론 차보다, TV보다 그 어느 귀금속 보다도 작은 돈을 썼지만 난 너무 뿌듯했다. 나만의 노트북도 아니고 노트북보다 작은 아. 이. 패. 드. 

미안하다 삼성아, 엘지야, 나마저 사과 모양을 가지게 되어서.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걸 나라고 못할쏘냐? 더 늦기 전에 난 작은 도전을 하기로 하였다. 물론 지금도 난 헤맨다. 마치 부시맨이 콜라병을 들고 이것이 무엇인고하듯이. 운영체계가 다른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하지만 열심히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서 캘리그래피 작업을 배우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우고 있는 나를 보면 아마 나도 디지털 문맹은 아닌듯하다.  디지털캘리라른 분야도 재미있는 거 같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앞으로의 시간들이 나 스로도 기대된다. 글도 쓰고, 글씨도 쓰고, 가끔은 그림도 그리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나의 모습은 매우 멋지다. 하지만 나의 실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이것이 그저 여러 잡기 중에 몇몇이라는 걸 잘 안다. 그저 시간 보내는 나의 소일거리 정도라는 것을.

그치만 난 행복하다.

행복할 거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에게 빚진 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