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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ilo Aug 07. 2020

Tú, solo tú

오직 너만이...

 습관처럼 자주 내뱉는 말, only


 머릿속에 이 단어가 떠오를 때면 그것이 이미 내 인생의 진실이, 다짐이 되어버린 순간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내겐 오직 그것뿐이고, 내겐 오직 그 사람뿐인, 영원하지 않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게 전부인 양 나의 모든 것을 걸어 보기로 했던 때가 있었다. 때로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때로는 내 마음이 변해서, 때로는 더 이상 갈 곳 없는 답답한 마음에, 때로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이 단어의 의미를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소망만 품고 살아갈 뿐이었다.

 촛불 하나가 다른 초 하나를 켜고, 그 초가 또 다른 초를 켜다 보면 하나로 시작되어 수 천, 수 만개의 초가 밝혀지듯 촛불 하나가 되고 싶은 때가 있었다.


 중남미 지역에서, 내가 일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 작은 촛불 하나가 직장 동료들을, 기업을, 그 지역 사회를, 그 국가를, 중남미 전체에 밝은 초를 밝힐 수 있을 것이란 기대 하나로 오직 언어적인 소통만을 붙들고 전공을 선택했던 때가 있었다. 졸업 후 멕시코에서 일하며 1년도 채 되지 않아 산산이 부서지고 짓밟혀 녹초가 된 자신을 발견했을 땐 이미 한 차례 only라는 단어의 의미를 거짓으로 만든 뒤였다. 그래도 다른 길을 찾기에 늦진 않았다고 생각했다. 회사-집 외에 아무런 외부 활동도, 새로운 사람도 사귀지 못한 채 일만 하며 나 홀로 그 외로움을 감당하고 있을 때까진 그랬다.

 외로움이 사람의 판단력을 참 흐리게 한다는 것도 나에게 먼저 다가온 이에게 온갖 이유를 만들어 상대의 장점을 찾고 거기에 내 감정을 주입하며 시작했던 연애의 온도가 식을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외로워서 시작된 관계에 only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이별 뒤 내 주변인에게까지 돌아온 상대의 악의적인 행동들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생각했다.

 어느덧 내 사전에 only는 있을 수 없다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둔 채, 시간 가는대로 내 삶을 방치했던 내게 찾아온


너란 존재는,
꺼진 촛불이지만 내 안에 다시 타오를
심지가 남아 있음을 깨닫게 했다.


 이제야 널 만난 것에 지나간 나의 34년 시간이 너무도 아까웠다. 그렇지만 아깝지 않다. 돌고 돌아, 길 잃고 방황하며 보낸 세월이 너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된 지금은 그 세월이 아깝지 않다. 나무 없는 산에 나무를 심듯 내게 꿈을 심어준 너에게 화답하기 위해, 나는 새싹이 되어 자란다. 빨리 자라라고 보채지 않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보며 돌봐주는 너를 위해 나는 무던히도 꿈틀대고 있다. 언젠가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너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줄 것을, 너만을 위한 쉼터가 될 것을 약속한다.

only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의 부족한 의지와 나의 진실된 마음의 부재가 만들어 낸 허상이었다.




오직 너만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나의 천사인 것을,
오직 너만이
내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낼 보물인 것을,
오직 너만이
내가 가장 깊은 어둠이 되어
내 안에서 가장 밝은 존재로 빛나게 될
빛인 것을,
오직 너만이
나를 꿈꾸게 하고 자라게 하는 희망인 것을, 오직 너만이
이 세상에 아름다운 향기를 가득하게 할
꽃인 것을,
오직 너만이 내 전부인 것을,

오직 너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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