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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Jul 11. 2021

나 탐구생활의 시작은 샐러드드레싱이었다

미국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영어도 환경도 외로움도 아니었다. 그 당시 나의 영어 수준은 원어민 5살 아이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하루 이틀 지나며 눈치껏 익힐 수 있었다.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과 몸짓만으로도 살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그것은 샐러드드레싱을 선택하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갔다. 영어가 안 통하면 음식 사진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웨이트리스가 메뉴판을 가지고 오면 그때부터 오지 선다형 아니 주관식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출제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 하나만 주문하면 그만이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돈가스, 자장면 등 메뉴 중 하나만 고르면 나머지는 주방에서 알아서 해 준다. 더 묻고 대답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은 달랐다. 먹고 싶은 메인 메뉴를 선택하면 그때부터 수없이 많은 질문이 차례로 쏟아진다. 음료는 뭘로 할지, 샐러드로 할지 수프로 할지, 사이드 메뉴는 무엇으로 할지 하나도 빠짐없이 질문을 던진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샐러드를 선택했다면 드레싱을 골라야 한다. 웨이트리스는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7~8가지 되는 드레싱 이름을 읊어댄다. 낯선 이름의 드레싱 중에서 친숙한 이름(허니 머스터드나 사우전드 아일랜드)이 들리면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하고 있다가 웨이트리스의 안내가 끝나기가 무섭게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그 뒤로도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해야만 비로소 음식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이 과정이 익숙하지 않았을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냥 알아서 주면 안 되나?' 30년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는 그것이 익숙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는 데로, 식당에서 주는 데로 먹는 게 편했다. 내 취향이나 입맛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미국에 살면서 마주한 선택의 순간은 그야말로 수능시험보다 더 어려웠다. 제발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그냥 알아서 해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었다. 이런 나와는 반대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친구나 동료들은 이런 과정이 너무나 익숙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의 취향과 입맛을 정확하게 알고 원하는 것을 주문했다. 때로는 까다로워 보이는 요구사항도 매너 있게 말하며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한 끼를 맛있게 즐기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이 모습이 그 당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나는 나의 입맛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를 수도 있다는 의문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주입식 교육 방식이다. 선생님이 알려주는 지식과 정보를 학생은 받아 적고 외워야 한다. 이해가 안 되고 잘 몰라도 선생님께 질문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질문해줬으면 좋겠지만 다들 마찬가지다. 50명 정도 되는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웬만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나는 이해를 못했지만 친구들은 다 아는 것 같기도 했다. 괜히 손들고 질문을 했다간 멍청한 아이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이해한 척 몰라도 아는 척하며 넘어가기로 한다. 튀는 것보다 묻혀가는 게 더 현명한 선택 같았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고,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예외는 없었다. 유별나 보이지 않아야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김치찌개를 시키면 나 역시 김치찌개로 통일하는 것이 마땅했다. 남들이 원하는 게 다수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인 줄로 알았다. 이러한 생각에 균열을 만든 것이 나이 서른이 되어 건너 간 미국에서 샐러드드레싱을 고를 때였다는게 우스웠다. 한편으로는 그런 내가 안되어 보이기도 했다.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남들이 만들어주는 데로 떠먹기만 한 것 같았다. 거기에 내 취향은 배제되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단 한 번도 내 취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거나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저 남들이 하라는 데로 했고 묻혀가는 삶을 선택해 왔기에 내 입맛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사소한 사건이었지만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과 같은 파동을 만들었고, 그때부터 나를 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뒤로 레스토랑에 가면 우선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무엇이 내 입맛에 맞는 드레싱인지 모르니 한 두 개도 아닌 그것을 맛을 봐야 했다. 신맛보다는 달콤한 맛을 조금 더 좋아했고, 꾸덕한 드레싱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산뜻한 드레싱을 더 선호했다. 그렇게 나는 내 입맛을 발견했고, 누군가가 알아서 만들어주던 음식을 받아먹는 사람에서 나의 취향을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 시작은 우습게도 샐러드드레싱을 선택하는 것이었지만, 그 뒤로도 나를 알기 위한 노력과 질문은 계속되었다. 


나를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경험하며 한 가지를 깨달은 것이 있다. 삶은 정답이 정해진 객관식이나 주관식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은 허니 머스터드를 주문했지만 내일은 렌치나 블루치즈가 먹고 싶을 수도 있다. 늘 먹던 드레싱이 아닌 다른 맛을 주문했다고 해서 틀린 답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내가 선택한 것을 맛있게 먹는 것이 전부다. 설령 잘 못 선택을 했다고 해서 짜증 내거나 화를 낼 이유도 없다. 내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을 알아낸 것으로도 충분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르고, 내일의 나도 다를 수 있다. 우리는 그저 그때그때의 자신을 발견하며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오늘 발견한 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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