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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Aug 02. 2021

내가 그렇게 답답한가요?

운전경력 20년 차, 지금까지 큰 사고 없이 대한민국과 미국 도로를 누볐다. 

노란색 택시들이 미친 듯이 도로를 달리는 미국 맨해튼에서도 기죽지 않고 운전을 했던 나였다. 그런데 1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차 없는 상태로 3년 가까이 지내니 운전하는 것이 살짝 두려워졌다.

길을 걷다 듣게 되는 클랙슨 소리는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잘못한 것 같이 움츠러들게 했다.


그런 내가 최근에 운전할 일이 생겨 렌트를 했다. TV광고에서 본 쏘카 앱을 깔고 예약을 했다. 집 앞에 렌터카를 갖다 놓고 가는 획기적인 이 시스템이 놀라웠다. 차키는 어떻게 받는지 궁금했는데, 이것 또한 앱을 통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다. 정말 놀랍고도 편리했다. 


휴대전화 하나로 자동차도 빌리고 문도 열 수 있는 세상에 놀라워하며 운전대에 앉았다. 내 차도 아니고 하루 대여한 차라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살짝 긴장되었다. 오랜만의 운전이 낯설고 겁이 났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콩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동을 걸고 기어를 드라이브에 놓았다. 휴일 낮이라 도로는 한산했다. 오랜만의 운전에 집중하느라 음악도 틀지 않고 내비게이션을 1초마다 한 번씩 살피며 운전대를 꽉 잡았다. 마치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도로주행을 나온 것만 같았다. 주행 속도와 신호를 잘 지키며 20년 차 아니 3년 차 장롱면허 소지자임을 명심하며 안전하게 운전했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 구불구불한 도로가 나왔다. 초행길이고 좁은 길이라 속도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뒤에 붙은 차가 없어 안심을 하며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대형 SUV 차량 한 대가 경적을 울려댔다. 

'빵빵 빵빵'

속도를 내지 않는 나를 향해 한 번 더 요란하게 경적을 울렸다. 규정 속도가 30km인데 나는 20km로 달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초행길이라 그래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뱉으며 말했다. 나의 미안함이 뒤에 차에 전달되지 않았는지 뒤차는 나를 잽싸게 앞질러 구불구불한 길을 순식간에 달려갔다. 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그 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 뒷유리에 '운전 오늘부터 1일'이라고 써 붙일 걸 그랬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무사히 넘겼으나 두 번째 고비가 또 찾아왔다. 약속이 있었던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나오는 길이 1차로였는데 무슨 일인지 반대편 차량이 도로 중앙을 살짝 걸친 채 멈춰 있었다.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차량을 보다 못한 한 운전자가 차에 내려서 안내를 하고 있었다. 내 차가 멈춰 선 차 옆을 지나는데 아무리 봐도 차량 좌우로 여유 공간이 없어 보였다. 렌터카를 긁히고 싶지도 않았고, 남의 차도 긁고 싶지 않아서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이런 내가 답답했는지 차를 세워둔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공간 충분하니까 그냥 빨리 가세요. 아유 답답해."라고 신경질을 냈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 나빴을 말이었지만 나는 되려 웃음이 나왔다. 20년 차 베테랑 드라이버의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이 그저 재미있었다. 


무슨 일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차를 세워둔 채 꼼짝 않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을 거다. 주말에 친구와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부리려고 나온 길에 사고가 나서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 거기에 느릿느릿 운전하는 낯선 운전자에게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는 그 사람 심정도 오죽했을까. 아무튼 여유가 있다는 말을 믿고 나는 그 카오스 상태의 도로를 탈출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그 사람의 성격을 대충 파악하게 된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운전대만 잡으면 카레이싱 선수처럼 돌변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런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탈 때면 나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안전띠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평소 안 잡는 손잡이까지 꼭 붙들게 된다. 내가 운전하지도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하면 피곤함을 느낀다. 


운전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데 목적이 있지 운전 솜씨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하나뿐인 생명을 담보로 위험천만한 곡예를 넘는 건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어마 무시한 과속 위험 경고 문구는 괜한 과장이 절대 아니다.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게 한 두 분의 운전자에게는 심심한 사과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닮고 싶지는 않다. 운전은 소중한 나의 생명과 다른 이들의 생명이 직결된 일이기에 조심 또 조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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