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설 Jul 28. 2020

오락영화 <반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작가영화로서의 질문은 배제한, 오락영화로서의 실패에 대하여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아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 <반도>에 대해서는 대중적인 평가가 끝난 듯합니다. 2년 반 전 <염력>이 그랬듯, <부산행>의 뒤를 잇기 힘든 졸작이라는 평이 대체적이죠. 왜 '오락영화'로서의 <반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영화는 어떤 부분에서 성취도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그 성취가, 올해의 또다른 실패작인 <사냥의 시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어요(저로서는 <반도>가 <사냥의 시간>보다 좋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반도>라는 오락영화에 대해 왜 동의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는 <반도>에 다양한 방면에서 이야기해볼거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오락영화로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무가치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는 게 옳다고 믿으며, 또한 <반도>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도록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들은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지금까지 세 편의 장편 애니메이션과 세 편의 장편 실사영화를 연출했는데, 저한테는 각각의 카테고리에 녹아있는 연상호라는 예술가가 거의 분열적으로까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저는 연상호 감독의 웹툰이나 그래픽 노블, 드라마는 모두 보지 못했습니다). 정말 거칠게 비교하자면, 애니메이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절망으로 범벅이 돼있는 반면 실사영화에는 어떻게든 희망을 붙잡고자 하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설령 그것이 신파로 과용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희망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데, 근본적으로 절망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희망을 놓지 않으려 애쓸 수도 있겠지요. 이는 가족관계, 특히나 부모-자식 관계의 변화에서 잘 드러납니다(이를 '부녀 관계'로만 단순화시킬 수는 없지만, 저로서 부녀 관계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폭력적이거나 뒤틀려있거나 <돼지의 왕>에서처럼 아예 소거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부산행>과 <염력>에서 부녀 관계는 극의 드라마에 있어 핵심이며, <반도>에서도 가족관계는 마지막에 이르러 거의 유일한 희망으로 묘사됩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연상호 감독이 상업영화 씬으로 쑥 들어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사영화에서 연상호 감독이 보여주려는 희망이 그의 진심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절망이 애니메이션에서와 달리 상황적 배경으로만 제시되고 인물들이 거기서 결국 벗어나는 서사적 구조는, 그러한 결말을 원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판단의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이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이야기를 굳이 길게 한 이유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반도>는 오락영화의 범주에 속할 운명을 타고났고 따라서 우리는 오락영화로서의 <반도>에 대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산행>이 좀비를 배경으로 한 재난영화에 속했다면, <반도>의 장르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이 영화가 오락적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지점은 폐허가 되어버린 한국의 모습과 그 안에서 미쳐버린 인간들의 군상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카체이스 액션입니다. 범죄영화처럼 시작했던 초반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의미해지고, 곳곳에서 총격전은 관성적으로만 제시됩니다.


좋았던 부분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정석의 매형이 '숨바꼭질'에 처음 내던져지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옥도에 직접 뛰어든 듯한 느낌을 주는 촬영도 물론 좋았지만, 그 설정 자체가 영화의 토대와 잘 맞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이 잔인한 것은 맨몸으로 내몰린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공포 때문이기도, 이 게임을 만든 것이 인간들이며 그 120초가 적잖은 사람들에게 유희가 된다는 역설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제가 가장 오싹하게 느꼈던 부분은 '오늘 120초를 견디는 데에 성공했다면, 내일 또 120초를 맞이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이 영화에서 한반도에 갇힌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심정일 겁니다. 그 밑바탕에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자리합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는 미쳐버렸고, 누군가는 자살하려 하며, 누군가는 가족 안에서 평화를 찾습니다. 여기서 누가 결국 한반도를 탈출하느냐가 이 영화의 결론이겠죠.


'좀비를 배경으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했을 때 방점은 당연히도 후자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좀비'가 오락영화적인 매력을 자아내는 데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모르겠어요, 차로 쓸어버림으로써 학살을 하는 광경이 오락적인 매력이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매력이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가 액션을 구사할 때 좀비는 정말 학살당하는 대상으로서만, 그리고 간간이 악당들을 해치우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만 활용됩니다. 저는 사실 좀비가 무섭지도 않았고, 좀비 떼가 주인공들을 덮치는 장면에서 딱히 긴장감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이건 캐릭터 설정과도 무관하지 않을 텐데, 뒤에서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나마 좀비를 흥미롭게 활용한 부분이라면 앞서 말한 '숨바꼭질' 설정과, 황 중사가 탄 차를 좀비를 이용해 공격하는 장면 정도가 아닐까요. 저한테는 <반도>가 '좀비를 배경으로 했지만 꼭 좀비일 필요는 없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카체이스 액션은 어땠을까요. <반도>의 카체이스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고 각 부분의 분량도 상당히 큽니다. 하나는 준이가 정석을 구출하는 전반부의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인물들이 인천항으로 향하는 클라이맥스입니다. 이미 모두가 지적했듯이 전자는 <베이비 드라이버> 같고(지하차도로 숨어들어 시동을 끄는 부분에서는 <드라이브>의 오프닝이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후자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같죠. 저는 이 액션씬들이 연상시키는 다른 영화들의 느낌에 대해서는 딱히 불만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장면들은 오락영화로서 관객들에게 재미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반도>를 지루하게 보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연출적인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반도>의 전체적인 톤이 불균질하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어 정석을 포함한 네 사람이 트럭을 찾기 위해 텅 빈 도로를 헤매는 장면과 이어지는 준이의 카체이스 사이의 톤이라든가, 또는 숨바꼭질-서 대위와 김 이병의 음모-정석과 민정의 가족 세 가지 플롯이 교차되는 중반부 지점에서 각 플롯 간의 톤은 서로 잘 연결되지 않고 어색합니다. 그리고 저는 특히 첫 번째 카체이스의 톤 변화가 거슬렸습니다. 준이와 유진이 나오는 장면들의 톤은 기본적으로 발랄한데 저는 그게 이 영화에 독이 됐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만, 비단 그뿐만 아니라 첫 번째 카체이스는 영화의 전체적인 지향점과 뚝 떨어진 채 오로지 유희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만 놓고 보면 괜찮을지도 모릅니다. 난데없는 구원자의 등장이라는 모티브도 흥미를 잡아끌기 충분하고, 액션도 시종 속도감을 잃지 않습니다. 이 난폭한 운전을 해내는 사람이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라는 점도 신선한데 그 옆에 앉은 꼬마아이가 좀비 떼를 유인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죠. 두 사람의 대화도 톡톡 튑니다(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요소들은 가만히 보면 그냥 이 장면을 위해 마련된 흥미유발 요인으로만 보이고, 영화가 이전까지 견지해왔던 혹은 이후 나아갈 지점에 걸맞은 톤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듯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이 불균질함은 어떤 영화들에서처럼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이 장면만을 위해 고려한 것들이 만들어낸 단점입니다.

클라이맥스의 카체이스에서 제가 가장 아쉽게 느끼는 부분은 리듬과 디테일입니다. 이 장면은 (재보지는 않았습니다만) 20분가량 이어지는데, 주인공들은 인천항으로 향하고 631부대원들은 이들을 쫓으면서 공격한다는 큰 그림만 있지 그 20분을 유기적으로 잇는 액션의 스토리라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쫓아오는 차나 좀비 떼에 정신이 팔려있다가 앞에 장애물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간신히 핸들을 돌리는 (그리고 악당은 떨구어지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하는데, 이는 즉각적으로 끼워 넣은 장면이지 액션의 드라마가 차곡차곡 쌓여서 도달한 폭발점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긴 장면을 볼 때, 사실 눈과 귀에 계속 자극이 오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지만, 긴장감이나 카타르시스가 딱히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액션의 스토리라인이 없다는 것은 큰 줄기를 빼곡히 채울 잔가지나 잎들이 부족했다는 의미겠지요. 이는 액션의 디테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들이 어디까지 나아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좀비 떼나 군인들이 쫓아오고 있는지, 각 차량들의 특색은 어떻고 이를 어떻게 이용해서 상대방을 공격하는지, 차와 차가 맞부딪힐 때 한쪽은 어떻게 공격하려고 하고 다른 쪽은 어떻게 피하려고 하는지 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저 질주와 충돌과 총격만 이어집니다. 리듬과 별개로 이렇게 디테일이 부족한 액션씬은,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장면 자체에 몰입해서 재미를 느끼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해봅시다. 이 영화는 캐릭터들이 아주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개성 있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참 이상한 위치를 차지한 정석 캐릭터도 (앙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극의 주제와 부합하는 드라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캐릭터들이 기능적으로'만' 사용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나 가."라고 하자마자 총을 입에 집어넣으면서 등장하는 서 대위 캐릭터는 정말 인상적인데(어떻게 보면 참 뻔한 캐릭터이지만 구교환 배우의 톤이 전에 없던 느낌의 인물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인물의 최후는 그전에 너무 빤하게 예상되기도 하고, 서 대위에 대한 이상한 연민과 통쾌함, 주인공들에 대한 안도감 등 딱 그 정도의 감정만을 관객에게 쥐어주는 느낌이라 얄팍하기도 합니다.

민정, 준이, 유진, 사단장이 함께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이들이 이상한 형태의 '가족'으로 엮였다는 느낌만을 전달할 뿐, 인물들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그 잡담들을 통해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지도 못합니다. 황 중사가 느닷없이 소대장실에 찾아오는 바람에 탈출 작전이 발각될까 긴장하게 만드는 장면도, 황 중사를 그냥 그 자리에 갖다 놓기만 하고 정작 서스펜스는 그 인물이 아니라 책상 위에 놓인 위성전화로만 만들어내기 때문에 작위적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황 중사 혼자 요상하게 '착각'을 하고 나가버리니까 긴장감은 단발적으로 사그라들고, 서 대위와 김 이병은 장면 내내 그 자리에 들어차 있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죠.


가장 문제가 되는 캐릭터는 정석입니다. 이 영화가 강동원 배우를 사용하는 방식은 (각각 2018년의 졸작과 괴작이었던) <골든슬럼버>와 <인랑>을 떠올리게 하는데, 특히나 더 유사한 건 <인랑>입니다. <인랑>과 <반도>에서 강동원 배우가 맡은 인물들에게는 캐릭터성보다 살상무기/액션기계로서의 특성이 더 강하게 부과되어 있습니다. 중반부에 정석이 하는 일이라고는 민정과 아이들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과 매형을 631부대에서 빼내기 위해 군인들과 한바탕 사투를 벌이는 것으로 축약할 수 있는데, 전자에서는 주체가 아니고 후자에서는 (액션기계이지)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석은 정석이 아니라 강동원 배우로 보입니다.

<반도>는 정석이 전직 군인이었어야 할 필요성을 설득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전직 군인이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야 할 이유만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미쳐버린 인간들과 좀비 떼 모두로부터 스스로와 다른 캐릭터들을 지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액션의 쾌감을 극단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겠지요. 이 영화의 결말이 감동이 아닌 억지신파로 다가오는 이유는, 하나는 인물의 죽음, 슬로모션, 클로즈업 등 갖가지 요인들을 동원해 눈물을 짜내는 연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기계적으로 정석에게 부여된 드라마가 마지막 순간 감정적인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도>에서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교환 배우나 김민재 배우처럼 인상적인 경우도 있었고, 권해효 배우처럼 배우의 연기는 좋은데 장면 내에서 서걱거리는 경우도 있었고(이건 연출의 문제겠죠), 배우 자체가 거슬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도>의 결말부는 연출 측면에서 총체적 난국입니다. 서 대위와 홍콩 건달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장면도 굉장히 진부한데, 이어지는 UN군의 등장과 두 차례의 눈물바다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더군요.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하다."와 "우리가 살던 곳도 나쁘지 않았어요."라는 대사들도 거슬렸습니다. 전자는 메시지가 너무 돌출되어 있고 후자는 가족과 관련된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 영화가 토대한 다른 부분을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뜨악했습니다(이 부분은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단장이 죽을 때 민정, 준이, 유진의 울음을 각각 클로즈업하는 쇼트들이 (심지어 여러 차례 반복해서) 나열되는데 인물들이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싫지만 특히나 유진이 우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쇼트는 끔찍할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이어지는 민정의 희생 장면에서 편집과 연출은 의도적으로 그 짧은 순간을 연장하는데(실제로는 찰나에 불과했을 테지만 영화에서는 민정의 망설임, 두 아이의 오열, 정석의 회상과 결심을 모두 담느라 관객의 물리적 시간을 더 늘어뜨립니다) 그게 단순한 선택의 기로가 아니라 인물들의 탈출 여부가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점에서 관객을 한없이 답답하게 만들죠. 오죽하면 저는 '아, 됐고 죽을 거면 그냥 빨리 죽어라'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이 부분은 명백한 연출의 실패입니다. 정석이 민정을 구출해오는 전개도,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기는커녕 진부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저조차 이렇게 써놓고 보니 믿기가 힘든데, 이 영화에서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장면이 바로 이 결말부입니다. 이후 쓰게 될 글에서는 아마 이 부분과 <사냥의 시간>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반도>의 엔딩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을 비판 없이 넘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럴 때마다 영화를 별점으로 평가하는 게 부질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부분을 어떻게 정량적으로 단순화할 수 있겠어요. 다음 글에서는, 이 긴 싫증에도 불구하고 왜 <반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는지 한 번 이야기해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팡파레>, 이런 장르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