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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Dec 30. 2021

밥에도, 빵에도, 그냥도

칠리 or 칠리 콘 카르네 (Chili con carne)

칠리(chili) 혹은 칠리 콘 카르네 (chili con carne)는 내게 있어선 음식계의 사기 캐릭터 혹은 만능 아이템 같은 존재랄까나. 왜냐하면, 밥, 빵, 과자, 면, 죽, 튀김 등 어디에 곁들여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사실 칠리는 텍스멕스 (Tex-Mex)의 음식의 한 종류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멕시코풍 요리로 미국에서 사시사철 사랑받는 메뉴 중 하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다.


학교 시험도 끝나고 여타 다른 일정이 잡히지 않은, 완벽히도 쉬기 좋은 오후였다. 동생이랑 집에서 기분 좋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한동안 빈둥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뭘 하면서 보내야 잘 보냈다는 소문이 날까 하던 차에 동생 친구가 꼭 한번 가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핫도그 가게가 번뜩 생각이 났다.

"거기가 어디라고 그랬지?"

"어디??"

"아니 그 왜 너 친구가 꼭 가보라고 했던데"

잠시 머리를 손으로 꼬으며 생각하던 동생이 대답했다

"아아~ 거기? 근데 그 집은 언니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어. 좀 짜고 매워"

상당히 그리고 엄청나게 맵찔이인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대안이 떠오르질 않는다.

" 음...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뭐... 얼마나 맵고 짜겠어"

"과연..."


핫도그 집은 다행히도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어렵지 않게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푸드 트럭이었는데, 맛집이라 그런지 주문하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왠지 모를 기대감에 충만해져서는 메뉴판을 봐도 맛이 상상이 안 가서, 가게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기본 세트메뉴를, 동생은 먹어보고 싶었다던 치킨 메뉴를 시켰다. 밖에서 서서 먹기보다는 집에 가져와서 먹을 요량으로 포장을 해 왔는데, 집에 와서 투고 박스(to-go box)를 열어보니, 기다란 미국식 핫도그에, 보기만 했었지 먹어본 적 없는 칠리와 치즈가 듬뿍 얹어져 있었고, 옆칸에는 마치 한치의 배고픔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산더미처럼 쌓인 프렌치프라이가 담겨 있었다.


놀란 것도 잠시, 배가 고파져서는 일단 칠리가 얹어진 핫도그부터 입에 욱여넣었다. 첫맛은 나쁘지 않았는데, 씹을수록 소시지의 짠맛과, 칠리의 짠맛이  안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뒤늦게 칠리의 매운맛도 올라와 정신을  빼놨다. 시장이 반찬이기는 하지만 짠맛과 매운맛은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절반 안되게 먹고 남기고, 애꿎은 감자튀김과 콜라로 배를 채워야만 했다. 지금 와 보니 산더미처럼 쌓였던 감자튀김은 가게 주인의 선견지명이었던 셈이다.

"맛은 있는데 좀 많이 짜고 매워"

"거봐 언니 취향엔 안 맞을 거라고 했잖아" 라면서 히죽히죽 웃고 있는 동생이 괜스레 얄미워 보였다. 이때 이후로는 한동안 칠리는 지나다니다가 눈에 띄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아프고 나면 입맛이 변한다고 했었던가? 겨울에 장염으로 무척이나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삼 일간 아래위로 전부 게워내고 나서는 이온음료와 묽은 죽이나 수프를 먹으면서 서서히 몸을 회복해야만 했었다. 이틀 내내 묽은 음식들만 먹었더니 기운도 없는 데다, 입맛도 같이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루 종일 멍하니 침대에 나무늘보처럼 축 늘어져서는 아무 생각 없이 흘러나오는 티브이를 보고 있었는데, 쿠킹쇼가 나오기 시작했다. '베스트 클래식 홈 메이드 칠리' 뭐 이런 식의 타이틀 방송이었던 거 같았는데,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를 않아 채널을 돌리려고 리모컨을 찾아보니, 내 손과 발이 닿는 범위 내에 리모컨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책상 위에 리모컨이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 젠장...' 나의 소중한 귀찮음을 지키기 위해 채널 돌리기를 포기하고 하는 수 없이 티브이를 보기로 했다. 인심 좋게 생긴 아주머니께서 나와서 갖가지 요리 도구들과 향신료와 재료들로 뚝딱뚝딱 요리하더니, 예쁘게 생긴 그릇에 담아내는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보고 있었고 심지어는 칠리가 꽤 먹음직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이랬던가, 한동안 먹을 생각도 안 했던 칠리가 괜스레 당기기까지 했다.

베개 옆에 있는 핸드폰을 열어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혹시 오늘 저녁으로 칠리 안 먹을래?"

"뚱딴지 같이 웬 칠리? 그때 먹고 안 먹겠다며?"

"아니 티브이보다 보니 갑자기 먹고 싶어 져서"

"아프더니 별일이네, 알았어 학교 끝나고 마트 들러서 사 갈게"





:: 칠리 만들기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7k48E3Fdv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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