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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Dec 31. 2021

아빠가 좋아하는 맛이야

오이 맛살 샐러드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식사  먹을 메인 요리  가지와 식사 후에 먹을 디저트도 있는데 식탁을 채울만한 밑반찬이 없다거나 아니면 뭔가가 하나  있어야만   같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해 보이는 밥상이 마음에 걸릴 때가 있다. 그럴  머리를 재빨리 굴려 생각하다 그럴싸한 것이 떠올라 뭐라도 급하게 만들어내면 성공적인 날이지만, 이것저것 한참을 뒤져보면서 생각을  봐도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엔 뭔가 미션에 실패한 느낌이 드는 날이 있기도 하다.

 


   귀찮음이 극에 달한 날이었다. 배는 고파오는데 막상 뭔가를  먹자니 귀찮고, 배달음식을 시키자니 다들 취향이 달라서 메뉴를 고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딱히 뭔가 구미가 당기는 것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결국 엄마에게 물었다. "저녁 시간도 다가오는데  드시고 싶은 거나 저녁거리로 생각나는 거라도 있수?" 소파에 앉아서 열심히 드라마를 보시던 엄마도 생각하기가 귀찮으셨던 건지, 아니면 급작스런 질문에 드라마 몰입을 방해받아 짜증이 나신 건지 "글쎄 그냥 점심때 먹다 남은 카레나 마저 데워먹으면 되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그런가?" 괜스레 머쓱해져 옆구리를 긁으면서 방으로 들어가다 문득 아빠가 마음에 걸렸다. 요리를 귀찮아하시는 엄마 덕에 40년을 단련받으신 아빠는 싫어하는 닭요리나  음식들이 아니고서야 어떤 음식을 내놔도 딱히 뭐라고 내색은  하시고  드시는 편이지만, 너무 성의 없게 저녁상을 차려드리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발길을 부엌으로 다시 옮겨서 냉장고와 이제는 야채 보관함으로 변해버린 김치냉장고를 붙잡고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냉동 , 언제 넣었는지 모르는 말라비틀어져서 얼어버린 , 갖가지 , 어느 부위인지 모르겠는 고기들, 사놓고 잊어버린 생선들, 동생이 미용 때문에 잔뜩 시켜서 쌓아놓은 석류즙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괜히 열어보았다 싶은 생각이 냉동실 문을 얼른 닫아버렸다.  분명 장을 보긴 했는데 대체  사다 놓은 건지  수가 었다.  숨을 쉬며 냉장고를 열어보니 여기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평소에 자주 쓰는 것들만 앞쪽에 넣어서 찾아 쓰고, 나머지는 아무렇게나 대충 넣어  것들 천지였다. “와…이건 또 뭐야??” 계속 혼자 구시렁거리며 냉장고를 뒤지다 보니 엄마가 진즉 버리라고 했지만, 나중에 먹을 거라며 바득바득 우겨서 넣어 놓고 결국엔 잊어버려서 맛이  친구들과 조우하자, 구시렁거림을 멈추고 슬그머니 꺼내어 몰래 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대충 수박 겉핥기 식으로 냉장고 정리를 하면서 찾아낸 아이템들은, 오이 두 개, 수프 끓이고 남겨 둔 샐러리 두 대, 그리고 다이어트할 요량으로 출출할 때 과자 대신 하나씩  까서 먹으려고 사 두었던 게맛살 그리고 손질해 놓은 양파 1개.

이걸로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하다 재료들을 얇게 썰어서  곳에 넣고 마요네즈로 버무리면 그럴싸해 보일 듯싶었다.


    "뭐 하게?"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신경이 쓰이셨는지 티브이를 보시던 엄마가 물었다.

"냉장고 뒤져서 나온 거로 대충 버무려서 샐러드 만들게"

"그냥 있는 거 먹지 뭐하러 귀찮게 만들어"

"엄마 근데 며칠 전에 장 보지 않았었어? 근데 냉장고 안에 쓸만한 게 하나도 없어"

"몰라 네 아빠랑 장 보면 냉장고부터 비우고 사라고 하면서 못 사게 하니, 뭘 살 수가 있어야지"

"아까 보니까 냉동실도 마찬가지던데 반찬 할 만한 게 별로 없어 정리 좀 하세요 어무이"

"귀찮으니까 좀 해줭"

"드라마 마저 보세요..."


한동안  영양가 없는 엄마와의 티키타카를 하면서 손을 움직이다 보니 샐러드가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평소 마요네즈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라, 엄마가 보는 앞에서는 마요네즈를 조금만 넣었는데, 버무려 보니 왠지 모르게 퍼석퍼석해서 엄마가 드라마를 보러  사이 샐러드에 마요네즈를 듬뿍  넣었다. 아주 듬뿍 말이다.



   “이게  뷔페에서나 보던 샐러드냐?" 저녁상을 마주한 아빠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씀하셨다.

"누가 이런 걸 뷔페에서 먹어요 요새."

"아냐 뷔페에 가면 있지 없긴 왜 없어. 근데 여기엔 뭐뭐 들어갔어?"

"양파랑 오이랑 샐러리랑 맛살 그리고 마요네즈 조금요." 말하면서 조금 뜨끔 하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맛있으면 칼로리가 제로라 하지 않았던가!

"만드는 데 시간 엄청 걸렸겠네, 이거 다 일일이 썰고 하려면 오래 걸렸겠어"

"시간은 무슨, 맛있으면 또 만들어 드릴게요 많이 드세요"

만들기 전까지 귀찮아서 꿍싯거렸던 모습이 죄송스러워지기도 했고, 좋아하시는 모습에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다.

"너무 맛있네!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당신도 이거 한번 먹어봐요"

아빠는 드시고 맛있다고 생각하시는 음식은 주변에 막 덜어서 나눠주시는 조금은 알 수 없는(?) 습관을 가지고 계신데, 아버지의 저런 모습을 보니 아버지 입맛에 진짜 잘 맞나 보다.

"근데 아빠 아빠도 맛살 좋아하셨어요?

"나? 일할 때 출출하면 한 두 개씩 꺼내먹으려고 사무실 냉장고에 사다 놨지"

"아......"

나는 아빠 딸이 맞기는 맞나 보다.

"생각보다 맛이 아주 괜찮군!  해줘 언니!"  등을  치며 엄마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있다가 조용히 엄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 오이 맛살 만들기 보러가기::

https://m.youtube.com/watch?v=qZt8_4RJr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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