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얼마 전에는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데려가 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며 데려가 준 곳인데, 직접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카페였어요.
카페에는 특이하고 비싸 보이는 기계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한대에 400만 원 정도라는데, 핸드드립을 하는 머신이었습니다. 궁금해서 네이버에 핸드드립머신이라고 검색하니 꽤 많은 머신들이 ‘자동 핸드드립머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더라고요. 실제 손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핸드’ 드립머신이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아는 핸드드립 커피와 동일한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 핸드드립 맛이 나는 커피가 나옵니다. 이 커피는 ‘핸드드립 맛이 나는 머신드립커피’ 정도로 부를 수 있을까요.
친구랑 둘이 다른 원두를 시켜서 마셔봤는데, 둘 다 맛이 괜찮았어요. 쓰지도 않고 향도 좋더라고요. 핸드드립은 손으로 하기에 오차가 생길 수 있는 확률이 높지만 기계로 내리면 그런 확률은 줄고 여러 잔을 내려도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장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대에 400만 원이면 비싸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바리스타 한 명의 한 달 인건비가 200만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2달 월급으로 적어도 몇 년정도는 커피를 균일하고 빠르게 내려주는 머신이 가성비가 더 좋을 수 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요즘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은 2천만 원은 훌쩍 넘어가는데 오히려 싸게 느껴질 정도였죠.
그런데 계속 커피를 마실수록 기계가 내렸다는 것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핸드드립이 아메리카노보다 비싼 이유는 좋은 원두와 필터, 드립퍼, 그라인더 등 여러 부자재를 추가로 사용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이 직접 원두를 갈고, 내리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할 수 없기에 그 사람의 인건비까지 측정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아메리카노는 샷 버튼을 누르고 얼음을 담을 수 있지만, 핸드드립은 마지막 커피가 내려오는 순간까지 잘 보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기계를 쓰면 핸드드립도 에스프레소처럼 버튼만 누르면 나오고, 그동안 다른 커피를 계속해서 준비할 수 있죠.
항상 핸드드립커피가 비싸긴 했어도 저마다 개성 있는 사장님들이 내려주는 커피에 돈을 쓰는 게 아까운 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요즘도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손 편지를 자주 쓰죠. 아마 손으로 눌러썼다는 감동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글씨체가 동일하지는 못해도 감동은 카톡 몇 마디보다 훨씬 크죠. 사장님들이 손으로 내려주는 커피는 정말 감동란 그 잡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기계로 내린 핸드드립을 마시고 있자니 기계로 쓴 손 편지를 읽는 거 같았습니다.
제가 핸드드립은 처음 마신 곳은 바 형식의 카페였습니다. 사장님이 원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고 향을 맡게 해 준 뒤 내리는 과정을 보여주셨죠. 아마 대학교 2학년 때였나 그 당시에 제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커피에서 이런 맛도 나는구나. 향긋한 향도 있고, 신맛과 단맛도 나는구나. 그 경험은 제가 카페와 커피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커피 맛만큼이나 제가 카페 사장님과 커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소통을 했다는 경험이 그 커피 맛을 기억하게 더욱 도와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렇게 첫 경험을 해서 그런지 기계로 내린 드립커피는 영 제게는 다가오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건 취향의 차이기도 하면서 생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기계로 내린 커피가 더 맛이 있을 수 있기도 하고, 올 때마다 같은 맛을 느끼고 싶은 손님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 점심시간에 몰리는 손님들에게 양질의 핸드드립 커피를 빠른 회전율로 제공할 수도 있죠.
요즘 넷플릭스에서 핫한 흑백요리사를 보는데, 각자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요리하는 각자의 모습이 너무 인상 깊고 재미있어 1화를 본 날 공개된 에피소드를 전부 다 시청해 버렸습니다. 제가 맛을 볼 수 도 없는 음식이지만, 그 음식을 만들기까지 그들이 고민하는 과정과 노력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심사위원들이 느끼는 표정과 평가까지 빼놓을 수 있는 게 하나 없이 정말 잘 만든 프로그램이었어요. 한 가지의 요리가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를 잘 그려냈다고 느껴졌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리사들은 미션을 위해 요리를 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드느라, 팀과 함께 협력하느라, 한 가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느라 힘이 들고 지치기도 하지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줄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모카세의 삶은 평범한 국수를 한 가정을 책임진 효자음식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음식보다는 각 사람의 이야기와 과정이 조명되고 그것이 음식을 더 빛나게 해 주었죠. 만약 AI 로봇이 100대가 나와 음식으로 경연을 했다면 이렇게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을까요. 사람과 요리대결을 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타이트한 안성재 셰프는 그 손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이-븐한 야채의 익힘 정도를 기계가 맞출 수 있는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전 커피와 사진과 옷을 좋아하는데, 앞으로도 이 세 가지는 사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요즘 뭐 AI가 사람을 대체한다 어쩐다 하는데, 사람다운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요즘 졸연 준비하는 후배들이 있는데 실수할까 불안해하지 말고 자신들이 연습한 대로 연주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요. 또 세무사를 준비하는 친구 놈이 있는데 이놈은 실수 없이 기계처럼 공부해 얼른 붙어서 AI가 대체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일을 잘 해냈으면 좋겠습니다. 힘 안나도 밥심으로 힘내세요 들.
아, 그리고 저는 졸업 후 1년 정도 고향인 강화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이런저런 재미있는 걸 많이 해보려고 해요. 카페도 바로 옆인데요, 마늘대신 커피랑 책을 좀 먹으며 사람처럼 살기 위해 애써보려 합니다. 다들 놀러 오시면 커피는 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