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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27. 2021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진실
타인의 해석 / 말콤 글래드웰
2015년 미국에서 샌드라 블랜드라고 하는 한 젊은 여성이 교통경찰에게 잡혀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브라이언 엔시니아라는 이름의 경찰관은 깜박이를 켜지 않았다는 이유로 블랜드의 차를 세웠고 딱지를 끊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블랜드를 체포했다. 사흘 뒤 샌드라 블랜드는 유치장에서 자살을 했다.
샌드라는 왜 경찰과 말싸움을 벌이게 되었을까? 그 말싸움이 샌드라를 체포할만큼 심각한 것이었을까? 샌드라는 유치장에서 자살을 해야 할만큼 숨기고 있는 중대한 범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사건은 2018년 HBO의 다큐멘터리로 까지 제작될 정도로 많은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이 사건이 인종차별적인 경찰과 화가 난 시민 사이의 갈등으로 축소되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훨씬 더 복잡한 인간의 한계와 사회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법정에서 피의자의 보석금을 정해야 할 때, 판사는 문서의 내용 뿐만 아니라 실제 피의자의 얼굴을 보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그들의 경험 상, 얼굴을 보고 판단을 할 때 더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판례들을 모아 인공지능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피의자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컴퓨터가 보석을 허락한 피의자의 경우 재판 기간 중 재범율이 '인간 판사'가 직접 얼굴을 보고 판단한 보석 사례보다 25%나 낮았다. 사건 기록만 의지한 것이 아니라 직접 피의자의 얼굴표정과 말하는 것까지 확인한, 그것도 사회에서 가장 전문가 집단이라고 하는 판사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결과를 보였다는 말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정치인과 법조인 같은 전문가들마저도 낯선 사람을 만나서 얻는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가설을 갖게 된다. 글래드웰은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우리 인간이 보이는 본능 혹은 사회적 습성의 사례들을 연구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샌드라 블랜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글래드웰은 인간이 낯선 사람을 만날 때 보이는 세 가지 오류를 정리했다. 첫 째, 타인이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진실 기본값 이론이며 둘 째, 감정과 태도가 일치해야 한다고 믿는 투명성에 대한 환상, 세 째는 낯선 사람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류이다.
1. 진실 기본값 이론
진실 기본값 이론은 팀 러바인의 심리 실험을 통해 밝혀낸 이론으로 인간은 타인의 말을 진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은 진실을 맟출 확률은 자연적인 확률(다시말해 그냥 찍는 것)보다 잘 하지만 거짓말을 알아챌 확률은 자연적인 확률보다 형편없이 못한다는 의미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진실이라는 믿음의 기본값을 넘어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려면 충분한 의심, 즉 계기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에 관한 의심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진실 기본값 이론과 관련하여 책에서는 미 국방정보부의 유명한 스파이였던 '쿠바의 여왕 사건'이 소개되었다.
미 국방정보부 내에서 쿠바의 여왕이라고 불릴만큼 유능했던 애나 몬테스가 2001년 쿠바의 이중 스파이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국 정보기관을 경악하게 만들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사실 몬테스에 대해 의심을 하게 만들었던 징후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국방정보부의 간부들은 5년 전에 몬테스를 의심하고 조사를 했지만 의심만 하는데서 그치고 말았다. 조직내에서 인정받는 몬테스가 스파이일 수 있다라고 의심하는 것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런 믿음을 넘어서기 위한 '충분한' 의심이 쌓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의심을 갖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미시건주립대학의 의사 래리 나사르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미국체조협회 여자 국가대표팀의 전담 의사였는데 새벽에도 전화를 걸면 달려올 정도로 성실했고 실제 실력도 좋아서 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나사르의 전문 분야는 '골반저근육 기능장애'라는 증상이었는데 그의 치료 방법은 손가락을 환자의 질에 집어넣어 위축된 근육과 힘줄을 마사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환자의 동의도 받지 않았고, 장갑도 끼지 않았으며 굳이 필요가 없을 때도 그런 치료를 시행했다. 환자의 가슴을 마사지하거나 특별한 이유없이 항문에도 손가락을 넣었다. 의학적 치료를 핑계로 자신의 성욕을 충족시킨 것이었다. 결국 2017년에 유죄 판결을 받고 평생을 교도소에서 지낼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치료를 받은 환자들과 진료실에서 바로 옆에 있었던 부모들은 애초에 나사르에게 가졌던 믿음, 즉 진실의 기본값을 넘어서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심지어 재판이 진행된 초기에 많은 환자들이 나사르를 지지하기도 했다. 동료 의사들은 환자들이 일부러 의사들을 곤란하게 만들기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사르의 컴퓨터에서 수 만 장의 아동 포르노 사진이 발견되고 같은 일을 겪었다는 환자들의 증언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나사르를 지지했던 환자들도 하나 둘씩 돌아서기 시작했다.
"당신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걸 그만두기로 선택했어요. 내게 상처를 줬다고 말하기로 선택했어요.
더 이상 믿지 못할 때까지 언제나 당신을 믿었다는 걸 오늘 제 눈을 보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성추행을 당한 나사르의 환자 중 한 명의 말이었다.
2. 투명성에 대한 환상
사람들은 인간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든 얼굴에 드러나며 얼굴 표정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개인에 따라 감정과 얼굴표정이 일치하는 '투명성'이 보장된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문화, 지리적으로 다른 환경에서는 우리가 흔히 화난 표정, 슬픈 표정 혹은 기쁜 표정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전혀 다른 감정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사람의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믿음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보석을 결정해야 하는 판사의 경우도, 굳이 피의자의 얼굴을 보려고 하는 이유가 이와 같은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사건 문서만으로 판단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보였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글래드웰은 투명성의 환상과 관련된 사례로 '아만다 녹스의 룸메이트 살해사건'을 소개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끔찍한 편견으로 가득찬 사례로 생각되는 것인데 사건 조사 당시 DNA 결과도 형편 없었고 아만다가 친구를 살해했다는 물리적 증거도 전혀 없었음에도 그녀가 친구의 죽음에 슬픈 기색이 없이 남자들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죽은 친구에 대해 냉정하게 말했다는 이유로 경찰과 검사와 법원은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녀는 무죄가 밝혀지기까지 교도소에서 4년을 보내야 했다.
사람들은 "아만다는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Foxy KNox라고 불렀고,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은 녹스가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들의 명단을 찾아 기사를 내기까지 했다.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조사 기간에 용의자가 보이는 심리 반응과 행동 반응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식으로 유죄를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조사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어요."
아만다의 죄는 친구가 살해당한 상황에 '슬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은 죄'였다.
"메러디스가 살행된 방에는 내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내 눈동자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당신들은 나를 바라봅니다. 왜죠? 이건 내 눈이에요. 내 눈은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에요."
3. 결합의 파괴: 우리는 낯선 사람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일을 할 때 한 가지 방법 외에 그것을 대체할 대안이 있는 경우 그것을 대치(displacement)라고 한다. 그러나 애초의 방법이 인과관계 또는 특정한 상황과 맥락에 결합(coupled)되어 있을 때는 다른 방법으로 대치하기 어렵다.
자살의 경우, 자살의 방법은 대치가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특정한 자살의 방법이 그 상황과 맥락에 결합되어 있는 것일까?
60년대 영국의 도시가스는 일산화탄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일산화탄소는 치명적이면서도 들이마셨을 때 고통이 없고 신체가 일그러지지 않으며 집안이 지저분해 질 일도 없었다. 그 당시 연간 2천명 이상이 도시가스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전체 자살의 40%가 넘는 비중이었다. 70년대 일산화탄소가 포함되지 않은 천연가스로 교체가 되기 시작하자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자살 자체가 불가능해지자 도시가스로 인한 자살 건수만큼 전체 자살 건수가 줄어들었다. 즉,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는 방법이 사라지자 그만큼의 자살 시도는 다른 방법으로 전환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금문교의 사례도 이와 유사하다. 1937년 개통이래 1500여명이 이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다리에서 투신한 사람들 중 미수에 그친 515명을 조사한 결과 이 중 25명만 방식을 바꾸어 다시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사람들은 특정 순간에 특정 장소(금문교)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살은 그 상황과 맥락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지자체 관리 당국은 자살 방지 구조물을 금문교에 설치했는데 그것은 다리 개통 후 80년도 더 지난 2018년이 되어서였다. 사람들은 우리의 어떤 행동이 어떤 장소와 그렇게 밀접하게 결합(coupled)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봐야 돈만 들고 다리 외관만 흉해집니다. 자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한 방법을 막아봤자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면 그만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들 "죽을 사람은 어떻게든 죽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
4. 결론
글래드웰은 처음 언급했던 2015년의 샌드라 블랜드 사건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정리한다.
경찰인 엔시니아는 진실 기본값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걸 의심하는 것을 본인의 업무에 적용했다. 모든 걸 의심해서 많은 차량을 검문하는 것은 성과주의로 변질되어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엔시니아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투명성의 믿음을 지나치게 확신했다. 판사들처럼 본인도 범죄자들과 거짓말을 하는 운전자들을 행동과 말투를 통해서 가려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확신 하에, 샌드라 차의 뒤로 바짝 따라 붙어 차선을 변경하도록 만들고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꿨다는 이유로 차를 멈춰 세웠다. 이 와중에 그는 권위주의와 인종차별, 상황통제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샌드라를 몰아붙였다.
"범죄자는 범죄자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글래드웰은 이 문제는 경찰관 엔시니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모든 사람을 의심하라고 하는 잘못된 훈련 매뉴얼을 누군가가 만들었고, 범죄율과 특정 지역의 결합관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범죄율이 낮은 도로에서 심한 검문을 실시하게 만들었다. 엔시니아가 속한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운전자의 목소리 톤과 행동으로 범죄의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글래드웰은 이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낯선 이를 해독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제와 겸손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감수를 맡은 김경일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라고 했지만 내 생각에는 타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라는 사실에 다가갈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표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