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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16. 2021

평균은 폭력이다 (2)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평균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나의 생각은 먼저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이제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책 <평균의 종말>은 사람들이 평균이라는 개념에 갖고 있는 오류에 대해 산업화와 교육 현장의 많은 사례와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우선, 평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고도의 산업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표준화'라는 개념에서도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는 20세기에 큰 영향을 미친 평균 주의자들 중 한 명으로 공장에서 노동력 낭비를 없애기 위해 '표준화'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과거에는 인간이 최우선이었다면 미래에는 시스템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스템에 잘 맞는 평균적 인간을 고용하고 모든 업무를 표준화해서 오류를 최소화하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한때 창의적인 장인으로 추앙받던 근로자들은 기계부속부품으로 전락했고, 노동자들을 감독하고 프로세스를 표준화하는 '관리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테일러 주의는 미국 자본주의와 동일시되었고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하여 많은 나라에서 받아들여졌다.


"우리의 조직에서는 인간의 창의력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창의력도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키는 대로 명령에 순종하고 시키면 바로바로 행동에 옮기는 태도입니다."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


지금 들으면 경악을 금치 못할 말이지만 창의력과 혁신을 강조하는 21세기 기업과 학교,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이런 사상의 기반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프레더릭 테일러의 거침없는 표현이 오히려 솔직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교육계에서도 테일러 주의자들은 학교도 테일러의 원칙에 따라 특출한 재능을 길러주려 애쓸 것이 아니라 평균적 학생을 위한 표준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계의 거물이었던 손다이크는 학교의 목표가 모든 학생을 똑같은 수준으로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타고난 재능 수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바꿔 말하면 교육은 학생의 실력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하게 우월한 두뇌를 타고난 학생들과 열등한 두뇌를 타고난 학생들을 구분하는 것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 개개인의 특성은 평균값을 기준으로 오류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개개인을 재능, 지능, 인성, 성격 같은 가장 중시되는 인간 자질에 따라 단 하나의 점수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재능을 포함한 인간의 중요한 특성은 거의 모두가 다차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극도로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그 데이터들이 들쭉날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의 시스템은 재능을 표준화된 시험상의 점수나 등급, 업무 실적 순위 같은 단 하나의 평균값으로 전락시키려고 한다.


커텔 교수는 콜롬비아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년간 실험을 실시했는데 IQ,  소리에 대한 반응시간, 색깔 이름 대기, 10초 내 판단력, 연속으로 기억할 수 있는 글자 수 등을 살펴보았으나 이들 각각의 능력 사이에 상호 연관성은 거의 없다는 걸 알아냈다.


 IGN이라고 하는 비디오 게임을 비롯한 매스컴 사업을 하는 업체가 있었다. 보통 최고의 인재들은 크고 유명한 회사에만 지원을 하기 때문에 작은 회사인 IGN은 좋은 인재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최고의 인재를 구하는 방법은 구글보다 더 많은 급여를 제시하거나 애초에 재능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꾸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직접 인재를 찾아 육성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2011년 Code-Foo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력서를 배제한 프로그래밍 인재 찾기 프로젝트를 실시하게 되는데, 학력과 경력을 철저히 무시하고 어떤 자세로 업무에 일할 것인지, 그리고 프로그래밍 능력(현재의 능력과 성장 가능성)은 어떤지에 대해서만 살펴보고 채용을 하였고, 결국 학력과 경력은 업무 성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한 기업도 있는데 인도 최대의 IT기업인 Zoho Corporation의 CEO 스리드하르 벰부는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놓친 인재'를 찾기 위해 유명하지 않은 학교 출신 혹은 아예 학교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을 채용하면서 IGN과 마찬가지로 학력과 실무 수행력 사이에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깨달음을 더 발전시켜 벰부는 2005년 조호대학교를 설립하고 인도의 최 빈곤 지역 출신의 학생들을 선발하여 돈을 주면서 학교를 다니게 했다. 이 학교는 평균주의를 철저히 거부하고 거의 모든 교육을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하며 학생들이 자율적 학습 속도에 따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성적의 등급은 없으며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만을 주었다. 그리고 졸업 후 일자리를 제안은 하지만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처음 학생 6명, 교수 1명으로 시작해서 2014년 현재 학생 100명과 교수 7명까지 규모가 확대되었고 조호의 엔지니어 15%는 조호대학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심리학계에서 우리의 성격은 인간 특성의 본질인가라는 논쟁을 오랫동안 해왔다. 예를 들어 인성검사는 각 개인의 성격적 특성을 유형화하는데, 이런 검사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어떤 사람의 성격에 대한 본질을 규정하고 있는 특성을 알면 그 사람의 '진짜' 정체성을 꿰뚫을 수 있다는 우리의 뿌리 깊은 확신을 만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본질주의적 사고라고 한다. 


이런 본질주의적 사고 역시 그룹의 평균적 행동을 예측하려는 시도일 뿐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하지는 못하는데 그것은 맥락의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격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서 살펴보면 어떤 아이는 또래 아이들에게 공격적인 반면 다른 아이는 어른과 있을 때 공격적인 경우가 있다. 이것은 그 아이가 특정 상황, 특정 맥락에서 공격적인 기질이 더 많이 발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아이가 모든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자주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성실성, 자비심, 협동심, 억제력, 끈기 등과 같은 덕목 또한 개인의 본질을 규정하는 일반적인 특성이 아니다. "그 친구는 성실하지 않아."라든지 "우리 애는 끈기가 없어."라는 말은 맥락을 살펴보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미 40년 전에 실행되었던 마시멜로 실험에서 3~5세 연령 아이들에게 15분을 참고 기다리면 마시멜로 1개를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한 후 관찰을 하는데, 높은 자제력을 보인 아이들이 이후에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학업 성취도도 높았다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완벽한 인과관계의 오류다!)


이 실험 때문에 이후 아동심리학자들은 부모들이 자녀의 자제력을 높이는 데 활용할 만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애썼고, 교육가들은 학교 내에서 새로운 인성교육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학자들은 매스컴에서 참을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즉, 자제력은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월터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의 핵심은 아이들이 상황의 맥락에 따라 자제력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실험 상황을 좀 바꾸어서 어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먼저 경험하게 한 후 실험에 참가하게 하면 이 그룹의 아이들은 절반 이상이 1분도 지나지 않아 마시멜로를 먹어버리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의 고등교육 시스템은 1세기 전에 설계된 것으로 단지 학습 수행력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등급을 나누고 분류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한 것으로 마치 '노르마' 닮은꼴 찾기와 유사한데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이 공부하되 더 뛰어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평균보다 더 잘하려고 애쓰지만 모든 사람이 평균을 넘는 것은 평균의 정의에서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즉, 평균보다 성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인 것이다.


저자는 평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학생 개개인을 중요시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마지막으로 3가지 변화를 제안했다.


1)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2) 성적 대신 실력 평가

3)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


코로나 사태가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는 요즘, 각 개인의 특성을 중요시하는 변화들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트렌드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념을 빨리 바꾸고 적응해야 한다. 평균은 수많은 판단 가치 중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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