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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Apr 22. 2021

그래도, 쓰는 이유

솔직함의 힘

[1] 투수는 변명하지 않는다


6,076일


사내 포털 화면 왼쪽 상단 내 이름 아래 적혀있는, 지금의 회사에서 내가 보낸 17년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날 아침, 이사회는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나는 6,076일의 시간 중 절반 정도를 해외에서 보냈다. 마지막 부임지였던 A 법인은 회사 내 5대 법인 중 하나로 내게 주어진 책임이 막중했다. 하지만 내가 부임할 시점엔 이미 사업은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A 법인은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만큼 사업의 여러 징후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먼저 감지되는 곳이다. 하지만 조직은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는 예외를 극도로 혐오한다. 그리고 대안을 마련할 수 없는 부정적 시그널도 인정하지 못한다. 본사는 A 법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업 전반의 리스크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개인의 역량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몰아붙였다. 


사업이 어렵고 돌파구를 찾기 힘들 때, 조직은 사람을 탓하기 마련이다. 대통령이 장관을 경질하고 CEO는 임원을 경질하고 임원은 주재원과 팀장을 교체한다. 주니어 시절, 지역대표로 계시던 부사장님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케터는 늘 억울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억울함 속에서 추진력이 나오고 성과가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 지금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절대 변명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난 그런 문화 속에서 업무를 배웠다.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불편함을 넘어 모든 비난은 나에게 쏟아졌다. 물론 임원은 아니었으니 해고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조직 내에서 더 이상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 당시 내 직속 상사였던 법인장은 사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CEO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회사를 떠나야 했다. 법인장은 주재원들을 투수에 비유하곤 했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져도 타석이 받쳐주지 않거나 수비가 엉망이면 그 날의 경기를 질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투수가 자신의 패배에 대해 변명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또 다른 1패의 추가일 뿐이다. '마케터는 억울해도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법인장은 아무 변명 없이 마운드를 떠났다.


그 뒤로도 나는 A 법인에서 2년을 더 버텼다. 법인장이 회사를 떠나자 본부의 말 많은 사람들은 A 법인의 사업 부진이 나 때문이라고 수군거렸다. 어느 임원은 나를 멕시코에 내보낸 것이 우리 회사 HR의 치명적인 실수라고 까지 말했다. 나를 앞에 두고 말했으니 적어도 뒷담화는 아니었다.


흔들리는 배는 이미 복원력을 잃어 다시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사업을 살리는 것만큼이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모든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법인 직원들에게 늘 진실하게 대하려고 했다. 남을 비난하면서 나 혼자만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나도 법인장처럼 변명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회사는 내가 귀임한 뒤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했다. 



[2] 우울증의 시작, 그리고 글쓰기


몇 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가 몇 주 만에 깨어난 이모부를 뵈러 서울 아산병원을 찾았다. 이모부는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인기척에 잠을 깨 가늘게 눈을 뜨시더니,


"아이고, 불쌍한 녀석... 어쩌면 좋으냐, 그 좋은 머리로..."


아직 의식이 온전치 않으셨던 이모부의 시간은 어디에 머물러 있었던 것일까? 이모부의 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던 나에 대한 기억, 나의 어떤 실패를 끄집어내셨던 건지는 다시 여쭤볼 수 없었다. 이모부의 그 마지막 말은 마치 나를 옭아매고 있는 업보처럼,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다시 살아나곤 했다. 어쩌면 이모부는 그 날, 몇 년 후인 지금의 내 모습을 예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모부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가족들과 함께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임기를 고작 3개월 남긴 시점이었다.


귀임한 지 얼마 안 된 5월 어느 날, 화장실에서 주니어 시절 두바이에서 사업을 함께 했던 선배를 만났다. 


"야, 들어왔구나. 잘 지냈어? 근데 너도 많이 늙었구나. 그때는 너 참 총기 있고 빠릿빠릿했는데, 언제 이렇게 늙었냐, 하하하."


나를 반가워하는 선배의 말이 밉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내 마음속에 감춰 두었던 우울함을 거울에 쏟아낸 듯, 무기력하고 추해 보였다. 그대로 거울에 얼굴을 처박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침에 출근하면 밤 사이 온 메일을 확인하고 나서 회사 단지 내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았다. 어떤 날은 마음이 잠잠하다가 우울함이 폭풍처럼 밀려왔고, 또 어떤 날은 내 몸이 무거운 납덩어리를 달고 땅 속으로 꺼져 버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봄 하늘은 맑고 고요하기만 했다. 내가 죽어서 사라져 버려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자살의 충동을 점점 자주 느꼈다. 심리상담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상담실장은 빽빽하게 적혀있는 하루의 상담일정을 소화해 내기에도 벅차 보였다. 명상과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을 정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소소한 일상과 책, 영화를 중심으로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을 역으로 살펴보며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나는 나를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 덕분에 내가 불편하게 느껴왔던 것, 나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글에 녹여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아주 솔직한 글쓰기는 아니었다. 글쓰기를 통해 나를 치유해 보겠다는 계획 속에서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내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70여 편에 달하는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를 찾기는 어려웠다. 설령 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내 글의 의도를 알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 친구는 술자리에서 내가 고작 '글쓰기 따위'나 하느라고 시간과 능력을 허비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지 제대로 말한 적이 없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다.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많이 쓴 것은 사실이다. 글감을 찾기 위해 한 달에 10~20권의 책을 읽었고, 일주일에 두 편의 에세이를 쓰는 시간만 해도 10시간 이상 소모했다. 현실도피였는지도 모른다. 성공을 위해 뼈를 갈아 넣겠다는 각오로 매진해도 시원찮을 만큼 중요한 시기에 한가롭게 글이나 쓰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런 시간을 보낸 덕에 견뎌낼 수 있었다. 적어도 이제는 하늘을 보며, 그 맑고 고요함 속에서 죽음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글을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도 같았다. 공사장 바닥에 모래와 시멘트를 부어 놓는 것처럼 글감을 모으고 키워드들을 늘어놓았다. 시멘트 반죽을 하듯이 키워드들에 살을 붙여 문장을 만들고 이리저리 섞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만든 문장들을 하나씩 쌓아 가면서 글을 완성했다. 부실하고 조악한 재료들로 얼기설기 지은 집. 그렇게 완성한 글은 어설펐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무너졌던 나 자신도 모양을 갖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슬픔, 후회와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글 속에서 사소한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객관화되었다. 나를 파괴하던 그 감정들의 힘은 예전만 같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글에서 보인 나의 모습이 타인이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때 사람들은 실망한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다면 그것은 감내해야 하는 위험이다. 상대방의 기대 속에 있는 모습은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솔직한 글쓰기란 내가 나임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온전히 나를 위한 글쓰기다. 비록 독자 몇 명쯤 더 잃게 되더라도 오히려 내가 좀 더 솔직한 글쓰기를 추구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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