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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Jul 19. 2020

나의 20년지기

다섯부터 스물다섯까지

소중할수록 당연하다.


나한테는 당연한 남자들이 있다. 아빠,남동생 그리고 20년지기.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유치원 교실에서 먹기 싫은 장아찌를 당연하게 대신 먹어주고, 함께 놀러가서 하던 뽑기기계 앞에서 파이리를 쥐고 삐죽이는 내 입을 보고는, 피카츄 너 하라며, 자기는 파이리가 좋다고 당연하게 양보를 해주는. 여기저기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피아노 위까지 올라서 놀다가 할머니께 혼나면, 나가신 후에 올라도 된다고 당연하게 비밀을 지켜주고. 우리 아빠 생일에 촛불을 끄면, 생신이 같은 아저씨한테도 축하드린다고 전하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는 그랬다.

한 때는 떨어지는게 너무 싫었다. 서울에 같은 사립 초등학교를 넣고 나만 떨어져서 엉엉 울어버렸던 적도, 나와 우리가 살던 동네를 두고 일산으로 이사 가버려서 서운했던 적도. 그게 싫었지만 어찌됐든, 다시 옆에 있게 되었다. 바로 옆 학교로 지원했다든지 나도 일산으로 오게되었다든지.

바쁜 중.고등학교 때도 내 생일 만큼은 챙겨주고, 생애 첫 해외여행도 걔랑 갔다. 입시에서 패배를 맞게 되면 바로 합불 발표 전날까지만 해도 칭찬을 해대던 그 학교를 피자를 먹으면서 욕을 하기도 하고. 다시 옆으로 오게 되어도  한결같은 우정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더 웃기다. 같은 학교 미대와 공대를 다니는 것도 나름의 소박한 우리 바람이었는데. 각자 대학교에서 1학년 첫학기를 보내고 방학에 만났을 때는 둘 다 발로 치이는 성적 장학금을 못 받았다고 집에서 쫓겨난 후였다. (우리가 친하고 때로는 닮았 , 엄마들의 불같은 성격도 친해서 똑같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옛날 살던 동네를 돌아보고 추억하고 오는 길에 서로 주량도 모르는데 (지금 생각하면 진짜 한심하고 무식하게) 술도 광광 먹고. ( 떠보니   아저씨  뒷좌석에서 토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대학가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어울리고 지내는 시간이 더 길 때도. 나보다는 걔가 많이 챙겨줬다. 워낙 제멋대로고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연대 친구들이랑 날 새서 술 먹고 있는 중에 울산에서 전화가 오면 "나 바빠!" 하고 툭 끊어버리는 나쁜 친구였는데, 걔는 내가 자취방에서 집을 그리워하며 걸었던 전화를 시험 전 날이어도 받는 착한 친구였다.

친구들이랑 다니는 것만 지켜보다가 연애하는 것도 보게 된 순간도 남다르다. 분명히 글 읽다가 이거 이거~ 질투했겠네~ 서로 마음 확인하고? 뭐 이런 내용을 기대하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꼭 말해주고 싶다.

넷플릭스에 보면 <키싱부스> 라는 영화가 있다. 이 부분을 적으면서 가장 생각나는 영화인데, 고3 때 걔랑 같이 본 <러브로지> 처럼  '오랜 남녀간 우정의 결실은 어차피 결혼이고 사랑이다!' 라는 뻔하고 진부한 결말이 아니라, 우리처럼 가족끼리 친하고 함께 커왔어도 각자의 사랑에 응원을 보낼 줄 알고   서로에게 상처주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우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앞의 짓궂은 장난을 치려 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넘어간다.

짓궂기는 내 연애에 걔가 훨씬 짓궂다. 오랜만의 가족모임에서 톡을 하며 입이 귀에 걸려 있는 내 앞에 잔뜩 탄 고기만 두기도, 자기 여자친구라며 처음 소개시켜주던 술자리에서 뭔가 으쓱해댄 것도. 처음엔 이상하게만 보이다가, 이제는 행복해하면 같이 행복해하고 예뻐보이기까지 한다. 걔의 여자친구가 내 친한 친구가 되었 듯, 연애의 순간도 같이 행복하다. 학창시절에는 반에 짝사랑 하는 애 이야기조차 못꺼냈는데, 헤어지면 당연하게 그 날은 걔를 만나는 날이 되었다. 그런게 반복이 되다 어느 날은 내가 너무 별로인 여자애인거 같다고 하면 너처럼 똑똑하고 예쁜 애 없다고 발린 칭찬도 해준다.

생각보다 20년지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게 없다고 느낄 적엔  친구의 소중함을 떠올린다. 그렇게나 오래 된 친구가 있다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 명을 서로 가졌음에 우리의 우정은 더욱 귀하고 특별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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