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자크드콩포스텔 Saint Jacques de Compostelle
도보 여행 마지막 날은 26km를 걸어 최종 목적지인 도시 Moissac에 도착해야 했다. 그 전날, 비위생적인 캠핑장에 기겁하였지만 처지를 받아들이고 숙면을 취했던지라 컨디션만큼은 최상이었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커피까지 끓여 비스퀴와 함께 먹으니 속도 든든하였다.
이 날은 6시간 정도를 내리 걸어야 하는 스케쥴이었고 결국 대낮 1시의 더위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 발걸음을 그 전날보다 더 부단히 놀렸다. 하지만 일기예보에 변동이 생겨 구름이 잔뜩 낀 서늘한 날씨가 아침 내내 지속되었다. 최고 기온 역시 그 전에 확인했을 때보다 많이 내려가 22도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아무리 긴시간을 걷는다고 해도 더위만 피할수 있다면 여행이 수월해진다.
산 속 깊은 곳을 다니다 보면 작은 마을들을 지나치게 되는데 가끔 상 자크 드 콩포스텔 여행자들을 위한 거주민들의 호의를 마주하게 된다. 보통 간이 테이블에 차, 간식거리들이 있는 형태이다. 그 곳에서 쉬다보면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싱싱한 멜론들이 준비되어 있는 테이블을 만났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하고 무엇보다 단 걸 먹으면 갈증이 나기에 지나치기로 했다.
걷다보니 도보 여행자들이 쉬었다 가는 카페겸 레스토랑도 있어서 들러서 커피를 마셨다. 여기서 첫날 숙소에서 인사했던 다른 여행자분들도 만나게 되었다. 모기에게 잔뜩 물려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내 다리를 한 분이 걱정해주셨다. 지르텍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나는 여행 마지막 날이라 괜찮다고 사양하였다. 이번 캠핑에서 제일 힘들었던건 더위와 모기였다.
서늘한 날씨 덕분에 긴시간 잘 걸어낼 수 있었지만 지난 3일간 쌓여온 피로를 무시할 순 없었다. 나의 경우, 발가락 사이사이의 물집들에서 오는 통증이 심했다. 또 발쪽으로 피가 많이 쏠려있었다. 평지나 오르막길을 걸을 땐 괜찮은데 내리막길을 걸을 땐 발을 땅에 디딜 때마다 바늘로 콕 콕 찌르는 듯 했다. 그 전날, 발이 많이 부었는데도 운동화 끈을 조절하여 매지 않아 혈압이 꽉 꽉(?) 몰리게 되었고 그 여파가 마지막 날까지도 이어진 것이다. 남자친구가 내 배낭의 짐을 많이 덜어주었다. '아이고오 고마워..!' 좀 걸으니 나아져 내가 물통을 들어주겠다고 호기롭게 제안했다. 그런데 물통이 거의 2kg가 나가는지 몰랐다. 한시간 정도 지고(?)가다가 힘이 들어 다시 물통을 넘겨주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Moissac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까지 내려놓았다. 우리처럼 기진 맥진하여 오는 도보 여행자들을 익숙하게 보아온 양 호텔 지배인이 시원한 물을 내주셨다. 남자친구는 맥주를 주문했지만 나는 술을 마시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 물만 좀 더 마셨다. 호텔에 도착하면 그래도 도착 세레머니 비슷한 것을 하리라 다짐했는데 그런 여력따윈 남아있지 않았고 우두커니 홀 쇼파에 앉아 선풍기를 즐겼다. '끝난건가..? 이제 안 걷는거야..? 끝났구나..'
체크인 시간보다 한시간정도 일찍 도착하였기에 우리는 인근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이 날은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음식점, 슈퍼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다행히 작은 케밥집이 있었다. 메뉴중 '로얄 케밥 세트'가 있어서 바로 그걸 먹겠다고 했지만 테이크아웃만 가능하고 테이크아웃의 경우 수저 제공이 안된다는(?) 말에 할 수 없이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메뉴로 바꾸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행복하게 케밥을 먹었다!
사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심리적인 탓인지 다리가 엄살을 피는양 유난스레 더 아파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걷는 것이 낫지 가만히 서있으면 일분도 못 버틸만큼 힘이 들었다.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시원하게 샤워를 하였고 그 다음날 체크아웃 시간이 될 때까지 한걸음도 나가지 않고 쿨 쿨 잠을 잤다. 도보 여행의 백미는 호텔 숙박이 아닐까 한다..!
푹신한 침대에서 편히 쉬었더니 그 다음날 발바닥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 힘을 내어 Moissac의 대표 유적지중 한 곳인 성 피에르 교구성당을 방문하였다. 12세기에 만들어져 로마네스크 양식과 초기 고딕 양식의 만남이 잘 나타나는 성당이다. 특히 중세 초기의 익살스러운 동물 조각들이 벽, 문을 구성하며 문양화 되어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 즐거웠다. 이제까지는 파리의 고딕 양식 건축물들을 많이 보아온지라 주로 섬세한 식물 문양들을 보아왔다.
고딕의 도래를 예고하는 듯한 화려한 정문 파사드를 거쳐 성당 안으로 들어오면 초기 교회의 원형적 형태를 간직한 실내공간을 만나게 된다. 특별한 장식없는 벽, 철제 울타리, 투박한 사각형 형태의 나무 문등은 고딕 건축의 정수를 자랑하는 파리 성당, 교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들이다.
이 성당은 특이하게 벽 전체가 노란색 계열의 종이 재질로 마감되어 있다. 성당이 워낙 오래된 곳이라 이 벽재가 오리지널인지 확인하기 위해 만져보는 방문객들이 많은데 사실 이 마감은 50년 정도 된 것이고 원형 벽 자재는 보존을 위하여 따로 보관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물 문야에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모습인데 원형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여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인듯 귀중한 성당을 요리 조리 시간을 들여 관찰하였다.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시골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 다음 일주일동안 푹 쉬며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도보 여행 초보자로서 4일간 75km를 걸어내는 일정은 쉽지 않았다. 더불어 용감하게(?) 여행을 잘 마친 나 자신이 기특하다. 나름 고생을 하였는데도 이상하게 그리운 도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