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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Jan 08. 2023

「폭력의 역사」를 읽고

「폭력의 역사」를 읽고


언제부턴가 여행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으로 하게 됐다. 다크 투어는 죽음, 전쟁 등 비극과 연관된 장소로의 여행을 뜻한다. 한국 전쟁 당시 양민 학살이 자행되었던 합천군 신원리를 다녀오고, 공주의 동학혁명 추모공원과 소록도 한센병 환자촌, 거제도 포로수용소,경북 영양의 징용 추모비, 진도의 팽목항 등지를 돌아다녔다. 그외에도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틈만 나면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전거로 자동차로 때로는 버스를 타고 걸어서 갔다. 추모공원과 추모비는 하늘을 찌르고 서 있는데 옆을 가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었다. 무한의 생존경쟁에서 삶의 사냥터로 내몰린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는 중이다. 그들에게 백 년, 수십 년 전의 얘기는 먼 나라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비굴한 역사도 삶의 흔적이고 떳떳하지 못한 과거도 현재를 가늠하는 저울이다. 과거를 읽지 못하고 내일을 바라는 건 눈 가리고 달려가는 꼴이다.


작가 김성수의 「폭력의 역사」는 그가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우연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국제 협력 업무를 담당하면서 비롯되었다. 책은 시대를 역순으로 90년대의 의문사부터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는 거대 조직으로 정권의 입맛에 들지 않는 체제 비판자, 지식인, 노동자, 학생을 불법 체포, 감금, 고문으로 희생시킨다. 정권의 하수인들은 어둠속에서 아무도 몰래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진다. 유가족은 진상도 주검도 찾지 못한 채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 이 땅에서 자행된 의문사는 어쩌면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지금도 새로운 가면을 쓰고 정권의 칼춤에 알아서 기는 무리는 시민의 등에 비수를 꽂는다. 전쟁의 와중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또는 윗선의 의중을 알아서 헤아리는 충성스런 개떼는 시민의 목숨을 파리 쯤으로 여겼다. 지금도 산하의 전국 방방곡곡 땅밑을 파면 원혼의 유해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


'대한민국의 지난 시절에 수많은 개인들에게 벌어졌던 죽음들을 접하다 보면 얼얼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너무 많다.' 어떻게 이렇게 무수한 폭력들이 수행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폭력의 궁극적인 주체가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어째서 그토록 자유롭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을까? 그 폭력이 국가 제도와 체제로서 작동했기 때문이다.'(편집자 해제)

전쟁의 광기가 몰고온 학살은 지구촌 곳곳에 송곳 꽂을 틈 없이 널렸다. 우리 산하 구석구석의 역사를 톺아보면 피바람이 비켜간 곳은 한 뼘도 없을 터다.

성공회대 교수인 한홍구는 '참으로 많이 죽었다. 죽음이라는 것이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 현대사에는 납득할 수 없는 죽음이 너무도 많았다. 가버린 사람도, 남은 이들도 도대체 영문을 알 길 없는 죽음들,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고, 설혹 알았다 해도 입도 뻥끗 못 하고 숨죽여 지내야 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런 무기력과 무책임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젊은 넋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이태원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가는 상황을 만들어 냈던 것은 아닐까? 남은 사람들은 그 죽음 앞에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말한다.


「폭력의 역사」작가 김성수는 책머리에서 '진실화해위원회 일을 통해서 한국전쟁기에 벌어진 수많은  민간인 학살 희생자와 그 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의 인권 침해 피해자, 그리고 그 유족들의 끔찍한 증언을 수시로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역사학 전공자로서 이분들의 억울하고 한 많은 사연을 언젠가는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라고 말하면서

'사상가 함석헌은 그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우리 민족은 착하고, 남을 괴롭힌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 희생자와 인권 침해 피해자 그리고 억울하고 한 많은 유족들의 기막힌 사연을 접하며 언제부터인가 이런 함석헌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착해서 남을 괴롭힌 적이 없다고? 베트남에는 지금도 파월 한국군이 양민을 학살하고 어린아이를 찢어 죽인 원한으로 곳곳에 증한비(憎韓碑)가 서 있다. 역사는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 정의가 살아난다.


기간제 일이 끝나면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沖繩)를 둘러볼 생각이다. 오키나와는 홋카이도(北海島)와 마찬가지로 본토와는 별개의 인종, 문화였다. 이차대전-일인들의 표현으로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인이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 잔혹한 죽음을 당한 곳이다. 오키나와의 불가시적 존재였던 조선인의 흔적은 곳곳에 산재한 십여 개의 위령비로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키나와의 비극은 류큐(琉球)대학 오세종 교수의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무방비로 전쟁의 폭력에 노출된 식민지 백성의 원혼은 지금도 남국의 산호빛 푸른 바다 아래, 밀림의 골짜기 속에 묻혀 고국을 그리워하고 있다.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과거를 제대로 알고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왜곡과 거짓으로 역사의 진실을 가리려는 무리는 언제나 시대의 주인공으로 활개친다. 그것은 반생명, 반인간임과 동시에 반지성이다. 우리는 몇 번의 선거를 치루면서 민주정권을 이루어내는 도약을 이끌어냈지만, 번번이 악의 축은 준동했고 시대 인식을 몰각한 집단 무지성은 완장(腕章)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가의 폭력은 비판과 견제의 눈초리가 없는 곳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시민이 힘을 잃으면 역사는 반드시 과거로 회귀한다는 걸 우리는 처절하게 목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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