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만을 기다렸다. 홀로서기 첫날밤
아무래도 자취가 그토록 설렜던 건 부모로부터 독립된다는 것 그 자체였다. 그땐 철이 없어서 그냥 그거 하나만으로 독립하고 싶은 이유는 충분했다. 오후 2시까지 늦잠을 자도, 새벽 2시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엄마아빠는 알 길이 없다.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하지만 그 짜릿함 뒤에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20살 여름, 난생처음 이사라는 걸 했다. 할머니와 같이 살기엔 좁아서였는지, 집을 짓는다는 아빠의 꿈을 이루고 자였는지 나는 잘 모른다. 되게 울적했던 기억만이 남아있다. 내 20년 평생의 추억과 친구들이 있는 동네를 떠나기 싫었다. 다니던 회사도 퇴사하는 바람에 서울에 남을 이유도 없었지만 불행 중 다행인가? 이사 갈 집이 완공되지 않아 서울에 반년 정도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자취는 아니었다. 학기를 마치고 전학 갈 예정이던 동생과 함께 살았고, 엄마아빠도 이사 갈 집을 지으며 서울을 왔다 갔다 하셨다. 그 좁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 잠들 때면 답답했다. 짐도 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고 온전한 식탁하나 없어 반년 동안 이사 박스 위에서 밥을 먹었다. 아파트에 살 땐 그나마 있던 3평짜리 나의 공간조차 사라진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이직을 해서 서울에 혼자라도 남아보려 애썼지만 물경력만 1년인 고졸을 받아줄 번듯한 회사는 없었다. 반년 동안 알바만 전전하며 살다가 겨울이 왔다. 대학 수시 접수 기간이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대학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서울권 대학에 가면 나는 졸업장도 생기고 자취도 할 수 있었다. 망설이지도 않고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전부 넣었다. 그리고 붙은 대학 중 가장 집에서 먼 곳으로 입학 원서를 냈다. (붙은 곳 중에 그나마 나은 곳이기도 했다.)
통학을 한다면 왕복 6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부모님은 학교 앞에 원룸을 계약해 주셨다. 이상하리만큼 순조로웠다. 내 통금은 10시. 1분이라도 늦으면 "언제 오니"라는 엄마의 싸늘한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친구 집에서 자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런 내가 자취를? 세.. 상에..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정신 차려보니 4.5평짜리 자그마한 원룸에 나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자잘한 짐을 정리하면서 혼자 히히히 콧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신나 있다가 문득 느껴지는 적막함에 압도당했다. 내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위잉- 하는 냉장고 소리만 들렸다. 처음 느껴보는 고요함,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 이건 무슨 기분이지? 누구라도 붙잡고 뭐든 얘기하고 싶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하고선 만나러 갔다. 집에서 나간 시간이 저녁 8시, 평소대로라면 2시간도 채 놀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맥주를 마시다가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는 시곗바늘과 눈이 마주쳤다. 괜히 핸드폰을 쳐다봤다. 어디선가 엄마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낮에는 몰랐는데 집 근처 골목들이 많이 어두웠다. 아직 개강 전이라 유동인구가 거의 없었고, 워낙 낙후된 동네라 분위기가 살벌한 동네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과 함께일 때의 안락함을. 이제 내가 혹여 위험한 일이 생긴다고 해도 부모님이 달려오기까지 최소 2시간이 걸린다. 매일 밤마다 빛 하나 없는,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좁고 적막한 방에 들어가야 한다. 모든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하고, 누가 내 옷을 빨아주지도 않는다. 마땅한 장비와 준비도 없이 무인도에 뚝- 떨어진 기분. 근데 이상하게도 무섭고 혼란스러운 감정보단 설렘이나 모험심 같은 두근거림으로 가득 찼던 첫날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