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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나나 Mar 25. 2024

03. 돈 없어서 자취 못하는 건 핑계라니까

아, 대학생은 예외입니다.

   "혼자 살고는 싶은데 부모님이랑 살 때 돈을 모아둬야 할 것 같긴 하고.." 

주변에서 독립을 생각하는 친구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조금씩 디테일이 다르기야 하지만 '혼자 살면 돈을 못 모으잖아'라는 맥락은 거의 비슷하다. 그럼 나는 묻는다. "그래서 지금 얼마나 모았는데?" 대답을 들어보면 정수리 위에 물음표가 뜬다. 아무래도 핑계 같다. 돈을 못 모으고 있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하면 머쓱해한다. 어차피 저축 안 할거 그 돈으로 혼자 살아보는 건 어떠냐 물으면 그건 또 곤란하대. 이미 씀씀이가 커져서 줄일 수가 없다고. 한창 돈 모을 젊은 나이에 월세 내며 사는 건 핸디캡이 맞다. 똑같은 월급을 받아도 누구는 월세와 생활비로 100만 원을 쓰고, 누구는 그 100만 원을 저축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 100만 원을 저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다. 아마 나도 지금까지 부모님의 온실 안에서 깨끗한 물과 양분만 빨아먹고 살았다면 아이러니한 청년이었을지 모른다. 버는 족족 다 쓰고 굳이 돈을 모으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에 지장이 없으니 모을 생각조차 안 했겠지. 그랬던 내가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하게 된 건 혼자 산 덕분이라고 확신한다. 난 자취해서 돈을 못 모은 게 아니라, 자취를 했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비교적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월급통장에 찍힌 150만 원에 눈이 돌아갈 나이 열아홉. 옷, 신발, 지갑, 가방, 딱히 쓸 일도 없는 카메라까지 갖고 싶은 건 일단 샀다. "너는 아직 학생이니까 내가 살게!" 하며 친구들 앞에서도 돈을 턱턱 냈다. 엄마에게 등 떠밀려 가입한 청약통장에 2만 원, 정기적금에 50만 원. 저축은 이게 전부였다. 저축을 제외한 약 100만 원은 매달 말일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굳이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아몰랑 내가 다 썼으니까 없겠지 뭐. 첫 회사를 퇴사하고는 퇴직금과 마지막 월급이 한 번에 들어오면서 잭팟이 터졌다. 이야.. 군침이 싹 도는데? 친한 친구를 불러 밥까지 사주고는 쇼핑하러 갔다. 그 와중에 웃긴 건 큰돈 써본 적이 없어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만 원짜리 옷만 잔뜩 사 왔던 나다. 퇴직하고 알바를 꾸준히 했지만 전에 벌던 만큼 못 버니 돈이 부족했다. 씀씀이를 줄일 생각은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은행에 가서 청약 통장과 적금을 해지했다.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다. 19살이 뭘 알았겠어~ 생각하고 싶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2년 뒤인 22살까지 똑같았다. 장학금을 타거나 해서 어쩌다 큰돈이 생기면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그땐 학생 때라 부모님이 월세를 내주시고 용돈까지 주셨기에 몸은 독립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사실상 부모님의 온실 별관쯤에서 살았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한 건 별관에서도 나와 야생화로 살아가기 시작할 시기, 독립 3년 차 때부터였다. 


    혼자 살다 보면 기초 소비량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숨만 쉬어도 소비되는 기초 대사량이 있듯이 숨만 쉬어도 사라지는 돈이다. 기본적으로 월세집이라면 월세, 전세 대출이라면 대출이자, 관리비, 생필품, 식비 등이 포함된다. 이것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돈에서 나간 적이 없는 항목이기에 굉장히 낯설고 아깝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낯설고 아까운 것들이 나를 알뜰하게 만들었다. 만약 돈이 부족해서 제 때 돈을 못 쓰면 생각보다 큰일이 나는 것들이었으니까. 알뜰해지는 첫걸음은 내 돈이 어디로 얼마나 나가는지 아는 것이었다. 너무 많이 나가는 곳은 줄이고, 줄여서 만들어낸 여유 자금을 조금씩 모아 자그마한 자금 뭉치 만들기 위해 애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만에 사회로 복귀했을 때 내 월급은 220만 원 정도. 기초 소비량은 약 130만 원이었고 적금과 청약 통장에 약 60만 원 정도를 넣었다. 그럼 매달 고정비용이 총 190만 원. 쇼핑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먹고 마실 수 있는 돈은 고작 30만 원이 남았다. 저축이 너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더 이상 씀씀이를 줄일 수가 없었다. 월급 전날 내 통장에 3만 원 이상 남아있던 적이 없었으니까. 약속이 좀 많거나, 옷이라도 몇 벌 사게 되면 월급 받기 1주일 전부터 거지신세였다. 이 타이밍에 친한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마음이 돈으로 환산되는 건 아니겠지만 고작 만 원짜리 기프티콘을 주면서도 고민하는 내가 싫었다. 친구들이 밥 먹자고 불러내면 통장 잔고부터 확인하는 내가 처량해서 나가기 귀찮은 척 거절한 적도 많았다. 이대로 살긴 너무 빠듯하다 생각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느낀 후 가계부 어플을 깔아 두 달 정도 써봤다. 식비에 80만 원을 넘게 쓰고 있었다. 회사에서 점심을 주는데도 대체 왜 80만 원이..? 그렇게 가장 먼저 한 것이 식비 줄이기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라 하니 쓸데없이 거창해 보이는데 사실 배달음식 줄이기였다. 하지만 자취 3년 차에 요리라곤 할 줄 아는 게 라면과 계란 프라이뿐이었던 하찮은 나. 게다가 가장 싫어하는 집안일은 설거지... 1년 차엔 설거지가 너무 싫어 그릇에 비닐을 씌우고 먹은 적도 많았다. 이런 내가 집에서 요리를? 아 이 정도면 거창한 프로젝트 맞네. 이럴 때 필요한 건 엄마다. 엄마에게 전화해 가장 간단한 레시피를 물었다. 엄마는 내가 기특했는지 몇 가지 레시피를 알려주고 된장찌개 재료를 밀키트처럼 만들어 보내주시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할 줄 아는 음식을 늘려갔다. 장 보는 것도 노하우가 있다는 걸 몰라서 쓰는 양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기도 했고, 다 타버려 음식 같지도 않은걸 꾸역꾸역 먹기도 했다. 아! 손가락도 여러 번 썰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식비를 줄이겠다는 집념 하나로 꾸준히 집밥을 연구했다. 그 결과 지금은 집에서 배달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 장 보는 요령이 생겨 버리는 재료도 별로 없다. 할 줄 아는 음식들도 많아지고, 요리에 자신감도 붙었다. 이제 웬만한 요리는 레시피만 쓱 봐도 그럴싸하게 만들어낸다. 나 진짜 많이 컸다.


    이렇게 크는 동안 연봉은 오르고 소비는 줄었다. 그러니 남은 돈이 모여 뭉치가 되고 뭉치가 굴러 큰 덩어리가 되었다. 여윳돈 생겼다고 다른데 써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니 꾹 참는 인내심도 겸비했다. 나는 식비를 줄였지만 사람마다 줄여야 할 항목은 다를 수 있다. 쇼핑이나 술, 게임, 취미 등 자신이 지나치게 쓰고 있는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확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 작심삼일을 반복해 보자. 나도 햇수로 5년이나 걸렸다. (너무 오래 걸렸나..?) 솔직히 개고생이긴 한데, 개고생 하고 얻는 게 진짜 내 것이 되더라.


    내가 뭐 억만금을 모아서 잘난 척하려는 건 아니다. 해보지도 않고 돈 때문에 혼자 살아볼 기회를 놓치고 있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감히 단언컨대, 부모님과 살아도 돈이 모이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혼자 살아봐야 돈이 모인다고. 돈 없어서 자취 못 하는 건 다 핑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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