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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나나 Apr 12. 2023

나는 슬플 때 일기장을 펴

우울이 감당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글과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책과 담을 쌓고 살았고 학창 시절 친구들이 흔히 받던 글쓰기 사생대회에 수상은커녕 나가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글쓰기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사춘기 시절즈음 우울한 감정에 잡아먹혀 힘들었던 시절들이 종종 있었다. 이러다 정말 우울증에 걸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인터넷에 떠도는 우울증 테스트도 몇 번 해본 기억이 있다.


우울했던 이유 다양했다. 엄마한테 혼이 났거나, 친구와 다툼이 있었거나, 원하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모를 일들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크게 다가와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곤 했다.


감정이 휘몰아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에 들지 못할 때 내가 했던 건 다름 아닌 일기였다. 종이에 나의 감정을 마구 휘갈겨 쓰고 나면 왠지 심박수가 조금 내려간 것 같은 기분에 잠에들 수 있었다.


그 뒤로는 힘들 때마다 일기장과 메모장, 심지어는 교과서 모퉁이를 잘라 글을 썼다. 아니, 글을 싸질렀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뭘 알고 그렇게 쓰기를 반복하진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했던 행위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울적했던 사춘기를 무사히 횡단했고 자연스레 일기 쓰기를 멈췄다.


그리고 몇 년 후 스물셋, 나는 다시 우울 구렁텅이에 빠졌다. 학창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이의 우울이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어쭙잖게 적용해친구들에게 우울을 전염시키기도 했다. 처음 한 두 번 들어주던 친구들도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다시 일기장을 꺼냈다. 예전처럼 마구 감정을 쏟아내며 두서없이 글을 썼는데, 어느 날 지난 일기를 읽다가 문득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내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만 생각했지 미래의 내가 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쓰는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일단 1차로 감정을 뱉어내듯 쓴다. 그리고 그 글을 본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존재하는 것 같아진다. 감정이 객관화가 되는 것이다. 쓰여있는 감정을 빤히 쳐다보고 손에 올려보고 찍어 맛보기도 하며 글을 수정한다. 너무 감정적으로 뱉은 말을 고치고 미래의 내가 본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다시 써 내려간다.


다양한 감정도 적기 시작했다. 산책하다 고양이를 만나 즐거웠던 것, 가기 싫었지만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뿌듯했던 것, 너무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해서 행복했던 것 등등. 드디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쓰던 평범한 일기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나에게 글쓰기란 감정 컨트롤 타워의 역할이자 나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쓰지 않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감정을 감당하기 힘들다면 일기를 꼭 써봤으면 좋겠다. 우울함을 잘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감정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쌓일 때마다 빨리 뱉어내고 나와 분리시켜야 한다. 그럼 조금 더 건강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일기 말고 또 다른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꼭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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