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이월, 다섯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의 기대감도 자연스럽게 부푼다. 세상은 산타 클로스가 오는 시간을 축복하기 위해, 있는 힘껏 거리를 꾸미니까. 아이도 점점 환희에 차서 마음을 부풀리다가, 어린이집의 크리스마스 행사가 시작되는 주간이 되면, 마치 풍선이 터지기라도 하는듯 기쁨으로 탄성을 지른다.
결국은 집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작년에 상자에 고이 모셔두었던 트리를 꺼냈다. 오래된 장식들을 버리고, 새로운 오너먼트를 주문하고, 전구를 둘러주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트리 아래의 선물이 아닐까.
아이는 한 달 내내,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나열하는데,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비행기 타고 싶어요, 라고 말해서 제주도 티켓이라도 알아봐야하나 하고 고민하게 만들거나, 십만원도 넘는 중장비 자동차 세트 같은 걸 받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건 어디서 봤어…? 묻는다. 큰 애는 검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안돼는거야? 하고 묻더니, 내 얼굴에 놓인 당혹감을 읽고는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방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런 날들이 매일 같이 반복되면 결국은, 캐치티니핑 인형을 받고 싶다고해서 비교적 안심하게 만드는 날도 온다. 산타 클로스의 선물을 뜯어보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네가 갖고 싶다고 했던 말을 들으신 것 같은데? 하고 말해볼 것이다. 그러나, 나와 달리 남편은 결국 중장비 세트를 주문하겠지. 이런 식으로 부모가 하는 선물 증정이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시기도 올해가 마지막일 지도. 알거 다 아는 예닐곱 살이 되면, 눈을 똑바로 뜨고, 엄마, 핸드폰 사주세요. 친구들 중에 저만 없어요, 하고 말하는 건 아닐까.
어른의 심정으로는 새 운동화나, 방한 모자, 패딩 같은 걸 사주고 싶다. 실용적이고, 당장 쓸 수 있고, 어차피 사야되는 것들을. 겨우 설날이 되어야 마을로 찾아드는 비단 장수를 불러들여 새옷을 해입히는 시대의 이야기라고는 생각 한다. 나는 아이가 갖고 싶은 장난감은 다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서, 좀 인색하게 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 형편 껏 하는 거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 형편껏 해온거라고 알려주는 편이, 부모가 솔직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 또래 모두 우리 아이들 세대보다는 풍족하지 않았으므로, 지금처럼 풍성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아이들이 몇이나 되겠느냐만은, 그래도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이미 충분히 자리잡은 후여서, 학교, 학원, 교회, 친구들 사이에서 여러 모양으로 작은 선물을 받고, 주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공부방 선생님이 주셨던 곰돌이가 달린 작은 주머니에, 눈사람이 그려진 초콜릿을 받았던 게 특히 기억에 남는다. 초콜릿은 먹기 아까워서, 가방은 귀여웠지만 아주 작아 담아 다닐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 크리스마스를 사로잡은 나머지, 중학생이 되도록 내 책상 서랍에 귀히 모셔두고 만지작 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아이들은 쓸모없는 것을 가질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즐거움과 행복만을 위해서 고안된 물건들을 가지고 그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아무리 좋은 브랜드의 목도리를 산다한들, 아이는 그 목도리를 받고 행복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쓸모없는 선물의 말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결국 플라스틱쓰레기와 함께 분리배출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 선물을 즐거워했던 아이도 어느새 자라, 조악한 것들은,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시기가 올 테고. 그럼 토이스토리처럼, 그 어딘가로 흘러흘러, 가장 친했던 친구와 헤어지는 날이 오게 되겠지. 이 한철의 그림 같은 장난감이, 올해의 크리스마스가, 아이의 마음을 잠시나마 밝혀주기를 바라며, 나는 또 한번의 쓸모없는 선물을 사는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