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며
주변에서 브런치를 하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들은 내가 쓴 글을 보아서가 아니라,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브런치를 하라고 했다. 운이 좋으면 작가가 되어서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글을 통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내가 글을 통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릴 때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시도 썼다. 하지만 글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세월이 더 많았다. 나는 언제나 나를 견디기 위해 글을 썼고, 내 가족들을, 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글로, 활자로 파고 들었을 뿐이므로. 다른 길이 있다고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누군가가 말하자마자, 나는 글을 버렸다. 나도 남들처럼 책이 없는 사람, 글자가 없는 사람, 사람들이 나오는 화면들을 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거기서 남들처럼 웃고, 의미를 발견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십 년 중 오 년은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쓰지 않고, 읽지 않고. 나머지 오 년은 다시 책의 자리로 돌아와 외국어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이국의 문자를 해독하며 지냈다. 하지만 이국의 언어를 공부한다 한들, 이를 통해 내 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언어를 읽늗다는 것은 해독, 그리고 받아들임, 체화, 그 자체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밖으로 발산 되지 않는 글자들을 차곡차곡 내 속에 쌓아두고서, 쓴다는 것을 회피하며 지냈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버티자 하는 사이, 내게는 가족도 생기고, 아이들도 둘이나 생겼다. 때때로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창문 밖의 빈 가지나, 들판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불안이 닥쳐와 길고 긴 상담을 시작해야했을 때다. 결국 나는 아이 하나를 원에 보내고, 다른 한 아이를 끼고서 종이나 수첩을 꺼내 닥치는대로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글자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걱정들, 아직 사로잡혀있는 과거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기만 했던 활자들. 말해야만 했으나 말하지 못한 것들, 써야 했으나 쓰지 못한 것들이 쉴 새없이 흘러나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밤낮으로 글자를 적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세권의 노트를 썼다.
조금이라도 짬이나면, 노트북을 들고나가 소설을 썼다. 거기에 무슨 효용이나 가치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배겨내지 못할 것 같아서, 쓰고 또 적었다. 그렇게 일 년 반이 지났다. 소설은 아직도 미완의 상태다. 짧은 단편 소설 두 개를 썼는데, 그 중 하나는 클라우드에서 증발해버렸다. 아쉽지는 않았다. 그 글이 수중에 있다한들, 종국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러는 사이, 작은 아이는 돌이 되었고, 일 년을 꼬박 살아낸 아이로부터 삶에 대한 의지가 내게로 밀려들었을 무렵, 몇 사람이 내게 권했던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손을 내저었다. 잘할 자신도 없고, 쓸 말도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무언가 입을 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삶에 대해 물결을 그려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여기에 활자들을 적어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여기에 이 글들을 적고 올리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을 쓸 지도, 남들 처럼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 글들을 이어 나갈 지도 잘 모르겠다. 한 페이지에 얼마만큼의 글을 써야 하는 지도 잘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나에 대한 글을 적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나를 조우하기 위해서, 내가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 써야하는 말들을 여기 적으려고, 페이지를 빌린다. 이 글을 완벽한 신변잡기나 다큐멘터리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의 진실성, 그건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적어나갈 글들들 거짓과 조금 버무려 적으려고 한다. 그걸 양해해 달라고. 모든 것을 다 적기에는 나는 겁이 너무 많고, 내 글로 인해 밀려드는 타인의 호기심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그러니 이 글이 산문과 소설 그 중간즈음에 있는 것으로 여겨주면 안되겠느냐고. 나는 늘 겁쟁이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뭐하나 떳떳하게 굴만한 정신머리도 아니고, 그럴만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러니 별 수 있으랴. 그저 글과 자간에 숨어서 살아보려고, 살아보려고 애쓰려고, 그렇게 이 페이지에 한 글자씩 적어넣는다.
적어 넣다보면, 누군가 발견해서 먼지를 털어주고, 거미줄을 떼어주고, 번듯하게 걸어서 어딘가에 매달아줄지, 그냥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기대만으로, 조금은 더 용기를 내어 쓸 수 있지 않을까한다고. 모두에게 그저 읽어주어, 감사하다고,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