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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행복의 기원]

내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주신 서은국 교수님

by 에밀리

꿈깨라, 행복은 별게 아니다.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 문장이 될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닌 그저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 한 평생을 어떤 노력을 하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꿈꿔야하는 것이 아닌 그저 이 일상에서 순간순간 만나야 하는, 만날 수 있는 무언가인 것이다. 일상에서 그 행복을 충분히 누리기 위해서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쾌의 느낌, 즉 ‘사람’이라는 요인을 무시하고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특별히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행복을 가로막는 큰 요인이 집단주의적 사고이다. 타인의 시선에 목숨을 걸거나 나의 인생이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다른 누군가나 거대한 집단의 손에 맡기고 정작 본인은 죽기직전까지 매순간 허락이 떨어지기를 맘졸이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을 스스로 이끌고 평가하는 주인이 되어, 행복한 순간을 만나면 행복을 누리게끔 스스로를 허락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책을 읽으면서 우선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해왔던 사고를 인지하게 되었다. 아주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이 왔음에도 스스로에게 아직은 행복하면 안돼, 이런걸로는 웃으면 안돼,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많은 경우 나에게 행복은 미래 혹은 과거에만 존재했다. 모든 행복은 ‘그땐 좋았었지‘ 혹은 ‘이것만 끝나면, 이것만 성사되면’의 형식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행복한 순간이 지나간 후에야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거나 미래에 행복이 있을거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었다. 행복과 나는 영원한 평행선처럼 결코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책에서는 행복이 관념이 아니라 경험이기에 결코 추상적인 논의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인간의 생물학적 논리인 생존과 번식의 과정에서 발생한 쾌와 불쾌의 감각일 뿐이고 이를 충실하게 쫓고싶다면 나에게 쾌를 주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얼마나 천박해보이든 상관없이 그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행복은 지금 여기에 없으면 나중에 거기에도 없다. 행복을 기다리지 않게 되자 일단 마음은 많이 편해졌다. 그리고 내 주위에 행복이 생각보다 꽤 많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행복다운 행복을 위해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해야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우리가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 살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세계와 우주가 가장 처음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부동의 인자,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이 우주가 그저 사람들이 이름붙인 물리법칙과 화학반응에 의해 발생했다하여도 그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고 발생하지 않을수도 있었는데 발생했을 때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로 태어나지 않을수도 있었는데 태어났고 나로 인해 내 근처에 나의 세계가 생기고 나라는 존재가 존재하게 된 것에는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있다고 믿는 것과는 별개로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이 아주 잘 알아서 그것을 알아서 성취하게끔 설계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이 알 수 없다고 그것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손으로 태양을 가려 단지 내 눈에 안보인다고 해도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사자를 태어나서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 사실이 사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동물임을 입증해주진 않는다.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대체 태양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를 내 두눈으로 직접 가서 보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있긴 있는 것이다.


내가 이해한 목적과 행복을 녹여서 비유하자면 나에게 인생은 배와 같다. 배가 출항하고 싶어서 출항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배를 출항시킨다. 일단 목적지가 있어서 가긴 가는데 배는 배이기에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때로는 암초도 만나고 파도도 만나서 조각만 남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바다위에 떠있는 한 어느날엔가 거짓말처럼 그 조각난 배귀퉁이가 다시 항구에 가기도 한다. 만약 배에게 목적지가 없다면 그것은 바다에 그냥 하릴없이 버려진 배가 되는 셈인데 나는 인생을 살 때 내가 이 세상에 버려진 존재라고 생각하며 살진 않는다.

그렇다면 뱃길에서의 행복은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행복은 어느날 항구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가기까지 뱃길에서의 풍경 그 자체일 것이다. 그 풍경 속에는 사람도 있고 머리 위에는 태양도 있고 티비속이지만 사자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풍경없는 망망대해를 지나야 할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망망대해도 지나봐야 진짜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책을 통해 행복을 지금 당장 이 순간부터 즐길 수 있는 법에 대해 알게되어 풍경을 볼 줄 아는 배가 된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에 하나는 재즈음악이다. 재즈음악의 특징은 즉흥성이다. 분위기에 맞춰, 다른 악기들과 맞춰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고 아름답다. 예전에는 산다는 것이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어떤 웅장하고 거대하고 연주다운 연주를 향해 열심히 준비하고 결국 공연을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산다는 건 즉흥연주 같은 것이여서 ‘연주’라는 목적성을 가진다해도 매일의 일상에서 그때마다의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연주가 나올 때는 연주자가 완전히 연주에 몰입해있을 때이다. 음악과 하나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어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당당하게 쫓을 때 행복이라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연주를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다. 아무리 귀한 성공이라한대도 같이 축하할 사람이 없다면 과연 무엇이 좋을까. 심지어 내 곁에 내 편만 있다면 때로 연주에서 실수를 한대도 괜찮다. 다시 이겨낼 수 있다. 결국 인생도 한 편의 긴 재즈연주처럼 이런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야 진정한 행복에 다가가는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1.4)

강의와는 다르게 책에는 무신론적 사고가 아주 짙게 배어있다. ‘이유없는 우주’ 속에 살고 있다 믿으며 사는 삶은 과연 어떤 삶이었을까 감히 상상하며 읽었다. 남들은 줄서서 듣는 강의를 나는 뭣도 모르고 우연히 듣게 되었다. 행복이라는 글자의 어원에도 우연성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우연이야말로 행복이겠지(행복의 ‘행’자는 요절할 운명이 우연히 뒤집혔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시니컬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진지한 수업이었다. 그러다 이 분을 조금만 더 알게된다면 이 분은 내가 사랑하는 무신론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행복에는 ‘사람’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타자가 나의 행복 결정권자가 되면 안된다는 오묘한 역설을 이해하기까지는 아마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아마 교수님이 한평생 알아낸 진실이니 나 역시 적어도 그 정도의 시간은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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