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Sam’과 ‘신데렐라 언니’를 통해 본 아버지-자녀 관계
어떠한 부모가 좋은 부모이며 어떠한 관계가 좋은 부모 자녀 관계일까? 부모는 자녀 삶에 많은 영향을 주며 그들의 관계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모 자녀 관계 특히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영화 ‘I am Sam’과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나온 부모 자녀 관계를 분석해보았다. 각 작품에서 부모 자녀의 관계가 어떠한 양상을 띄고 있으며 그것들이 어떻게 서로 다르거나 같은지 보고자 한다. 또한 이로써 부모란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우선 ‘I am Sam’에는 7살의 지능을 가진 아버지 샘과 그의 어린 딸 루시가 등장한다. 루시의 엄마는 루시를 낳은 날 어딘가로 도망쳐버렸기에 샘은 커피가게에서 아르바이트일을 하며 혼자 힘으로 루시를 키우게 된다. 혼자서, 다른 성별의 자녀를, 심지어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지능을 가지고 키워내기란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에게는 좋은 이웃이 많았다. 외출공포증으로 인해 외출은 하지 못하지만 샘의 육아에 현실적인 조언과 격려를 해주는 애니와 순수한 사랑과 관심으로 루시와 샘을 대해주는 샘의 친구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과 사람들 속에서 루시는 또래보다 똘똘하고 현명한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그러던 중 작은 사건으로 인해서 루시는 아빠와 떨어져서 길고 긴 재판을 통해야만 아빠와 다시 살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빠와 떨어져 다른 가정에서 살게 되면서 루시는 아빠를 매일 볼 수 없게 되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아빠를 한 번 만날 수 있는 날이 왔는데 루시는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의 어깨를 때리며 아빠를 원망하고 눈물을 흘린다. 아빠가 자신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자신을 찾아오지도, 전화 한번 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루시의 그러한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샘이 잠깐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말했을 때, 루시는 훌쩍이며 아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너무 글씨가 커서 다 쓰지 못했다는 아빠의 편지를 차분히 듣고 있는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아빠의 고백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아빠의 손길을 받는다.
이러한 인물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루시는 안정애착(secure attachment)에 해당하는 인물이라고 판단하였다. 안정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보호자가 떠났을 때 슬퍼하지만,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basic trust)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곧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 보호자가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자신에게 펼쳐진 새로운 환경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보호자가 돌아왔을 때에는 원망과 눈물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한다. 루시는 처음으로 오랜 기간 아빠와 비자발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했었기에 불안과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샘이 루시의 영유아기에 루시에게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형성해주었기 때문에 루시는 기본적으로 아빠가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빠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은 아빠를 원망할지라도 루시의 눈물은 아빠가 돌아올 것을 믿고 있었던 것이 확인받은 것에 대한 기쁨에서 나오는 눈물이었다고 분석하였다. 또한 재판으로 인해 루시와 아빠가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기에도 루시는 걸스카우트에 가입하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며, 새로 만난 양육자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등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루시가 안정애착을 형성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루시는 어떻게 해서 안정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샘은 루시의 어린시절부터 루시와 친밀하고 가깝게 지냈다. 샘이 루시를 안고 그네를 타거나 루시와 함께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포옹으로 인사하는 등 신체적인 접촉이 많이 있었음을 영화의 많은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활발한 신체적인 접촉뿐만 아니라 샘은 항상 루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어떠한 반응이든 꼭 보여주었다. 물론 그 대답이 항상 맥락에 맞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샘은 적어도 루시의 말을 단 한번도 무시하고 못 들은 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반응의 일관성을 지녔다. 즉 대답의 내용과 무관하게 항상 루시에게 성실한 태도와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루시는 이러한 자신의 아버지 샘에 대해서 일관된 반응을 얻었을 것이다. 이러한 어린시절 보호자와의 다양한 신체적인 접촉과 연결, 그리고 일관된 반응을 통해 루시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그 뿐 아니라 루시의 선천적 기질이나 성향도 샘과 조화를 이루었다. 루시는 호기심이 많아서 늘 샘에게 이것저것 질문한다. 또한 자신이 다른 아버지와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 미안하다는 샘의 손을 잡고 자신은 특별하다, 자신과 공원에 같이 와줘서 고맙다고 표현하며 오히려 아빠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루시가 기질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궁금해하며, 남을 위할 줄 아는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샘의 경우, 물건들의 각과 색을 맞춰서 정렬하고 커피 레시피를 외우는 등 일종의 강박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증상은 장애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가 세상에 대해 무디지 않고 예민한 기질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자신의 변호사 리타가 자신의 가족문제로 상처받아 눈물을 흘릴 때에도 따뜻하게 위로해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즉 루시와 샘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예민하고, 남의 감정에 무감각하지 않는 점에서 기질적 공통점을 가졌다. 루시는 자신의 아버지 샘을 잘 관찰해서 샘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샘과 루시의 기질적인 조화도 그들의 건강한 애착관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루시는 안정적인 애착과 보호자와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통해 자신이 가치있는 존재라는 자존감과 자기존중, 그리고 어떠한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했다. 그랬기에 어린 나이에도 아빠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아주고, 자신이 장애를 가진 사람의 딸이라는 상황에 대해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운이 좋다며 아빠를 되려 위로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루시의 안정적인 애착관계는 루시의 영민한 인지 발달력, 남의 마음에 잘 공감하고 상처받을 말은 잘 하지 않는 정서 발달력, 그리고 또래와 잘 어울리는 사회적이고 종합적인 발달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와 비교해보고 싶은 작품으로는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가 있다. 이 드라마에는 한 탁주도가를 배경으로 의붓아버지 구대성과 사춘기 딸 송은조의 관계가 등장한다. 은조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송강숙을 따라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하루는 이 남자와 같이 살다가 다른 날은 다른 집에서 다른 남자와 같이 살았던 것인데 결혼이라는 제도안에 들어가 있는 관계도 아니고 그저 불확실한 동거의 연속이였다. 심지어 구대성을 만나기 직전까진 술에 취하면 엄마에게 폭력까지 휘두르는 남자와 함께 살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송강숙이 큰 도가를 운영하는 구대성을 만나게 된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했던 구대성과 송강숙은 곧 법적인 부부 관계가 된다. 이러한 부부관계의 맥락 속에서 얹혀 들어온 은조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우선 은조는 불안정 애착(insecure attachment) 중에서도 insecure-ambivalent 형으로 판단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돈과 사람에 쫓기며 살아온 은조와 그의 엄마 강숙에게는 포옹이나 뽀뽀 같은 행위의 신체적인 접촉은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군다나 본인의 삶도 매우 불안정하고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강숙이 자신의 딸 은조에게 양육자로서 일관된 반응을 보여주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은조에게는 보호자를 믿으며, 이 세상을 믿는 기본적인 신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실제로 은조는 극중에서 엄마와 잠시 떨어져 있던 때가 있었는데 다시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믿지 않고 혼자 힘으로 그 장소를 도망쳐 나오려고 한다.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은조의 분노와 슬픔은 쉽사리 가라앉지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의붓아버지 구대성과의 관계인데 자신의 생모에게도 품지 못한 신뢰를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난 한 남자에게 바로 품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은조는 언제라도 자신과 엄마가 이 집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믿고 이 점은 은조의 많은 대사와 행동에 드러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도가에서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성의 딸인 효선과의 관계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을 맞추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특성은 새로운 상황이나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을 불신하는 불안정 애착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은조의 변화이다. 비록 불안한 영유아기를 보내 보호자와의 신뢰나 이 세상에 대한 신뢰가 일찍 형성되지는 못했으나 은조는 자신을 진정으로 대해주고 존중하는 대성을 만나 차츰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점은 어린 시절 기본적 신뢰를 가지지 못한다면 나중에 이것을 형성하기가 매우 힘들지만 또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은조의 변화에 가장 큰 요인은 의붓아버지 구대성의 양육 태도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큰 도가를 오랫동안 유지할 만큼 그릇이 크고 심성이 따뜻한 인물이다. 그러한 그는 은조에게 권위적이지 않고 권위있는 양육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우선 발톱을 세우고 사회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던 은조의 그동안의 삶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은조의 감정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예의없고 독선적인 은조의 말투와 행동에는 단호하게 훈육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훈육에 반응하여 은조가 잘못된 점을 고쳤을 때에는 망설이지 않고 칭찬하고 격려해주었다. 삐뚤어진 마음으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아이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지시를 내리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고, 그 아이를 지켜봐주고 반응해주는 이러한 대성의 권위있는 양육태도가 은조의 뒤틀려있던 세상에 대한 관념을 바로잡고 건강한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하였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늘 은조에게 일관된 반응과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대성은 은조를 유심히 관찰하며 은조가 수학에 관심이 많고 수학을 곧잘 한다는 것을 알아내 과외 선생님을 붙여주는 등 은조가 스스로 잘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대성의 양육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올바로 형성되어 있지 못한 은조의 자아를 보듬고 다시 잘 자랄 수 있게 했다.
양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부하다할지 몰라도 사랑이다. 사랑의 힘은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잠시 루시를 대신 맡아서 키우던 한 여자는 결국 샘에게 루시를 다시 데려다준다. 그리고 자신이 루시가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고 고백한다. 지능이나 지적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샘의 부모로서의 사랑도 가치 절하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지식을, 그리고 때론 은조의 의붓아버지 구대성이 그러했듯 피의 차원을 넘어 작동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을 받는 이의 가슴에 들어가 그 사람을 자라게 한다. 그것은 그 이전의 아이의 모습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아이를 변화시켜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랑이야말로 부모가 반드시 주어야하고 그리고 부모가 줄 수 있는, 부모만이 처음으로 온전히 채워줄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일관성과 성실함, 경청 등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사랑이 어린시절 잘 채워지지 않으면 샘의 옆집에 살던 애니가 말했듯 평생동안 이 사랑을 구걸하며, 채우려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완벽한 부모란 없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개념만 적용하여 양육을 한다고 해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실수 하나에 주목하기보다는 내가 부모로서 잘하고 있는 점 하나, 그리고 내 자녀의 좋은 점 하나에만 집중하고 날마다 조금씩 더 나아지려 한다면 양육은 결코 실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좋은 부모가 되려 계속 노력을 할 것인가 포기하고 말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샘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구대성이 그러했듯이 부모로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몫을 다한다면 결국 그 아이를 또 하나의 좋은 부모로 키워내게 될 것이다.
(2020. Family Relation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