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가위에 베이지 않으려면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내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가장 오랫동안 고민한 질문이다. 어떤 인생은 쉽게 이해되기도 하고 어떤 인생은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이해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질 때도 있다. 또 어떨 때는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21년의 인생동안 적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서 분명히 깨달은 한 가지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과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고 때로는 고통까지 수반한다는 것이다. 통각에 무뎠던 어린 시절과 달리 점점 나는 그 고통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을 받으면 내게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고 나는 그 회복이라는 명분하에 마음의 문을 오랫동안 닫아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 궁상을 떨고 있을 무렵 나는 특별한 사람을 만났고 그 만남이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는 첫인상 하나로도 그 사람이 지나온 긴 시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재미있는 것은 만남의 형식이었는데 그 인물과 나는 노트북 스크린 속에서 재생되는 영화 한편 속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내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영화 속 인물, 가위손 에드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가위손이라는 인물이 아주 좋은 디자인 사례라고 생각한 이유는 가위손은 단지 기발한 시각화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맥락을 꿰뚫고 그것을 디자인에 반영해 영화를 이해하고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데 아주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를 맨 처음 보았을 땐 물론 기괴하고 공포스러웠다. 당장 스치기만해도 다 베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가위손과 대체 언제 감은 지 의문이 들만큼 어지럽게 엉켜있고 뻗쳐있는 머리카락, 그리고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는 검은색의 입술을 보면 이 영화가 공포영화였던가 의문이 들게 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에드워드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그런데 어떠한 공포도 꾹 참고 계속해서 영화를 보게 만든 것은 에드워드 얼굴 이곳저곳의 상처였다. 에드워드는 손이 가위였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만지면 자연스레 얼굴이 베이고 상처가 났다. 부드러운 손을 가진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너무 날카로운 손을 가진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제대로 안아줄 수조차 없었다. 물론 그도 따뜻한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몇 번이고 그녀를 안아주려 했지만 에드워드의 가위손은 그녀를 너무 쉽게 상처 낸다. 나는 이러한 장면에 내 인생을 대입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만 주었던 일. 그리고 그 반대로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도 쉽게 상처받았던 일들을 떠올렸다. 에드워드의 가위달린 손은 그나마 보이는 손이라 피할수라도 있지만 우리에게 달린 가위들은 어디에 달렸는지 보이지도 않아서 우리는 그렇게도 상처를 피할 수 없나보다.
에드워드라는 한 인물을 보며 인생사에 대한 이렇게 멋있는 비유와 시각화의 예시를 또 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이상하고 기괴하다고만 생각했던 그의 외모도 영화를 보면 볼수록 에드워드라는 인물을 완성시킨 완벽한 요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헤어스타일에 혈색이 도는 피부는 에드워드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 수용자로 하여금 그 디자인이 아닌 다른 디자인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만큼 최적의 디자인 사례는 아마 많진 않을 것이다. 다소 공포스러운 얼굴과 대조적으로 소년스러운 느낌이 나는 의상도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목폴라에 흰 셔츠를 입고, 멜빵바지를 입은 극중의 모습은 의외로 귀엽기까지 하다. 실제로 극 중에서 에드워드는 가위손으로 마을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주기도 하고 정원의 잔디를 깎아 작품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러한 동화같은 장면들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가볍고 귀여운 의상 덕분이기도 하다.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그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며 임한다는 팀버튼 감독의 신조를 고려했을 때 이러한 의상 하나하나까지 그가 심혈을 기울였을 것임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나는 가위로 된 손을 가진 남자 캐릭터를 맨 처음 구상하고 디자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크리스티안 프라가라는 작가가 쓴 ‘팀버튼: 고딕의 영상시인’이라는 책에는 창작 동기를 알아보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팀버튼의 진술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모두 일종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거나 마약을 하거나 술을 먹거나 놀이공원에 다니며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보려고 애쓰는 이유가 뭘까요? 사람들이 책을 읽는 건 또 왜일까요? 그 모든 것이 ‘벗어남’의 한 형태이기 때문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감정들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세상을 새롭고 흥미로운 것으로 다시 보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팀버튼은 사람들 속에 내재된 ‘벗어남’에 대한 욕망을 읽어낸 감독이었다. 우리는 손을 가지고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그 손이 손가락이 아닌 가위로 되어있으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벗어남’에는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현실에서 우리가 그렇게 큰 용기를 발휘할 기회는 흔치 않다. 우리는 대신 큰 용기를 내서 캐릭터를 디자인해 준 팀버튼 감독의 영화를 보며 ‘벗어남’의 욕망을 일부 충족한다. 하지만 팀버튼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독자에게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처 따위가 되길 원하진 않았다. 같은 책에 보면 ‘동화는 그 부조리를 인정하고, 현실을 인정하지만, 그때의 현실성이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선 것입니다. 저는 동화가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그는 영화를 찍는답시고 현실과 유리된 채 기발하기만하고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구상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을 직시한 후에 그를 반영한 캐릭터를 구상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예술철학이 기반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충격을 주는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었다.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는 내가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던,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던 인물이자 나에게 아주 깊은 영감을 준 인물 디자인사례였다. 에드워드를 만나고 나서부터 나는 보이진 않지만 우리 모두에게 달린 가위들을 의식하게 된다. 마음의 문은 활짝 열되, 그 무서운 가위의 날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