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 당신이 그토록 아픈 줄 몰라서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카버는 하루키 때문에 알고 존 가드너는 카버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래놓고도 카버 소설은 아직 하나도 읽지 않고 있다가 우연히 수업에서 아주 아주 좋은 단편소설이 있다고 들어서 읽어보았다.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진짜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솔직하게 나는 빵집주인에게 자꾸만 공감이 갔다. 노동의 어떤 무차별적인 본질과 비정함 같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게 끔찍한 일이란 건 알지만 지금 내 상황과 비슷한 건 새벽내내 빵집에 틀어박혀서 빵을 구워대는 빵집주인이었다. 그런 주인에게 남자가 부끄러운 줄 알라고 했을땐 반발심이 들었다. 아니 그걸 다 어떻게 알고 그럼 이 주인이 어떻게했어야 했단 말인가?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전화해서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가져가라고 했던 걸 부끄러운 줄 알라는 건가? 이건 너무 자기중심적인 말이지 않은가. 그냥 여자가 전화를 받았을 때 자초지종을 얘기했음 되는거지 왜 애꿎은 빵집주인한테 화풀이를 할까 싶었다.
"You have to eat and keep going. Eating is a small, good thing in a time like this."
아주 소름이 끼치도록 내 중심적으로 읽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인지 이 아이를 잃은 부부의 심정에 조금치도 공감을 해주고 싶지가 않았던건 아마 내 안에 쌓인 게 많기 때문이겠지. 남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라면 더이상 조금도 알고 싶지가 않다. 강에서 눈도 마주치지 않았음 좋겠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잃어본 적도 없는 주제에 그들의 아픔에 대해 조금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내 마음엔 괜히 심술이 났을까.
아이는 며칠을 병원침대에서 의식이 없다가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온 그곳으로 돌아간다. 빵집으로 도망치듯 슬픔을 토하러 온 이 비통한 부부를 혼자 괜히 노려보고 있는 사이 빵집주인은 그들에게 사과를 건넨다. 당신들이 그렇게 아픈 줄 몰라서 정말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진심으로 사과하며 따뜻한 계피 롤빵을 내준다. 그리고 이 부부는 앉아서 먹으며 빵집주인의 얘기를 듣는다. 빵집주인은 자신이 지금 이 순간 플로리스트가 아니라 제빵사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순간에는 사람을 먹이는 것이 더 낫기에.
아마도 나도 한번쯤은 누군가가 내주는 따뜻한 롤빵을 맘껏 먹거나 누군가에게 따뜻한 음식을 내주며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느닷없이 폭탄처럼 털어놓는 그 고백들과 상처를 아직 나는 다 감당하기가 벅차지만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나도 그들에게 따뜻한 계피롤빵을 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