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ch restless heart beats so imperfectly
아빠가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수술을 기다리는 아빠의 얼굴은 어느새 많이 늙었다. 아빠는 그날새벽 그렇게 일찍이 용종을 떼러 홀로 집을 나섰다. 수술은 짧게 끝났다.
십여년을 아빠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던 엄마는, 그렇게 오래도록 우리에게 상처를 남겼던 엄마는 어느날이 되어서야 그런 늙은 아빠의 얼굴을 보았던 모양이다. 우울한 아빠의 얼굴이 당신 때문인것 같아 불쌍하고 미안하단다. 시선은 창밖만 응시하는 건조하고 우울한 엄마의 그 음성을 듣는 내내 나는 새삼스러운 눈물이 난다.
풀리지 않는 미궁같은 내 인생 속에서 가족은 내게 가장 오래된 아픔이자 숨기고만 싶은 패였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과 유머로 웃고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다시 살라 한다면 결코 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돌연 팩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이를 악물고 밀어내야했던 밤의 연속이었다. 그토록 먼 길을 돌고 돌아 뒤늦게 듣게 된 엄마의 그런 고백이,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로 들린다면 내가 어느새 많이 자란 것이리라. 그 옛날 나를 눈물짓게 만들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이겨내 추운 겨울도 버티고 꽃을 피워낸 것이리라.
예전처럼 무서운 몰입으로 내 인생에 집중해 성과를 내던 열정이 어느정도는 사그라든 것도 같다. 자립에 대한 지독한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시험날에는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다. 어떻게든 해내야한다는 압박과 강박은 한해 한해가 지날수록 갚지 못한 이자처럼 점점 이겨내지 못할 무게로 불어나는 것만 같다. 어째 나는 인생이 모래주머니 달고 뛰는 마라톤 같다. 중간에 물도 마시고 힘들면 속도를 줄일 순 있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멈추면 안되는 그런 경기. 원래 그런 거겠지. 나만 이런 건 아니겠지. 다들 이정도의 무게는 짊어지고 어떻게든 살아가는거겠지. 결국은 또 그냥 죽은듯이 버텨내라는 것 같아서 나는 한없이 외로워진다.
그러나 슬프지만은 않다. 비로소 그 모든 감정을 조금은 놓아주고도 싶어진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그토록 애절히 내 안의 누군갈 그리워하던 류시화 시인의 마음이 불현듯 아리송해진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 짧은 시를 읽다가 문득 나는 다시금 간절해진다. 진실되게 살고싶어진다. 내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싶어진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무한한 지지와 다정함으로만 나를 대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끝없이 성장하고 싶어진다.
흙에서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 때가 될 때까지. 죽이되든 밥이되든, 화분에 깔리든 바다에 버려지든, 나무의 뿌리를 품든, 잡초하나 피우지 못하든. 어떻게든 깨어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보지 못한 끝을 기어코 보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