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밀리 Aug 22. 2024

한 사람의 성실함이 주는 감동

바이올리니스트 대니구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잠깐의 대화로도 내 인생에 다시 활력을 주는 사람, 잠깐의 인연으로 스쳐도 평생 곁에 머물게 되는 사람,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멀리서만 봐도 나 또한 정성을 다해 살아보게 하는 사람. 삶이라는 게 너무 짧고 너무 아름다운 무언가로 느껴지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내게도 분에 넘치는 그런 친구들이 몇 있다. 세라가 그랬고 윤하가 그랬다. 그리고 몇년만에 티비 앞에 앉은 나는 스크린 속에서 오랜만에 그런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교포 바이올리니스트. 티비스크린에 나오는 장면을 지나가며 흘끗 본다해도 긍정의 기운만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자칫 가벼워보일수있는 미국냄새 찐하게나는 추임새들에 과연 이 사람에게 삶의 무게란 정말 1g도 못될 것 같다는 어떤 생각이 들때쯤 이 한 사람의 일상 속 확고한 루틴과 건강한 습관, 말과 행동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그 정신상태를 깨닫게되면 그 무게감에 놀라게 된다. 루틴으로 만든 운동과 연습,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와의 약속은 꼭 지켜야만 한다는, 주어진 기회들 하나하나에 감사하고 나중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대니구


일찍이 그를 가르친 NEC 교수는 그의 열정 뿐 아니라 그가 가진 목적에 대한 진중함을 언급한 바 있다.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오닐 역시 앙상블 디토에서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불렀다. 인터뷰를 찾아볼수록 이 사람의 이 미스테리할 정도로 굳건한 삶에의 열심과 성실함은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아모레와의 인터뷰는 뷰티브랜드다운 아름다움에 관한 내용이다. 한창 코로나가 터지기 시작했을때 처음 한국으로 이사를 와 모든 공연이 취소되는 그 암흑기와 같은 시기를 오히려 자기를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여기고 버텼다고 한다. 습관과 일상은 누가 본다고 꾸며낼 수 없기에 일상의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단다. 회사원들도 매일 9시부터 6시까지 힘든거 꾹 참고 일하는데 뮤지션이라고 자기가 내킬 때 연습하거나 커피한잔 갖다놓고 여유부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대충만 봐도 자기다운 답변이다.  


삶의 슬픔도, 기쁨도 모두 연주하는 정직함

한 기자가 한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연주곡이 무엇이냐 물을 땐 본인의 이름이 들어간 'Danny Boy'를 꼽은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이의 마음을 노래한 오래된 외국민요라고 한다. 작은엄마의 부친상에 갔다 돌아오던 새벽, 우연히 이 연주곡을 듣고는 그 시기에 무참히 흔들리던 내 영혼을 다시금 이 땅으로 붙잡아매는 시간이 되었다. 일상의 성실함만큼이나 연주에도 그만한 깊이가 드러난다. 이런 무거운 연주는 물론, 그 특유의 매력과 에너지에 들어맞는 즐거운 연주들은 말할 것도 없이 대중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무조건 열심히

할 수 있는 건 내 선에서의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 이토록 충실하게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을 또 오랜만에 본 것 같아 나는 그저 감동이다. 마치 멸종되었다고 생각한 생명체를 어디선가 발견한 듯한 기쁨이다. 그래 내말이 맞잖아...자기 일을 충실하게 하는게 결국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거라고 했잖아....하면서.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마치 오랜만에 잠시 여행을 떠나 돌아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인해 내 일상은 다시금 산뜻해진다. 정현종 시인이 노래하였듯 한 사람을 안다는 게 정말 그렇다. 잘못 만나면 내 삶에 별안간 쓸데없이 무거운 짐을 지우기도 하지만 잘만 만난다면 그간 삶의 무게가 어떠했든 금세 벗어던지고 나 또한 가벼운 몸으로 나만의 춤을 추게 만들어버린다.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정말로 그렇다. 그렇기에 이제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한편으로 점점 무서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만큼의 영향에 나를 무방비하게 노출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연주자의 정직한 삶의 연주에 감화를 받은 나는 다시금 내 앞에 놓인 일상을 뚜벅뚜벅 걸어나갈 용기를 얻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끝을 맞이한다. 어디선가 또 예측불가의 사고가 일어나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이미 벌어진 일들엔 죄와 벌을 가리는 재판과 변론이 펼쳐진다. 어디선가는 가르치고, 자라나고, 또 길을 떠난다. 새로운 스타들이 떠올라 세간의 주목을 받고, 누군가는 서서히 잊혀지거나 돌연 차갑게 식어버린 대중을 마주한다. 개그맨들은 또다른 농담거리들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앨범들이 발매되고, 토의가 벌여지고, 실험들이 벌여진다. 무언가를 고르고 소비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러는 중에 시간은 무참히 흘러간다. 한때 김창완 아저씨는 이렇게 조언한 바가 있다. 거울 속의 나도 과거라고 생각할만큼 앞만보고 달려나가라고. 각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삶의 궤도 속 잠시 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의 궤도를 스치며 '내 선에서의 최선'이라는 말이 내 귓가를 맴돈다. 삶의 어찌할 수 없음은 깨끗이 인정하고 다음단계로 이미 넘어간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나는 아련해진다. 일찍이 인정해야 될 것들은 인정해버리고 사는 사람들 특유의 고매함이다.



삶의 모범을 볼 때면 드는 생각들

이 감동적일만큼 성실한 한 사람의 삶의 조각을 우연히 관찰하다 나는 별안간 조급함에 휩싸인다. 과거가 까마득해진다. 정신차려보니 내가 산 시간들 중 손에 잡히는 시간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동안의 시간이 간 밤의 꿈처럼 느껴진다. 나는 무슨 꿈을 꾸었던가? 이렇듯 정직하고 충실히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렇게 되곤 한다. 나는 별안간 호되게 혼쭐이 난 아이처럼, 너 한번만 더 그러면 혼난다- 엄하고도 기이하게 따뜻한 꾸지람을 듣고 선 철부지처럼 정신이 또렷한 채로 일상의 한복판에 서 있는다. 그러는중에도 여전히 여러 종류의 삶과 상황은 나를 스치고 지나친다. 너는 거기 왜 그러고 서있니?하면서.


나는 이제서야 삶의 생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시간이란 이런 거구나. 다시는, 정말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시간의 이 매운 호통 앞에 아직도 다행히 조금 젊은 나는 다시 허리를 고쳐세우고 눈을 부릅뜬다. 앞으로 오는 시간은 결코 헛되게 보내지 않으리라. 자기연민과 게으름으로 더이상 그릇되게 나를 사랑한다 변명하지 않으리라. 나와의 싸움은 여기서 결판내고 이제는 세상을 향해 고개를 쳐들리라. 내가 안고 태어난 것들, 운과 명, 이를 악물은 성실과 낙관으로는 더이상 어쩌지 못하는 그 무엇무엇들...그러한 지리멸렬한 것들은 이제는 게임에서 이미 깨고 넘어간 판처럼 생각해보자고. 그래야만 넘어갈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드디어 내 얼굴이 아닌 세상을 얼굴을 보고, 내 앞에 울고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니까. 내 안의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문제들은 이제 그만 깨끗이 닦아주자고. 더없이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더없이 자유해진 몸으로 이제는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나리라고.


뒤가 아닌 앞으로 걷기

홀가분하다. 드디어 게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 사람처럼, 도저히 깨지지않던 게임판을 순간 우스우리만치 손쉽게 깨버린 사람처럼 나는 한껏 여유로워진다. 그리함으로 나는 이제 결연하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내다본다. 고슴도치처럼 한껏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자신됨에 여전히 혼란해 어리둥절한 사람들, 그러고서도 어디서부터 다시 살아야할지 몰라 그저 누군가가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기다리는 그들, 도저히 시작되지 않는 삶에서 누군가 시작버튼을 눌러주기를 기다리는 저 수많은 슬픔과 세상의 혼란 앞으로 이제는 남은 시간 당당하게 나가보리라고. 정성을 다한 한음 한음으로, 나만이 살아낼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기어코 감동을 주리라고 다짐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흙들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