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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Mar 01. 2022

한 그릇의 짜장면

  저 멀리 성큼성큼 걸어오는 남자.

  삐쩍 마른 몸에 허름한 양복차림이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했다.

  희는 앞자리에 앉는 윤을 보며 마음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잘 있었어요?"

  "네"

  "식사했어요?"

  점심시간에 중국집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당연히 밥을 같이 먹을 줄 알았던 희는 그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먹고 왔어야 하는 건가? 싶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윤은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먹었다고 해도 다시 한번 묻는 게 예의 아닐까. 희는 어이가 없었지만 멀어가는 종업원의 뒤통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김이 펄펄 나는 짜장면 한 그릇이 금세 나왔다. 윤은 한 젓가락 먹어보겠냐는 말도 없이 짜장면 한 그릇을 맛있게 먹는다. 희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들릴세라 애꿎은 엽차를 계속 들이켰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나 싶지만 왠지 싫지가 않다. 쓸데없이 눈치 보며 잘해주려 애쓰는 남자들보다 왠지 끌리는 걸 보니, 이 남자가 좋아진 것 같다.


  점집에서 우연히 만난 윤의 어머니 김여사와 희의 배다른 언니 순은 서로 말이 잘 통했다. 내친김에 점쟁이에게 윤과 희의 궁합을 물었다. 아주 좋았다. 다만 그들을 가로막는 살(煞)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윤의 어머니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가지 말고 집에서 솥뚜껑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 하면 두 사람은 백년해로하고 돈도 많이 벌고 윤도 출세하고 뭐 그렇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솥뚜껑 투혼 덕분일까. 두 사람은 혼을 했고, 과정이 녹녹하지는 않았으나 5남매를 낳았고 돈도 모았다. 그리고 새 집을 지었다. 오늘이 그 집으로 이사한 첫날이다.


  "엄마!" 장남 용이가 치근댄다. 딸 셋을 낳고 얻은 귀한 아들. 생기기는 또 얼마나 잘 생겼는지. 말 그대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었다.

  "누나들 하고 가서 놀아"

  "싫어"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진다.

  "어멈아" 시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서 놀아. 엄마 바빠" 억지로 손을 떼어내니 금세 울음보가 터진다. 처음엔 새 집이 좋다고 잘 놀더니 졸음이 오는 모양이다.

  "용아" 어느새 나타난 시어머니 김여사가 용이를 달래면서 희를 바라본다.

  "뭐하고 있어. 얼른 부엌 정리를 해야 저녁 하지"

  "네. 용아. 할머니한테 가"

  "싫단 말야" 계속 용이가 울자, 등에 업힌 막내 필이도 깨어나 칭얼거린다.

  "애를 업고 무슨 일을 하냐. 얼른 내려놓고 와" 김여사가 희에게 쏘아붙이고 용이를 업고 간다.

  "네" 희는 얼른 방으로 가 필이를 눕혀놓고 부엌으로 간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제대로 앉아볼 새도 없이 일을 했다.


  희는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직은 낯선 부엌이다. 상도동 집 아궁이에 불을 때고 가마솥에 밥을 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임신하여 남산만 한 배를 하고도 불을 때서 밥을 하던 시절. 희는 항상 배가 고팠다. 식구는 많은데 버는 사람은 윤 하나, 어떻게든 아껴야 했다. 어느 날 점심 수제비를 먹는데 양이 모자라 희에게까지 차지가 오지 않았다. 희는 남은 국물에 맹물을 한 바가지 넣고 끓여서 국물을 마시며 허기를 달랬다. 그래도 그렇게 아껴가며 돈을 모았고 이제 나의 집을 갖게 되었다.


  "아이, 언니는 좋겠수. 이렇게 큰 집으로 이사도 하고"

  "출세했지, 아무것도 없이 시집와서"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이 떠드는 말에는 질투와 더불어, 가세가 기운 친정에 대한 비아냥도 들어있다는 것을 희는 알고 있었다. 윤의 가족들은 경쟁심이 심하고 말이 사나운 편이었다. 특히 시어머니가 심했다. 하지만 희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 애썼다. 어차피 부딪쳐봤자 얻는 것이 없다. 내 할 일이나 잘하면 될 터였다.

  내 아이들은 나처럼 키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라고 공부를 대충 시키지는 않을 거다. 대학이고 대학원이고, 외국 유학이라도 가고 싶다면 보내고 싶다. 물론 시어머니는 여자애들을 너무 오냐오냐 키운다고, 집안 일도 안 시킨다고 뭐라 하지만, 흰 그것만큼은 자기 뜻대로 할 생각이었다.


  결혼 후 '한 그릇의 짜장면' 이야기를 하자 윤은 처음에는 잘 기억을 못 했다. 그리고 왜 한 그릇 시켜달라고 말하지 않았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진짜 밥 먹고 와서 안 먹는지 알았다고. 그리고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짜장면 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 다섯을 낳고 큰 아이가 국민학교 5학년이 되었는데 아직 짜장면은 커녕 둘만 오붓하게 외출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희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윤과 함께라면 무언가 해낼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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