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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Apr 03. 2022

언덕 위의 빨간 집

  세검정으로 이사온 후 본격적으로 5남매의 시대가 열렸다. 1972년생인 막내 필이가 세 살이 되던 1974년이었다. 새 집은 상명여자 사범대학 후문 근처의 산 중턱에 있었다. 이웃으로 널찍널찍한 단독주택들이 몇 채  있었는데  꽤 부잣집들도 있었다.

  집 앞으로 나무들과 풀숲이 있는 넓은 공터가 있었고 큰 우물도 있어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하기도 했다. 그곳은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땅에는 또 다른 집들이 들어섰다.

  길가에 인접해있던 상도동 집과는 달리 세검정 집은 산속에 있어서 5남매가 동네 아이들과 놀기보다는 형제들끼리 놀 일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항상 놀거리를 찾아내었고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용이와 필이는 하루 종일 누나들을 쫓아다녔다. 특히 바로 위의 누나 연이는 어릴 때부터 소꿉놀이나 인형놀이를 좋아해서 동생들을 데리고 곧잘 놀아주었다.


  세검정 집으로 이사 온 후 첫 겨울방학  윤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새 집'을 주제로 글짓기를 실시했다. 윤은 아이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종종 글짓기를 시켰다. 자신이 글쓰기를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신을 닮아서인지 글짓기를 곧잘 하는 아이들이 대견했다. 아직 글을 모르는 용이와  필이는 그림을 그렸고 국민학교 세 딸들은 글짓기를 했다. 이제 9살이 되는 연이 '우리 아버지는 드럽고 상냥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새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라고 시작하여 아버지와 새 집에 대해 글을 썼다.

  새 집은 윤의 평생소원이었다. 충주의 고향집에서는 움막 같은 초가집에 살았고, 국민학교 때 서울로 유학 온후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다가 어머니 김여사가 모든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와 단간 셋방에서 계속 살았더랬다. 식구가 많고, 게다가 어린아이들이 주렁주렁 딸려있으니 주인집의 구박과 눈치를 받으며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며 집 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었다. 주로 노량진 근처에서 살았는데 대부분은 셋방 사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어서 화장실도 공동화장실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 아침 아침밥상을 받아 한술 뜨려고 하면, 공동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적나라한 소리에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도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단칸방에서 지내기 힘들어 아버지는 멀리 일을 나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아버지는 일을 나갔던 객지에서 쓰러져 유언 한마디 없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라, 묘소도 뫼시지 못하고 화장하여 장례를 치렀다.


  집은 산 중턱에 지었기 때문에 2층 집이기는 하였으나 1층 공간이 작았다. 1층에는 방 두 칸과 화장실, 보일러실(연탄창고)이 있었고 2층이 살림집이었다. 방 세 칸에 거실과 욕실, 부엌이 있었다. 안방은 윤과 희, 그리고 두 아들, 작은 방에는 세 딸, 건넌방은 어머니 김여사와 윤의 막냇동생이 썼다. 아이들이 커가면 1층은 아이들의 방으로 쓰게 될 것이다.


  집을 짓는 중에 희한한 일이 있었다. 지하수가 솟아 나오는데, 막아도 계속 나왔다. 아무래도 산이라서 수맥이 흐르는 것 같았다. 빨래를 하든 사용할 수 있겠다 싶어 물이 고일 수 있도록 시멘트를 발랐다. 지붕을 씌워 작은 온실 공간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검사를 해보니 상등급의 식수 판정을 받았다. 한여름에도 시원한 물이 나와 그곳은 집안의 약수터가 되었고, 가족의 식수원이 되었다. 상도동에서부터 기르던 미깡 나무도 그곳에서 기를 수 있었다.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미깡 나무는 온실에서 잘 자라 상큼한 미깡이 큼지막하게 달리곤 했다. 김여사는 그곳에서 쌀을 발효시켜 동동주를 담기도 했고, 오이지나 무 장아찌 항아리도 그곳에서 숙성을 기다리곤 했다.


  2층 거실에는 베란다가 딸려있었고, 그를 통해서 정원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바로 앞에 목련나무를 심었는데 봄에는 예쁜 꽃을 선물했고, 큰 나뭇가지는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그 그늘 아래 앉아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또 하나의 비밀공간은 안방에 있었다. 안방의 붙박이 선반(오시래) 옆에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을 열면 몇 개의 서랍장 위로 사다리가 있었다.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그 이층 집의 다락으로 연결이 되었다. 천장의 서까래들이 내려다보여 어린아이들이 올라가기엔 좀 무서운 공간이기도 하였으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차로 그곳은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다락에는 윤이 젊은 시절 보던 많은 책과 잡지들이 쌓여있어 세 딸들의 도서관이 되었고, 다락의 작은 창으로는 가끔 참새들이 잘못 들어와 용이는 소쿠리에 젓가락을 꽂아 세워놓고 새를 잡겠다고 하루 종일 앉아있기도 하였다.


  윤은 출근을 하고, 시어머니 김여사도 출타 중인 어느 날이었다. 이제 제아이들이 컸으니 희는 아이들을 두고 시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집 근처에 두부나 콩나물을 파는 작은 점포가 있기는 하였으나, 시장을 가려면 큰길까지 내려가 차를 타고 근처 홍은동의 유진상가까지 가야만 했다. 윤이 혼자 벌어오는 월급으로 9식구가 먹으려면 시장에 가서 질 좋으면서도 양 많고 싼 것을 사야 했다. 희는 악착같이 값을 깎고 거기에 덤까지 얹어서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서 보자기에 꼭꼭 싸서 머리에 이고 양손에 가득 들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다녔다. 둘째 딸 인이는 정이 많아서 무거운 짐을 지고 오는 엄마를 안쓰러워했다. 장을 봐서 올라오기 전 집으로 전화하면 인이가 달려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짐보따리 하나를 받아 들곤 했다. 인이는 동생들도 잘 보살펴주는 편이라, 희는 마음을 놓고 장을 보러 갔다.


  할머니도 안 계신 날이라 아이들은 맘껏 떠들며 놀았다. 밥상을 펴놓고 미끄럼도 타고 뛰어넘기도 했다. 큰 밥상 위에 작은 밥상을 올려놓자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되었다. 용이가 올라가 위에서 뛰자 필이도 올라가고 싶어 했고 인이가 안아 올려주었다. 같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다!" 이 소리치며 펄쩍 뛰어내렸다. 필도 따라 내려오려고 버둥거렸다. 연이는 필에게 손을 내밀어서 안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8살짜리 연이가 안아내리기에는 필이가 좀 무거웠다. 또래보다 연이는 작은 체구였고, 필이는 꽤 무게가 나갔다. 게다가 위에서 내려오려 하니 필의 무게는 연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필이를 놓쳤다 싶은 순간 필이의 얼굴이 상 모서리에 부딪치고 말았다.

  "으앙!' 필이 자지러지게 운다.

  필이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다행히 엄마 희가 곧 도착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희는 필이를 살펴보았다. 잘 살펴보니 얼굴에 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는데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희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찾아 윤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윤은 자리에 있었고, 바로 집으로 온다고 하였다. 희는 수건을 깨끗이 빨아 필이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필이 죽는 거야?" 용이가 물었다.

  "아냐" 인이가 용이를 쥐어박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윤이 집에 도착했고 희는 필이를 업고 바로 윤과 함께 집 근처 의원으로 향했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입술이 터져 몇 바늘을 꿰매야 했다.

  "언청이 되는 거 아니냐?" 심하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보며 김여사가 말했다.

  하필 윗입술의 중간 부분이 찢어져서 흉터가 잡히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 희는 가슴이 무너졌다. 잘 아물기만을 바랄 뿐이다.

  게다가 필이는 약간 혀가 짧아 ㄹ 발음을 잘 못했는데 입술의 흉터까지 더하니 안쓰러움이 더했다.


  그렇게 한 두 해가 꿈처럼 흘렀다. 연년생 유이와 인이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귀밑에서 1센티로 똑단발을 하고 교복을 입고 가는 모습이 의젓하다.  용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봄날, 흐드러지게 핀 꽃들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이다. 윤은 이번 일요일에 사진을 찍으려고 며칠간 별러왔다. 카메라 필름도 사놓았다. 희는 아이들 옷을 잘 챙겨 입혔다. 예쁜 옷을 입은 5남매는 아빠의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포즈를 취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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