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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Apr 16. 2022

부원군이 되리라

세 딸 탄생기

  윤과 희가 결혼하고서 3년간 아이가 없자 김여사는 몹시 초조했다. 아들이 결혼도 늦게 했는데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윤이 사귀던 여자 숙을 반대한 것도 내심 걸렸다. 윤이 숙을 꽤 좋아하는 걸 알았지만 김여사는 왠지 그 여자가 싫었다. 일단 당돌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은 두 사람이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여사가 운영하던 가게로 일요일 오전에 숙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윤이 거기를 알려준 모양이었다. 김여사가 윤의 어머니인 줄 몰랐던 숙은, 인사도 없이 윤을 찾아왔다고 자신의 용건을 말했고, 김여사는 여자가 남자 집에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도대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되바라져 보일 정도로 또박또박 말대꾸하는 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저런 여자가 며느리로 들어오면 집안 망하겠다고 생각한 김여사는 맹렬히 반대했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다(숙은 김여사를 도저히 모실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러던 중 윤은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사경을 헤매었고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지만, 어느새 서른 살을 넘긴 노총각이 되어 있었다.  인연이란 따로 있는 것이던가. 우연한 중매로 만난 희와 무사히 결혼식을 올리자  김여사는 한 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았다. 1년, 2년이 지나도 소식지 없자 씨받이라도 들여야 되는 것 아닌가 고민하던 차에 임신 소식을 들었다. 아들이기를 손꼽아 빌었는데 결과는 딸이었다. 그래, 첫 딸은 살림밑천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게 유이였다. 첫 손주가 그리 예쁠지 몰랐다. 정을 듬뿍 쏟았다. 유이가 채 돌도 되지 않아 둘째가 생겼다. 희가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태몽이 분명했고 이번에야말로 아들이 태어나겠지 했다. 그런데 둘째도 딸이었다.

  아들이 아니라 섭섭하긴 했으나 연년생 두 아이의 재롱과 웃음소리에 그동안의 고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윤은 승진을 해서 월급도 올랐다. 간만에 사람 사는 것 같았다.

  김여사는 이제 손자만 보면 소원이 없었다. 둘째 인이가 태어난 지 3년 만에 셋째가 태어났다. 희가 또 꿈을 꾸었다. 희가 오이밭에서 오이를 따고 있는데 시커먼 돼지 한 마리가 품으로 뛰어드는 꿈이었다. 좀 애매하다. 오이 꿈은 딸일 것이다. 그런데 검은 돼지는 아들이 아닐까? 다소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김여사는 부처님과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다.

  유이와 인이에 이어 셋째도 집에서 산파(조산원)를 불러 해산을 했다. 월요일 새벽부터 진통이 와서 윤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려고 출근도 안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9시가 되어가도 아이가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늦은 출근을 했다. 윤이 나서자마자 아이가 태어났다. 아주 작은 아이였고, 딸이었다. 김여사는 딸이라는 소식에 아이를 보지도 않고 방으로 가버렸다. 산파도 눈치를 보며 바로 떠나버렸다.

  아무도 축복해주지 않는 아이를 옆에 두고 희는 눈물을 흘렸다. 희도 섭섭하긴 마찬가지였다. 고된 시집살이와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왔는데 아들에 대한 압박은 희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퇴근 후 돌아온 윤도 서운한 마음이 없진 않았으나 희를 격려했다. 이름을 무어라 지을까. 이미 두 아이의 이름도 윤이 지은 터였다. 윤은 결혼 후 성균관대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던 중이었는데, 교양수업에서 익힌 다양한 한자를 활용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지었다. 큰 아이는 '넉넉할 유(裕)', 둘째는 '어질 인(仁)'. 모두 유교적인 색채가 강한 한자를 썼다. 셋째는 뭐라 지을까 하다가  '연꽃 연(蓮)'으로 하기로 했다. 이 글자는 앞의 두 글자와는 달리 불교 느낌이었다. 글자가 좋아 보였다.

  희는 며칠 산후조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늦가을에 태어난 연이는 추운 방 안에서 혼자 울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도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아이를 보러 가지 못하기 일쑤였다.


  세 딸들 모두 작게 태어났으나 큰 병 없이 자라주었다. 연년생이라 둘째 인이가 엄마 품을 떠나지 않으려 해 큰 아이 유이가 일찍 젖을 떼고 배고파 울기도 했는데, 그 당시에는 분유를 사서 먹일 줄도 몰랐다. 미음을 묽게 쑤어 조금씩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금세 둘째 인이가 언니 유이보다 키가 크기 시작했다. 유이는 똘똘하고 잘 생긴 얼굴이라면 인이는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이쁘장해서 머리를 길게 길러 두 갈래로 땋아놓으면 아역 배우 부럽지 않았다.

  두 딸에 비하면 셋째 딸 연이는 인물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눈이 작고 얼굴도 길쭉하여 여자 옷을 입히면 영 어울리지 않아 남자애들 옷을 입히기 일쑤였다. 게다가 기관지가 약한 편이고 감기 등 잔병치레가 있었다. 세검정으로 이사와 두 번째 겨울 내내 연이의 감기는 오락가락했다. 봄이 되어 3학년이 되었는데 연이의 기침은 더 심해졌고 결국 학교도 가지 못했다. 약국에서 지어온 약을 먹이며 며칠 지나면 낫겠지 했는데,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열이 치솟았다. 그제야 병원에 데리고 가자 바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폐렴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딸아이의 가는 팔에 주삿바늘이 가득 꽂혔다. 아이를 병원에 두고 잠시 집에 돌아온 희는 방에 혼자 들어가 울었다. 윤도 그런 희를 바라보며 울컥했다.

  "연이 잘못되면 다 내 잘못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셋째 딸이라고 제대로 돌봐주지도 않고... 아까 의사가 그러잖아요.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 한 번 안 갔냐고"

  "그게 왜 당신 탓이야?"

  윤도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첫 아이라서, 둘째는 이뻐서, 아들은 아들이라서 다 뭔가 특별했는데 셋째 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이렇게 몇 주간 아픈데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니까, 라고 생각했다.

  "맨날 언니들 옷만 물려주고... 연이 옷은 한 번도 사준적이 없는데. 이러다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윤의 가슴이 메어졌다.

  "이번에 퇴원하면 이쁜 옷 사주면 되지. 걱정하지 마요" 윤은 희를 위로했다.

  연이 퇴원하고 나자 희는 바로 시장에 가서 연이의 옷을 샀다. 초록색 무늬가 있는 블라우스와 바지 끝단에 인디언 얼굴 장식이 달려있는 나팔바지였다. 처음으로 연이를 위해 산 새 옷이었다. 가격은 상관없었다. 예쁜 옷을 사주고 싶었다. 연이는 그 옷을 좋아해서 더 이상 입기에 너무 작아질 때까지 입었다. 병원 입원이 계기가 되었던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 때문이었던가, 연이는 금세 건강해졌고 쑥쑥 자랐다. 그 옷은 동네에 살던 취약계층의 아이가 물려받았다. 슬프게도 그 아이는 연이와 같은 학교 동급생이었는데 연이보다 체구가 작았다. 연이는 학교에서 그 옷을 입은 친구를 보고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 연이는 행복했다. 물론 많이 아팠지만 열이 내리자 살만했고, 간호사 언니들이 친절했다. 링거줄로 반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할머니 김여사는 그중의 한 간호사를 막내 며느리감으로 점찍고 적극 구애를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마도 간호사의 외모가 막내아들의 이상형과는 좀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간호사는 연이를 예뻐해서 편지도 써주고, 성격도 무던하여 다들 무서워하는 김여사 비위도 잘 맞췄다. 연이는 그 간호사를 좋아했지만 연애니, 결혼에 대해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연이의 학교 담임 선생님과 급우 대표들이 병문안을 오기도 했다. 학급에서 모금을 해서 돈과 색연필 등 각종 선물, 친구들이 직접 쓴 편지도 가득 가져왔다. 생전 먹어보지 못했던 과일 통조림도 먹어볼 수 있었다.

  한참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 담임 선생님이 방과 후에 남으라고 했다. 뒤쳐진 공부를 보충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김여사가 슬쩍 찔러준 촌지 덕분이기도 했다. 마침 미국에서 살다가 온 아이들도 과외 수업을 해주어야 했기에 같이 공부를 했다. 한국말이 아직은 좀 서툴렀지만 색다른(교포 분위기 물씬 나는) 아이들과 연이는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성적이 쑥쑥 올랐다.


  그래도 공부는 역시 유이와 인이가 잘했다. 첫째 둘째 두 딸은 예쁘고 똑똑해서 윤의 자랑이었다. 윤은 본인이 부원군(조선시대 임금의 장인, 즉 국구(國舅) 또는 정1품 공신(功臣)에게 준 작호(爵號))이 될 거라고 농담하곤 했다. 딸들이 잘 자라서 대통령 영부인이 되면 본인은 왕의 장인인 부원군이 되는거 아니냐고 말이다.  모두 딸들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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