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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Jul 28. 2023

세상을 향해 달려가다

유이와 인이의 또다른 선택

예쁘고 공부잘하는 두 딸은 ㅇ과장의 가족들에게 언제나 큰 자랑이었다. 특히 세째 연이에게 언니들이 듣는 음악, 보는 책, 입는 옷 모든 것이 영향을 주었다.


연년생으로 대학에 연달아 두 딸이 입학하자, 경제적 부담은 컸지만 ㅇ과장과 희는 자부심이 컸다. 서울특별시 공무원으로 승진도 했고 자기 힘으로 자가를 마련했으며 두 딸이 서울의 명문학에 다닌다는 것은 어깨에 힘좀 들어갈 만한 일이었다.


ㅇ과장과 희에게 큰 꿈은 없었다. 딸들이 대학 잘 졸업해서 괜찮은 직장을 다니며 시집갈 밑천을 마련하고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고, 언제나 그랬듯이 자식들을 믿었다. 공부해라 뭐 입어라 큰 간섭없이 알아서 잘들하리라 생각했다.


철학과에 입학하여 나름 학교 생활을 즐기던 큰딸  유이가 졸업반이 되면서 귀가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입학을 같이했던 절친 미현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지고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뭐? 야학?"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빠져들었던 학생운동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던 유이였다. 그런데 곧 졸업을 앞두고 "야학"이라니? 장시간 노동과 영양실조에 시달리어린 노동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야학 7,80년대 이후 노동운동의 성장과 함께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타고난 추진력과 영민함, 정의감이 넘치는 유이에게 야학 활동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힘든 환경에서도 배움의 열망을 품은  어린 노동자들의 순수한 눈동자는 유이의 심장을 끓게 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사회 운동가들과의 만남은 유이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전에 유이의 삶 주변을 맴돌던 별다른 꿈없이 살아가는 속물스러운 사람들보다  대화가 통한다고나 할까?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시간가는줄 모른다고, 유이는 더욱 더 깊이 빠져들었고 늦은 귀가는 물론, 외박도 잦아지기 시작했고, 부모 ㅇ과장과 희의 걱정은 커져갔다.


반면 둘째 인이는 처음에는 평범한 대학 생활을 보내는듯 보였다. 당시만해도 여학생 비율이 높지않고, 지방 출신 학생들이 많은 대학이라 모든게 낯설었다. 여자 화장실 찾기조차 쉽지 않았던 초반이 지나자, 인이는 자신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큰 키에 예쁜 얼굴, 다정한 성격의 인이가 돋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특히 남학생이 많은 캠퍼스 안에서의 달콤한 연애(썸)들이 시작되었다.


연이는 인이와 인이의 남친을 따라 카페도 처음 가보고(고등학생은 입장불가였으나 당시 꽤 성숙한 편이라 문제가 없었다)  비엔나커피, 까페오레 같은 것도 먹어보는 호사를 누렸다.

물론 유이를 따라 대학로의 오감도라는 러스토랑에 가서 함박스테키도 먹어보았고, 당시 생기기 시작한 햄버거 프랜차이즈도 가보았다. 롯데리아의 버거와 감자튀김은 맛의 신세계였다.

(이싱의 시 제목에서 이름을 딴 오감도는. 당시 대학로의 핫플이었다. 이제 생각하니 참으로 멋진 이름이다)


잠시 얘기가 옆으로 빠졌다. 인이언니는 당시 인기가수들의 LP를 선물받아오기도 했는데, 깊이 사귀는 남친은 없는듯했다.

인이도 역시 ㅇ과장의 딸이어서였을까. 당시 대학생들의 숙명이었을까. 학생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예쁘게 화장하고 살랑거리는 치마에  하이힐 소리 또각대며 뽐내며 걷는 여대생을 ㅇ과장의 집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세상을 항해 달려가는 두 젊은이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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