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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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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Mar 15. 2024

1. 어떻게 귀촌을 준비해야 할까

귀쵼 동상이몽

  퇴직까지 딱 1년이 남았다. 대학 졸업 후 이러저러한 사회생활을 나름 쉬지 않고 30년 넘게 해왔고, 이젠 1차 은퇴를 준비하려 한다. 은퇴면 은퇴지 1차는 무엇이냐고? 현재 나는 다니고 있는 직장의 정규직 직원이 아니라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어 1년 후에는 그만 두어야 한다.  계약 연장이 되면 제일 좋겠지만  나의 바램이고, 다른 직장으로의 취업도 쉽지는 않을테니, 1년 후엔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백수가 될 것이고 그것이 은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은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쓰임새가 있다고, 어디든 나를 불러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그러나 최소한 6개월에서 1년은 재충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휴식없이 너무 달려왔다. 이후 취업을 고려한다해도 체력적으로 정비도 필요하고 경력 관리에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6개월 정도는 외국 여행을 하는게 어떨까? 다른 환경에서 새롭게 몸과 마음을 재부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그러나 모두 막연한 생각일 뿐이다.


  1년 전, 옆지기가 30년간 다닌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정년퇴직을 5년 정도 앞둔 나이인지라 몇 년 안에 퇴직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다소 빠른 퇴직이었다. 그만 둬야지, 둬야지 하면서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나와는 달리, 무슨 일에든 결정이 빠른 그는 회사의 잇단 구조조정 정책에 직면하자 별다른 대책(?)없이 사직서를 썼다.

  그는 퇴직후, 자기 삶에 휴식을 주고 싶어했다. 많은 대한민국의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마치 돈버는 기계처럼 상사의 눈치와 동료들과의 경쟁으로 점철된 30년, 제대로 된 휴가 한번 가보지 못한 인생에서, 잊었던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고 싶다고 했다. 골프나 등산 등 중년 남성들이 웬만하면 갖고 있는 취미는 없지만, 술과 담배는 여전히 달고 살며, 집안청소를 좋아하는 집돌이인 그는 동네 도서관으로 매일같이 출근하며 독서를 즐기며 몇 달을 보냈다. 물론 중간중간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 이후 진로를 모색하기도 했으나 '아직은 좀더 쉬어야겠다'고 했다.

  그리곤 귀촌 체험 프로그램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나는 같이 갈수 없으니, 그는 혼자서 여기저기 면접을 보려다녔다. 귀촌 체험 프로그램도 아무나 받아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한 군데의 면접에서 장렬히 떨어진 후, 마침 충남 공주에서 연락이 왔고, 한여름이 지난 후 그는 차에 가득 살림살이를 싣고 귀촌 체험을 떠났다.


  나나 그나 모두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 혹은 서울 근교의 수도권에서만 살아왔다. 물론 부모님은 지역 출신이었지만 모두 일찌감치 서울로 떠나오셔서 우리에겐 서울이 고향이었다. 서울이 고향이라 말하면 '어떻게 서울이 고향이에요?'하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와 그는 서울의 대학로, 신촌 등 주로 강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초, 중, 고, 대학까지 나왔기 때문에 서울은 추억이 가득담긴 고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귀촌체험 프로그램을 떠난 것은 진짜 귀촌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좀더 들여다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석달간 귀촌 프로그램을 하는 9월~11월은 내 직장일이 1년 중 가장 바쁜 기간이었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날들이 많아 석달간 딱 한 번 방문을 했다. 옆 방에는 부부 참가자가 있었는데 둘이서 매일 손잡고 산책하고 밤도 줍고, 삼겹살도 구워먹고 하니 적잖이 외로웠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상황이 그러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많은 대화의 사간을 갖지 못했다.


  나는 '자연은 좋지만, 농촌은 싫어'가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에 단독주택에 살았었기 때문에 방안에서 개미나 돈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여름이면 나방과 모기에 시달리고, 쥐나 귀뚜라미들을 많이 보며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 쭉 아파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아파트 생활이 얼마나 쾌적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철마다 아름다운 꽃들과 푸르른 나뭇잎들을 즐기며 강아지가 뛰노는 정원 생활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작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럴때에도 옆지기는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마당있는 집은 너무 비싸다고, 관리하기 힘들다고, 개는 무섭다고(어린 시절 물린 경험 때문에).

  하지만 비가 오면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막걸리 한 잔 먹고, 볕이 좋으면 밖에다 빨래를 훨훨 널어 뽀송뽀송 말리고, 그럼 너무 좋지 않겠냐고 떠들어대는 나에게 그는 은근히 동화되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 거실 마루 한 켠에 피아노를 놓고 피아노도 치라고, 마당엔 텃밭을 가꾸면 좋겠다고, 강아지는 아주 작은 놈이면 버텨보겠다고......


  그런데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굳이 시골로 갈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귀촌 이야기는 그저 하나의 체험의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나의 질문에 '서울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을 없애고 싶어' 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또 그렇게 자신과 상관없는 일들로, 서로에게 배려없는 사람들과 얽혀 일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이른바 T인 그와 F인 나의 동상이몽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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